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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제약회사 ‘불법 리베이트’

태평양 제약 등 9개 제약회사, 402억 규모 리베이트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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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5호 정초원⁄ 2011.06.07 11:39:20

제약업계의 오랜 관행인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 지난달 29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태평양 제약 등 9개 제약사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 부당 고객유인행위를 해왔음이 드러났다. 공정위는 “이 기간에 9개 업체가 452개 약품과 관련해 병·의원에 제공한 리베이트 총 규모는 401억9400만원, 이익제공 회수는 모두 3만8278회에 달한다”면서 “리베이트 제공 대상에는 4대 대형병원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태평양 제약, 슈넬생명과학, 한올바이오파마, 뉴젠팜, 신풍제약, 영진약품공업, 미쓰비시다나베파마코리아, 삼아제약, 스카이뉴팜 등 9개 업체는 총 29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의약계의 조정되지 않은 병폐 일반적으로 제약업계에서 말하는 리베이트는 제약사가 병·의원에 자사 제품의 판매를 유치시키기 위한 영업 방식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제약 산업의 근본적인 병폐이자 오랜 관행이었다. 지난 2007년에는 공정위의 1차 리베이트 조사에 따라 삼일제약, 녹십자, 동아제약, 유한양행, 일성신약, 중외제약, 한미약품, 한국비엠에스, 한올제약 등 10개 제약사가 적발된 바 있다. 당시 공정위는 이들 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약 19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한 지난 2009년 2차 리베이트 조사에서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대웅제약, 한국 화이자제약, MSD, 한국릴리, 제일약품, 한국오츠카제약 등 7개 제약사가 불공정거래행위로 적발, 204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단지 한 두 개 업체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공정위의 조사는 내부자(퇴직자) 신고를 통해 진행된다. 따라서 적발되지 않은 제약업체들 또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리베이트를 제공해 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국내 제약 시장에선 리베이트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정설처럼 나돌 정도로, 좀처럼 근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뿌리 깊은 관행이다. 제공 수법도 각양각색 이번에 적발된 제약사들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행한 리베이트 방식도 가지각색이었다. 한올바이오파마는 병의원 의사들에게 학술논문의 번역을 의뢰, 통상보다 최대 150배에 이르는 과다한 번역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올바이오파마는 이러한 수법으로 1444개 병·의원에 88억7300만원을 지급했다. 직접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뉴젠팜은 2007년 서울 H의원에 200만원을 건네는 등 약 300여개 병·의원을 대상으로 26억9100만원을 지급했다. 슈넬생명과학도 761개 병·의원에 21억9100만원의 현금을 지급했다. 특히 서울 모 의원에는 2008년 6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총 8개월간 자사 제품을 월 500만원 처방하는 조건으로 총 처방목표액 4000만원의 25%인 1000만원을 건넸다. 현금은 아니지만 상품권이나 물품 지급을 통한 간접적인 리베이트도 여전했다. 삼아제약은 2008년 경남 A의원에 자사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주유권과 TV, 냉장고, 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제공했다. 과징금을 가장 많이 부과받은 태평양제약도 2101개 병·의원에 88억7600만원의 상품권을 지급했다. 이 외에도 골프 접대, 회식비 지원, 학회 발표비 지원 등의 방식도 다수 드러났다. 무엇이 문제인가 공정위에 따르면 제약산업은 일반인이 개입하기 어려운 특수한 시장이다. 특히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의 경우 최종 구매자인 소비자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은 의약품의 선택권을 가진 의사나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영업 활동에 힘을 쓰게 된다. 의사가 어떤 회사의 약을 처방하느냐에 따라 각 제약사의 매출 실적이 눈에 띄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물론 제약사가 혁신적이고 우수한 효능을 지닌 의약품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히 영업도 수월해지겠지만, 국내 시장의 사정상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 국내 제약업계의 대다수 기업은 제네릭(복제약) 출시에 의존하고 있다. 제네릭이란 의약품 중 특허가 만료됐거나 특허보호를 받지 않는 제품을 활용, 그 기술과 원료로 똑같은 효능의 제품을 만들어낸 것을 말한다. 이처럼 품질이나 약효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 제네릭 제품들이 회사마다 다른 제품명으로 출시되는 상황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때문에 비교적 이름없는 중소, 영세 제약사들이 리베이트 영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병·의원의 입장에서도 출시 회사만 다를 뿐인 동일 제품 중 처방될 약품을 선정해야 한다면, 자연히 리베이트 제공 업체의 제품을 처방하게 된다. 그러나 공정위가 발표한 제약산업 실태에 따르면, 이러한 리베이트를 통한 영업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을 지운다. 과도한 리베이트 제공 등으로 인해 의약품의 가격만 높아져 소비자들의 지출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더불어 대부분의 전문의약품이 보험 리스트에 등재되어 있어,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약제비(보험료) 또한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제약사뿐만 아니라 병·의원에 대한 비판도 일었다. 지난해 11월 28일 이후 개정된 의료법, 약사법, 의료기기법에 의하면 리베이트를 받은 병·의원들 또한 이익 제공자와 함께 처벌(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제약회사들의 리베이트는 개정법 이전의 행위라 이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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