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에 ‘전당대회 돈 봉투 쓰나미’가 휘몰아치고 있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촉발된 ‘전대 돈 봉투’ 파문의 불똥이 현재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민주통합당까지 번지고 있다. 즉 고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돈 봉투를 건넨 후보로 박희태 국회의장을 지목한 9일 민주통합당에서도 지난 해 12월 26일 전당대회 컷오프 예비경선을 앞두고 모 후보 측이 일부 영남권 지역위원장들과 식사를 하며 50만~500만 원의 돈 봉투를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즉시 검찰에 성역 없는 광범위한 수사를 요구했다. 반면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나선 민주통합당은 관련자들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해당 후보자의 자격 박탈과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서는 자칫 현직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 재임 중 검찰조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 여야 유력인사들의 검찰 줄소환이 불가피해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정치권의 추악한 ‘돈 선거’ 행태는 여야가 다를 바 없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여야는 오는 4·11 총선을 앞두고 큰 위기감 속에 고강도의 처방전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은 2008년 전대뿐 아니라 2010년, 2011년 전대 돈 봉투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특히 박 의장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 결과 그의 17대 국회의원 시절 비서를 지낸 고명진이라는 사람이 문제의 돈 봉투를 돌린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박 의장에게 ‘국회의장직 사퇴의 결단’이 요구될 수도 있다. 이상돈 비대위원은 10일 박 의장에 대해 “법적인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ㆍ도의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며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이에 대해 현재 해외 출장 중인 박 의장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박 의장은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입법부 전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의장직을 내놓고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것만이 현직 입법부 수장을 조사하는 데 따른 검찰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라는 지적이다. 한편 민주당은 자체 조사에 나섰지만 돈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진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떳떳하다면 자체 진상조사 결과에 관계없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검찰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련자를 철저히 수사해 정치권에 만연한 돈 선거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주기 바란다. 물론 검찰 수사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당내 주요 선거에서의 ‘선거공영제’ 도입과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에 가까운 당내 경선방식 도입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현재 진행 중인 전당대회에서 모바일 투표를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돈 선거가 뿌리 뽑힐 것 같지 않다. 더 근원적인 처방이 절실하며 무엇보다 소수에게 집중된 정당 권력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이렇듯 60년대식 낡은 정치 관행인 전당대회 돈 봉투가 이어져 내려오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현역 의원 및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자기 지역 출신 대의원들의 정치적 의사를 자신의 사유물로 여기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또한 대의원들 역시 자신의 주의(主義)와 노선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하기보다는 명망가 중심으로 뭉치는 정치 풍토에 수동적으로 따라온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낡은 정치 관행을 모두 털어내길 바란다. 이를 위해 공천, 당직인선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여야 막론하고 오랜 악습과 결연히 결별하지 않는다면 4월 총선에서부터 성난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 심원섭 정치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