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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맹녕 골프 칼럼]골프를 슬프게 만드는 골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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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3호 박현준⁄ 2012.02.27 11:20:56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로 유명한 독일의 대표적 수필가 안톤 슈낙이 골프를 쳤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글을 썼을 것이다. 골퍼가 친 공에 맞아 한쪽 다리를 절며 먹이를 달라고 졸졸 쫓아다니는 오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넓은 연못 가운데 골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가짜로 만들어 놓은 백조가 외롭게 늘 한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우리를 처량하게 만든다. 어느 비오는 가을날 잣나무 위에서 ‘구-구-구-’하며 울어대는 산비둘기의 구성진 소리는 왠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어느 늦가을 갑자기 쏟아진 비에 머리와 옷이 흠뻑 젖어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여성 골퍼의 모습은 가련해 보인다. 골프 코스에서 얼굴 탄다고 오징어 마스크 하고 다니는 여성 골퍼는 지탄의 대상이다. 일곱 번째 프로 테스트에 불합격해 짐을 싸들고 클럽 하우스를 힘없이 나오는 낙방 예비 프로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팔순이 넘은 노인 골퍼가 오늘 이번 라운드로 골프에 종지를 찍겠다고 선언한 뒤 의연한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인생의 슬픔을 느낀다. 내기 골프에서 스코어를 속였다고 멱살 잡고 싸우는 시니어 골퍼는 왠지 추해 보인다. 아주 무더운 여름날 OB난 공을 찾아오라고 숲속으로 캐디를 미는 억대 골프장 회원님은 왠지 밉살스럽게 보인다.

젊은 여성 골퍼를 대동하고 코스에 나온 나이 많은 영감님이 ‘원더풀 샷!’을 연발하며 딸 같은 애인에게 알랑 떠는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다. 캐디에게 치근대며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달라고 애원하는 높으신 관리를 볼 때면 사무실의 그 근엄한 모습은 위선으로만 보인다. 말끝마다 연하의 보스에게 ‘회장님, 회장님!’ 하며 ‘나이스 샷, 굿 파, 나이스 아웃, 오케이!’를 연발하는 어느 재벌 회사의 60세에 가까운 대머리 임원을 볼 때면 샐러리맨의 비애를 느낀다. 골프가 생각대로 잘 안된다고 골프채를 집어 던지는 후배, 드라이버를 꺾어 버리는 친구, 재수 없는 공이라고 풀 속으로 날려 보내는 선배, 퍼터로 그린을 찍어 버리는 사업가… 이들은 정말 잘난 골퍼들이다. 무더운 여름날 티셔츠를 바지 밖으로 길게 내놓은 배뚱뚱이 골퍼, 이슬이 차인다고 바짓가랑이 접고 다니는 꺽다리 골퍼, 허리 뒤에 흰 수건을 차고 나타나는 건설 회사 사장님, 짧은 치마에 껌 씹으며 검은 선글라스 쓰고 되지도 않은 영어를 내뱉는 골퍼, 모두들 정말 밥맛없는 골퍼이다. 캐디가 알려준 핀까지의 거리가 틀려 벙커에 빠졌다고 성질부리는 영감님, 알려주는 퍼트 브레이크가 틀렸다고 중얼중얼대며 ‘18’을 외쳐대는 젊은 친구, OB가 연속 3번이 나 화가 난 나머지 돌아가겠다고 골프 가방을 챙기는 어느 회사의 중견 간부, 쓰리 퍼트했다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입이 30리나 나온 모 대학 교수…. 이들 중에는 술좌석에서나 강의 시간에 골프 매너에 유난히 신경을 쓰라고 후배나 초보자들에게 강의하는 사람이 있으니 위선자들이다. 골프장의 이 모든 것들은 골프를 슬프게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그 모습과 정다운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 본다. - 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 겸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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