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와 벤츠는 ‘영원한 맞수’로 불리지만 수치상으로 볼 때는 벌써 큰 차이가 벌어져 있다. BMW가 훌쩍 앞서나가는 1등으로 단독 질주하고 있다면 벤츠는 2011년에 아우디에게도 밀려 3위로 순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BMW는 작년 138만여 대를 팔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킨 반면, 벤츠는 126만여 대에 그쳐, ‘만년 3위’ 아우디의 130만여 대에 2위 자리를 내줬다. 지난 2005년까지만 해도 벤츠가 세계 럭셔리 자동차 시장의 단연 1위였다는 역사를 돌아본다면 지난 몇 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벤츠의 순위가 1→2→3위로 계속 미끄러지는 현상이다. 아우디의 2위 등극은 특히 자동차의 새로운 세계 중심 중국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아우디-폭스바겐 그룹은 중국에 일찌감치 진출해 많은 부분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하면서 선전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벤츠가 3위로 밀렸지만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 시장만 놓고 본다면 아직도 BMW와 벤츠가 치열한 1위 경쟁을 벌이고 있음을 작년 실적으로 알 수 있다. 작년 미국에서 벤츠는 24만5231대를 팔아 BMW의 24만7907대에 단지 2600여 대가 적은 2위였다. 두 업체의 미국 내 판매 경쟁은 연말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1등을 하느냐”는 화제가 됐다. 미국 럭셔리 자동차 시장의 3등은 렉서스(19만8552대)였다. 미국에서 줄곧 판매댓수 1위를 달리던 렉서스가 일본 대지진 등의 영향으로 작년 판매댓수가 13%나 줄어든 가운데, BMW(미니 포함)은 15%, 벤츠는 17.5%나 판매를 늘리면서 일약 1, 2위로 뛰어오른 결과다. 아우디의 대활약(2011년 판매 실적이 전년 대비 중국 37%, 미국 16%, 유럽 12% 증가)으로 졸지에 3등으로 밀린 벤츠의 충격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벤츠의 디터 제체 회장은 작년 9월 “우리는 고객, 직원, 투자자에게 벤츠가 3위 자리를 인정한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며 “BMW, 아우디는 고속성장하고 벤츠는 저속성장을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내놓고 과시할 필요가 없는 전통적 상류층’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온 벤츠에 맞서 BMW는 “우리는 멋있을 뿐 아니라 달리는 맛도 환상적”이라는 특징을 내세워 젊은 층을 파고들고… 벤츠가 두 경쟁업체에 뒤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분석된다. 하나는 디자인이고, 다른 하나는 주요 고객층이다. 우선 디자인을 보면 그간 BMW, 아우디에 뒤지는 측면이 있었다. BMW는 전체 라인업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편이다. 1, 3, 5, 6, 7로 이어지는 시리즈에서 “숫자가 높을수록 좋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 놨고, X로 시작하는 SUV 시리즈, 그리고 M으로 시작하는 스포츠 성능 강화 버전은 멀리서 봐도 “아, 저건 M이구나”하고 알 수 있도록 디자인 차별화에 성공했다. 또한 아우디는 ‘전통의 중압감’이 가장 적은 업체답게, 젊은 감각에 맞는 파격적인 디자인 혁신을 주도함으로써 젊은층 또는 여성에게 인기를 끄는 편이다. “세계 럭셔리 카의 디자인 선도 업체는 아우디”라는 평가가 최근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에 반해 벤츠는 그간 ‘전통의 벤츠 분위기’를 고집해 왔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라는 역사에 걸맞게 벤츠 특유의 디자인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차종별 디자인 차이를 적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SLK 등의 배지가 붙은 일부 ‘아주 섹시한’ 차종이 있지만, 나머지 C, E, S 클래스는 체급은 다르지만 외형은 비슷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쉽게 말해 BMW의 경우는 멀리서 봐도 “아, 저건 7시리즈”라고 알 수 있도록 체급별 디자인 차별화를 한 반면, 벤츠는 멀리서 봤을 때는 “벤츠는 벤츠인데 어떤 급인지는 잘 모르는”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벤츠가 이렇게 디자인 콘셉트를 정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벤츠의 그간 고객층은 한 마디로 ‘돈 많고 성공한 중년 이상 남자들(old rich wise men)’이었다. 사회적으로 일반인들과 차이를 둬야 하는 상류층으로서 최고급 차를 타기는 하지만, “나 돈 많다”고 졸부처럼 자랑할 필요는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의미다. 그간 각국의 대통령 의전 차량이 많은 경우 벤츠였다는 사실에서 이런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 빈틈을 BMW와 아우디가 파고들었다. BMW는 1990년대 이후 “기술적으로, 안락함에서, 럭셔리 감각에서 벤츠보다 뛰어남은 물론 스포티하기까지 하다”는 점을 적극 부각시켰다. 특히 공을 들인 것은 럭셔리 카로서는 특이하게 낮은 급이랄 수 있는 3, 5시리즈였고, 미국에서 자동차 비교 테스트를 하면 거의 항상 3 또는 5시리즈가 “벤츠보다 더 잘 달린다”는 평가를 얻으면서 ‘돈 많은 젊은층’에 어필하기 시작했다. 닷컴 붐 등으로 큰 돈을 거머쥔 미국의 젊은 부자들은 BMW로 몰려갔고, 결국 2005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선 BMW가 벤츠를 판매댓수에서 확실하게 제압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타는 벤츠’와는 다른 차를 타고 싶다는 욕구에 초점을 맞춘 셈이었다. 2000년대 두 업체의 선전 문구를 비교해 봐도 벤츠는 우아함, 안전과 신뢰성, 웅장함 등을 강조하면서 멈춰 서 있는 사진을 많이 쓴 반면, BMW는 달리는 즐거움(sheer driving pleasure)을 강조하면서 역동적으로 달리는 사진을 많이 썼다는 비교분석도 나와 있다. 이런 결과로 두 메이커의 평균 구매자 나이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작년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벤츠 고객의 평균 나이는 54세인 반면, BMW는 49세, 아우디는 48세였다. 이런 고객 연령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큰 영향을 미친다. 30, 40대에 BMW 3, 5, 6 시리즈를 탄 사람은 50, 60대가 됐다고 해서 벤츠 S클래스로 갈아타기보다는 익숙한 BMW의 상위 모델인 7시리즈 등으로 업그레이드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고객 평균 나이는 벤츠가 50대고, BMW-아우디는 40대로 벌어져. “이러다간 영원한 3등” 깨달은 벤츠는 젊은이 마음을 잡기 위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 결국 자동차의 역사를 시작한 업체, 벤츠는 젊은층 공략에 실패함으로써 점점 순위가 뒤로 밀리고 있는 게 현재의 형국이다. 이런 추세를 뒤집기 위해 벤츠는 작년 상하이 모터쇼에서 ‘첨단 소형 럭셔리’라는 A클래스 콘셉트 카를 발표하는 등 반전에 힘쓰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벤츠의 주력 포인트는 ‘젊은층의 마음 잡기’가 될 것이며, 벤츠는 이미 작년 7월부터 독일, 미국, 중국 등에서 A클래스 카를 전시해 놓고 젊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를 초청하는 ‘아방가르드’ 파티 시리즈를 연달아 개최하고 있다. 앞으로 곧 한국에서도 벤츠의 ‘젊은이 파티’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여태까지의 사태 진행에 대해 벤츠의 직전 회장인 위르겐 후버트는 작년 인터뷰에서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는다면 우리는 S클래스와 E클래스만 생산하는 업체로 남을 것이고, 아마 브랜드 순위도 15위 정도로 내려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의 3대 명차 메이커가 치열한 순위 다툼에 돌입함에 따라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벤츠가 얼마나 젊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미 젊은 고객을 확보한 BMW, 아우디가 얼마나 수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