최영태 편집국장 이문열의 자전적 소설 ‘변경’에 보면 작가가 어렸을 때 굶었던 경험이 나온다. 며칠을 굶은 뒤 역 광장에서 주인공의 ‘의식’은 걸어가고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몸이 움직이지 않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다. 몸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굶은 경험이고, 이런 경험은 평생 못 안 잊힌다. 40중반을 넘긴 한국인은 대개 어릴 적 배고픔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생각나는 것이 ‘미제 우유가루-빵’의 달콤한 추억이다. 한국인 거의 모두가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그 바탕에는 이런 ‘음식 사연’이 있다. 즉, 굶주릴 때 밥을 준 사람을 평생 못 잊는 게 사람이다. 반대로 내가 굶어 죽게 생겼는데 먹을 것을 가졌으면서도 놀리고 주지 않은 사람은? 평생 원수다. 미국이 2차대전 종전 뒤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배경을 경제학자들은 ‘전세계 부의 50% 이상을 차지한 막강한 경제력’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이라는 두 글자가 한국인을 포함한 자유세계 사람들의 가슴 가슴 속에 깊숙이 박힌 데는 미국의 잉여 농산물 지원이 있었다. 미국에 남아돌아 골칫거리인 잉여 농산물을 굶어 죽을 지경인 한국인, 유럽인들에게 먹임으로써 한국인이든 유럽 사람이든 미국이라면 꼼짝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 유럽 또는 일본의 경제력이 미국과 대등할 정도로 커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라크전쟁 같은 사안이 불거져 유럽 나라들이 미국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미국 언론들은 바로 “배은망덕한 프랑스(또는 독일)” 등으로 마구 공격한다. 그러면 유럽 사람들은 바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얻어먹은 사연’은 이렇게 무섭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미국은 최근 식량난에 처한 북한이 보릿고개를 맞아 대량 아사자가 나올 형편에 이르자, 북한을 잡을 무기로 ‘식량’을 들고 나오고 있다. 미국 당국자들은 “인도적 지원과 핵은 별개”라는 메시지를 여러 번 언급했다. 최근 한겨레신문과 대담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한 인터뷰에서 ‘식량 지원’을 무려 네 번이나 꺼내들었다. 미국의 입장을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에게 확실하게 알린 셈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전후 미국처럼 한국에도 쌀이 남아돈다. 쌀을 보관하는 데 연간 수백억 원이 들고, 2005년산 등 오래 묵어 썩어 나갈 정도가 된 쌀을 “사료로 쓰자”는 안을 정부 당국자가 내놨다가 비난을 받아 논의가 쑥 들어간 적도 있다. 똑같이 잉여 농산물이 있지만, 미국은 ‘한 번 먹임으로써 70년 이상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에 기왕에 약속했던 식량 지원까지 끊어 ‘평생 원수’가 될 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족한테…. 미국과 한국은 이렇게 달라도 되는가? 3월 들어 미국은 북한과 확실한 대화 분위기로 들어섰고 그 화두는 식량이다. 식량 사정이 얼마나 급한지, 북한은 그간 군 관련 시설 때문에 공개하지 않던 강원도와 자강도에 대한 실태조사를 세계식량계획(WFP) 등에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흔히 걱정하는 ‘남한에서 보내는 쌀이 인민군 군량미로 쓰일 가능성’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소리다. 사정이 이런데도 쌀을 썩게 놔두면 그 결과는 뻔하다. ‘평생 원수’가 되는 것은 물론, 북한과의 대화는 미국-중국이 주도하고 남한은 김영삼 정권 때 그랬듯 “넌 뒤로 빠져” 소리를 듣게 생겼다. 꼭 이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