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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복 문화 칼럼]“온몸으로 살아내는 것이 배우다”

극단 현장의 역사와 함께한 ‘통일넙죽이’ 정정희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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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3-234호 박현준⁄ 2011.08.08 13:38:06

성대복 문화기획자(오감커뮤니케이션 기획실장) 여느 날과 다름없던 7월 25일 오후, 예전 극단 후배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후배는 수화기 너머로 내가 극단에 첫 발을 디딜 때부터 오누이처럼 지냈던 정희 누나의 부고 소식을 알려왔다. 그녀는 바로 극단 현장의 대표배우이자 만담극 ‘이바구세상’의 통일넙죽이 나말자를 연기했던 故정정희(45)씨다. ‘이바구세상’은 지금도 공연기획자로서 다시 공연을 준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좋은 작품이어서 두 번째 공연을 같이 하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 사람이 떠나 버렸다. 연극판을 떠난 지 10년. 문화기획자 ‘성대복’이란 이름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첫 단추를 끼려고 하는 순간 예기치 않게 들린 이 소식은 통일넙죽이 정정희를 떠올리게 하며, 우리내들이 겪어내야 했던 격동의 80년대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지금의 연극판, 문화판을 돌아보기 위해 그 시대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생각했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지켜야 했던 배우로서의 삶과 죽음 직전까지도 손에서 놓지 못했던 연기. 그녀에게 배우란 삶 그 자체였을까?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노동현실…연극은 기억하고 있다 현장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마당극을 창작해온 극단으로 ‘횃불(1988)’ ‘노동의 새벽(1988)’ ‘돈 놀부전(1990)’ 등은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이야기를 담은 대표적 노동연극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정희 씨 역시 두 사람의 남녀배우가 꾸려나가는 2인극 ‘이바구세상(1991)’이란 작품에서 민주대머리 박만구를 연기한 영화배우 박철민과 호흡을 맞춰 통일넙죽이 나말자 역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대중을 만나 왔는데, 이 작품은 토막토막 끊어진 몇 개의 만담을 약간의 극적 장치를 활용해서 꾸몄다. 역대 대통령의 정치를 풍자하는 마당과 함께 인천 대지물산의 임금인상투쟁을 축구경기로 보여주는 등 총 11개의 마당으로 구성된 이 작품을 되돌아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지금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의 1990년대 노동조합 위원장 故박창수 씨의 열사마당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연극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노동현실과 무관하지 않고, 배우들 역시 온몸으로 이를 연기하며 노동자와 그 시대와 함께했다. 그녀 역시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에서 그들의 권익을 생목으로 외치고, 대학의 축제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배우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몸으로 부딪치며 알아갔던 것 같다. 사실 그 시대의 배우 모두가 그랬다. 연극 버린 이단아, 먹고 살아야 하는 걱정조차 부끄럽다 배우를 배출하는 대학은 무수히 많아지고, 매년 수많은 배우가 쏟아져 나오는데 지금의 배우들은 대부분 영화나 텔레비전을 기웃거린다. 그나마 연극판에 들어오는 배우들은 뮤지컬을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왜일까? 대중의 선택과 편향된 기호,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때문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진화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가고 있는 연극계의 눈물어린 자성이 없다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지금도 밥 굶어가며 연기에 대한 열망으로 극단에서 배우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겠지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배우의 길을 택한 사람도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배고픔에 자신만의 연기를 접고, 타협하는 이들도 보인다. 다만 그들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르바이트생 시급만도 못했던, 그 시절 노동자들의 일당 3000원보다 적었던, 1000원의 일당을 받으며 열정을 불태웠던 선배들의 고행 같았던 그 길이 배우로서 감내해야 할 길이었고, 그렇게 살아낸 인생이 연기가 되고 예술이 된다는 것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배우들의 일당은 얼마일지를 생각해보며, 자신이 택한 일이라는 사실만으로 온전히 버텨내야하는 연극쟁이들의 삶의 버거움을 온 몸으로 느껴본다. 장례식장에서 25년 만에 한자리에 함께 한 동료 배우들과 후배들, 아직도 당당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내가 배우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건강한 연극쟁이로서의 사고 자체를 버린 것과 먹고 살기 위해 세상과 타협했으나, 그리 잘살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25년 연기 인생을 뒤돌아보는 순간, 사소한 일조차 인터넷을 통해 이야깃거리가 되는 요즘 세상에서 그녀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글 한마디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며, 이렇게 대중에게서 사라지는 것 또한 배우의 인생임을 깨닫는다. 묵묵히 40년 삶을 마감한 그녀는 가는 길에도 우리에게 배우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며 또 다른 공연을 위해 훨훨 날아갔다. 부디 잘 가소서. 가시는 곳에서는 하고픈 말 다 하며 더 많은 이바구를 풀어 젖히길…. P.S - 다음 회 부터는 기획자들이 좁은 사무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의 뒤풀이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포함해 무대 위의 배우들이 실제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일상을 따라가 보고자한다. 무대 뒤에서도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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