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군소 언론사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이른바 ‘조중동매 종편’ 방송이 시작된 뒤 거의 한 달이 돼간다. “당초 예상보다 시청률이 너무 낮다”는 평가를 보면서 언론 환경이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 ‘새 방송이 생긴다’는 사실은 대단한 사건으로 기성세대의 뇌리에 기억돼 있다. 특히 80, 90년대에 기자 생활을 했던 사람에게 그렇다. 전두환 대통령의 이른바 제5 공화국이 들어서며 펼쳐진 언론 환경을 한번 되돌려 보자. 정권을 틀어쥔 신군부의 강제적인 언론 통폐합에 따라 한국의 언론기관은 정말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신문 6곳(조선, 동아, 중앙, 한국, 경향, 서울)과 방송 2곳(KBS, MBC)에 연합통신(현재의 연합뉴스)을 더한 9곳이 국내의 모든 뉴스를 취급했다. 그리고 이들 9곳이 정부 부처의 기자실을 지배했다. 상당히 큰 사건이 일어나도 이들 9개 언론사를 대표하는 기자단이 이른바 ‘당고(담합의 일본어 발음)’를 하면 그 사건은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 됐다. 언론 매체가 극소수인 상황에서 조중동과 양대 방송으로 상징되는 메이저 언론의 보도에 따라 한국 사회는 크게 출렁거리며 여론의 향방이 뒤바뀌었다. 소수의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거의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었던 시대다. 이렇게 보도할 권리보다 더 큰 ‘보도하지 않을 권력’을 누려본 세대에게 남아 있는 ‘새 방송’의 기억은 노태우 정권 당시 출범한 SBS 방송이었다. 방송 매체가 KBS, MBC 두 곳밖에 없는 상황에서 특혜 시비 끝에 탄생한 SBS 방송을 국민들이 안 볼 재간이 없던 시대였다. 채널이 2개에서 3개로 늘어났는데 어떻게 3분의 1을 안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올 들어 ‘나는 꼼수다’로 대표되는 팟캐스팅이 위력을 발휘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성세대의 이런 낡은 기억은 유효한 것처럼 여겨졌다. KBS, MBC, SBS를 잇는 제4 방송(이른바 조-중-동-매 종편 방송)이 생긴다는 것은 낡은 세대의 머리에서는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세상은 이미 완전히 다른 차원, 즉 스마트폰 세상에 들어선 상태였다. 팟캐스팅 이전에 이미 일부 자리를 잡은 케이블 방송에 대한 고려도 미흡했던 것 같다. 3대 공중파 방송 이외에 수십 개의 케이블 채널을 즐기는 나라에서 제4, 제5의 종합편성 방송이 생긴다고 과거 SBS 창사 때처럼 국민의 시선이 확 쏠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종이신문 또는 인터넷언론과 비교한다면 종합편성 방송은 정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이 드는 언론 사업이다. 오죽하면 우리의 경제 총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 규모가 큰 미국에서도 종합편성 방송은 ABC, NBC, CBS 세 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각자 독특한 특징을 유지하는 케이블 방송이겠는가? 미국 전역에 도시마다 지역 방송이 있지만 대개는 3대 메이저 TV 네트워크 중 하나에 가입해 프로그램을 공급받고 지역 자체 프로그램은 뉴스 정도만 운영하고 있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 최근 한국의 부동산 시장, 종편 사정 등을 보면서 “경제를 마음으로 이기려 드는 어리석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부동산 값이나 종합편성 채널의 숫자 같은 경제현상은 바탕을 이루는 경제형편과 정확히 부응한다. 집 살 돈이 없는데 집값이 뛸 리 없으며, 광고 시장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데 종편을 갑자기 2배 이상으로 늘릴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주무르는 낡은 세대의 두뇌가 하루 빨리 합리화-경제화 돼야 한다. - 최영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