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옥 차의과학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교수, 전 국회의원 행복나눔공동체 운동의 또 다른 지류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와 기업의 사회적 공헌 부분, 공유 경제에 대하여는 더 심도 있는 논의를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네 가지 나눔 공동체 중 세 번째로 사랑나눔공동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떤 형태든 나눔공동체의 근본적인 가치는 사랑에 근거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모든 행위에 스며들어야 한다. 사랑나눔은 물질이 없어도 이룰 수 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원봉사 나눔을 사랑나눔 공동체 운동이라 정의한다. 한마디로 적극적인 자원봉사를 실천하는 운동이다. 일반적으로 자원봉사는 시간을 내어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들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병원에 가서 안내하는 봉사활동부터 종교적 봉사활동, 또한 여러 시설에 가서 식당에서 봉사하거나 목욕을 돕고 시간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이 일반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으로 알려져 있다. 길거리에서 무거운 물건을 잠깐 들어주는 것도 자원봉사다. 거창한 일만이 자원봉사가 아니라 순간순간 얼마든지 사랑나눔을 할 수 있다. 재능나눔도 적극적 자원봉사의 하나다. 요즈음 많이 확장돼 기쁘기 이를 데 없다. 시간을 아껴 나의 몸과 머리에 익힌 재능을 남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봉사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진 지식과 재능일 수 있지만 분명 축복이다. 이 축복을 사랑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예전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을 하던 어느 날의 영감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수없이 읽었던 성경의 한 구절,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가 불현듯 다른 느낌으로 마음에 다가왔다.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 더불어 지력도 실상 거저 주어진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다. 내가 나눌 수 있는 몸의 건강과. 쪼갤 수 있는 시간-재능을 가진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가? 그렇지 못한 이웃에게 그 축복을 조금 나누는 일은 참으로 마땅한 일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일이 다 내가 이룬 것 같지만 실상 모든 것이 거저 받은 셈이다. 신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도 가질 수 없던 부분이다. 모두 거저 받았다. 그러니 거저 주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일찍이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의 두 가지 실존 양식으로 재산, 지식, 사회적 지위, 권력을 소유하는 것에 전념하는 실존 양식과, 자기 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며 삶의 희열을 확신하는 존재적 실존 양식을 들었다. 어떤 양식에 더 마음이 가는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완전히 소멸되는 소유를 위한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소중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 세상에서 존재가치를 불꽃처럼 피우다 갈 것인지 모든 게 내 선택에 달려 있다. 특히 나의 지식이나 재능을,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우리 함께 나누지 않으면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이 삶에서 언제 나누고 가려는가? 어느 날 필요하다 싶을 때는 나의 아이디어, 강의 등을 재능나눔으로 주저없이 나누려고(이를 존중해 주는 것은 상대방의 책임이자 선택일 것이고…) 노력하고 있다. 블로그를 정성껏 가꾸는 일도 지식 나눔의 실천방안이다. 거저 받은 축복을 거저 나누는 작업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쪼개 몸으로 이웃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고, 내가 배운 지식과 재능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일. TV 앞에 앉는 시간을 잠깐 줄이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재능을 활용할 수 있으니 나도 기쁘고 보람차고 이웃도 기쁘게 만들 수 있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 들은 말씀 하나. 저 세상에 갈 때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심판관이 두 가지 질문을 한단다. “이 세상에서 기뻤는가?”와 “다른 사람도 기쁘게 하였는가?”란다. 이 두 질문에 모두 “예” 할 수 있어야 천국으로 간다는 말씀이었다. 얼마나 지당한 말씀인지…. 우리 모두 몸과 지력과 재능으로 적극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나도 기쁘고 이웃도 기쁜 사랑나눔 운동을 하자.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으로 글을 마친다.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만족하며, 근심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전광석화와 같은 인생을 잘 보내는 것, 이것을 나는 큰 지혜, 큰 복이라고 말한다.” 사랑나눔이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