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자동차 전문 주간지 아우토 빌트(Auto Bild)에 지난 9월2일 별난 기사가 실렸다. 독일 언론이면서도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차 중 하나’라는 폭스바겐 파사트에 상당 부분 비판적인 기사였기 때문이다. 한국 차를 ‘한참 아래’로 보는 독일 언론의 태도치고는 아주 이례적인 기사였다. 대개의 독일 자동차 전문지들은 BMW, 벤츠, 아우디라는 이른바 독일 3대 명차를 세계의 다른 차들과는 수준이 다른 귀족 정도로 취급한다. 어떤 차종을 비교하든 대개는 이 3대 명차 중에서 1, 2, 3등을 정하고 나머지 유럽차, 일본차, 한국차를 그 뒷순서에 놓고 차례를 매기는 식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차종을 경쟁시켜도 예컨대 ‘새로 나온 BMW와 벤츠’를 대결시키는 경우가 많고, 그 아래 급으로 내려와서야 일본 차와 프랑스 차를 비교하는 기사가 대부분인 데서도 이런 버릇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사는 폭스바겐이 자랑하는 중형 승용차 파사트와 현대의 새 차 i40를 직접 비교했다. 이런 비교 기사가 나오기까지의 사정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현대가 i40를 지난 9월1일 국내에서 공개하면서 공개적으로 밝혔듯 이 차는 “파사트를 잡기 위해 만든 차”이기 때문이다. 기사는 i40에 대해 “사실상의 독일 차”라면서 “조립은 한국에서 하지만 개발은 독일 오버우르젤의 현대 개발센터에서 이뤄졌고,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파사트 왜건의 치수까지 센티미터 단위로 재면서 만들어졌다”라고 소개했다. 그동안 미국에선 일부 차종이 “최고” 평가를 받으며 ‘빅 5’ 진입에 성공한 현대자동차지만 또 다른 자동차의 본바닥 독일에선 2류 취급을 받아온 게 현실이었다. 한국에서 조립하지만 개발부터 독일에서 폭스바겐 파사트의 치수까지 일일이 재가면서 만든 차. ‘파사트 저격수’의 가능성 인정받아 이런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독일 현지에서, 독일 차를 부술 신무기’로 현대가 개발해 내놓은 첫 작품이 바로 i40다. 이 차의 국내 광고 캐치프레이즈가 ‘가장 유럽적인 i가 온다’인 데서도 현대의 뜻을 읽을 수 있다. 이 기사를 보면서 한국 독자는 ‘왜 굳이 왜건형을 비교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유럽 실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미국과 한국에선 ‘못생긴’ 왜건형 차가 인기 없다. ‘아줌마가 장보러 가기 좋은 차’ 정도의 모양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럽에선 왜건형이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다. 화물 적재 공간이 승용차의 최고 3배나 되기 때문에 자전거 같은 스포츠 용품까지 실을 수 있으니 실용적인 유럽인들에게 어필하는 모양이다. 기본 모델이 2천 유로, 고급모델에선 7천 유로나 더 비싼 파사트가 전체적으로 앞서는 건 사실이지만 i40 역시 핸들링 제외하고는 크게 떨어지지 않는 성능을 과시. 그래서 독일 자동차 전문지에는 한국인에겐 다소 생뚱하게 느껴질 정도로 ‘왜건 실력비교’ 기사가 자주 실린다. 다음은 아우토빌트가 소개한 i40 왜건(한국에선 물론 왜건보다는 해치백이라는 좀 더 섹시한 듯한 이름으로 불리지만)과 파사트 왜건의 비교평가 결과다. 비교에 동원된 모델은 유럽답게 모두 디젤 엔진을 탑재한 폭스바겐 파사트 2.0 TDI BMT ‘트렌드라인’, 그리고 현대 i40 cw 블루 1.7 CRDi ‘스타일’ 둘이었다. 주행 성능 기사는 우선 “한국 차는 대체로 무난하게 달리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독일 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여태까지의 시각이었다”고 운을 뗀다. 그러나 곧이어 “최신 기술을 대대적으로 적용하고 디자인까지 새롭게 한 모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며 내용을 전개한다. i40의 주행성능에 대해 기사는 ‘아직 폭스바겐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차이를 두면서도, ‘그렇다고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고 또 단서를 단다. 파사트에는 폭스바겐의 유명한 ‘다이내믹 샤시 콘트롤(DCC)’ 같은 고급 옵션(1085유로)을 적용할 수 있어 i40와는 차원이 다른 주행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고급 옵션이 적용되기 전까지는 주행 성능에서 i40는 거의 파사트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 안팎 디자인, 부품의 재질, 마감의 정밀도 등에서 파사트가 대체로 앞서지만, 첨단기술 옵션을 대폭 적용하고 디자인까지 참신한 i40라면 겨뤄볼만 하다“ 평가 핸들링 i40를 발표하면서 현대 측은 “유럽 수출을 위한 모델이기 때문에 특히 핸들링에 공을 들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아우토빌트는 i40의 여러 성능에 대해 “파사트에 거의 근접했다”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딱 한 가지 비판받을 점이 있다며 핸들링 성능을 꼬집었다.
기사는 “i40의 핸들링을 파사트에 비교한다면 도넛처럼 물컹한 느낌이고, 도로와의 접촉감이 핸들을 통해 정확히 전달되지도 않는다”고 혹평했다. 사실 ‘독일차’라는 세 글자만으로도 전세계에서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바탕에는 바로 뛰어난 핸들링 성능이 있다. 그래서 독일의 고급차 시승기 등에는 “코너링이 무섭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를 잊게 된다”(8월 인천 송도에서 발표된 아우디 A6를 시승한 한 국내 기자의 시승기 중에서)든지, “어떻게 이렇게 엔진 튜닝을 할 수 있는지 미 우주항공국(NASA)의 최고 과학자에게 묻고 싶을 정도”(포르쉐 카이엔 터보에 대한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 트렌드’의 비교평가에서)라는 좀 얼토당토않은 듯한 평가도 나온다. 이렇게 핸들링 성능을 중시하는 유럽, 특히 독일에서 ‘현대가 공들인’ i40의 핸들링이 “물컹하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앞으로 이 분야에서 현대 등 한국 차의 분발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운전석 시야 “파사트의 전방 시야는 명료하고 최고의 기능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i40의 시야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기사는 평가했다. 도로 소음 파사트는 거의 모든 도로소음을 말끔하게 차단해낸다. 그래서 차내가 거의 이상적일 정도로 조용하다. 그렇지만 i40 역시 ‘망나니’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는 소음을 잘 막아냈다. 연비 i40는 배기량이 파사트 왜건보다 300cc 정도나 적다. 그러면서도 비슷한 주행능력을 인정받았다. 현대차는 연비가 좋은 것으로 미국에서 평가받고 있고, i40 역시 디젤 4.5리터로 100km를 달릴 수 있다고 이번에 발표됐지만, 아우토빌트는 “정말 이 정도로 연비가 낮은지는 앞으로 구체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차체 디자인, 재질, 마감 차 안팎에 사용된 부품의 재질과 마감 완성도에서는 확실히 파사트가 우위를 점했다. 왜건에서는 트렁크 기능이 중요하다. 파사트의 트렁크 적재용량이 603리터~1731리터(뒷좌석을 접었을 때)인 반면, i40는 553~1719리터로 더 작았다. 이는 i40의 차체가 더 낮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트렁크를 열면 파사트에선 트렁크문 끝이 최고 1.93m 높이까지 올라가지만 i40는 이보다 7cm 낮은 1.86m까지만 올라간다. 이렇기 때문에 ‘키 큰 사람은 머리를 부닥칠 수 있다’는 다소 독일스러운 평가를 이 기사는 내렸다. “더 비싼 파사트를 사겠다는 소비자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자유겠지만, 한국 차가 이 정도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 한국 차에 축하 박수를 보낸다” 가격 가장 저렴한 기본 모델에서도 가격차이가 2000유로 정도 난다. 게다가 i40에는 다기능 조작버튼이 장착된 가죽 핸들, 낮에도 저절로 켜지는 헤드라이트, 도난경보 시스템 등 더 많은 옵션이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옵션에 따라 i40에는 핸들 히팅, 앞좌석 시트 에어컨, 트래킹 컨트롤, 전자식 주차 도우미 등이 추가된다. 파사트에선 이런 기능을 추가하려면 최고 7000유로를 더 내해야 한다. 품질 보증 무상수리 보증기간이 파사트는 2년, i40는 5년이다. 이런 비교평가 결과를 보여 준 뒤 이 기사는 결론부에서 독자들에게 묻는다. “값은 비슷하지만(비교에 사용된 i40는 2만9425 유로, 파사트는 2만9390 유로) 옵션을 추가하면 최대 7000유로나 파사트가 더 비싼데 굳이 파사트를 살 필요가 있을까?”라고. 그리고 대답은 “노(Nein)”였다. 파사트에 못 미치는 부분이 일부 있지만 i40의 성능이 근접한 수준까지 올라왔으므로 기본적으로 파사트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상처를 입는다는 분석이다. 기사는 한국에 보내는 축사로 끝을 맺는다. “현대차는 아직 폭스바겐과 완전히 동일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i40라는 아주 설득력 있는 차를 유럽에 내놓았다. 한국인은 실망할 필요가 없다. 잘 달리고 높이 평가될 수 있는 차를 내놓은 현대에 축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