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논의를 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특수한 장소가 떠오른다. DMZ(DeMilitarized Zone), 즉 비무장지대다. 정치적으로 매우 특수한 장소다. 또한 세계 어디에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곳,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자연의 장소다. 신비한 자연의 치유 상징이기도 하다. 놀라운 곳이다. 이곳은 한반도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역사의 땅이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 즉 파괴의 땅이자 자연에 의해 회복된 생명의 땅이기도 한 곳. 인간이 잔혹하게 파괴한 곳을 자연이 스스로의 힘으로 60년 동안 치유해 이제는 생태의 땅이 됐다. 전쟁을 상징하지만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인위적 손길이 미치지 않은 평화의 땅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1953년 7월 27일에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며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이 확정되고 이 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 2km씩 너비 4km의 DMZ가 설정됐다. 1953년 8월 ‘민간인의 비무장지대 출입에 관한 협의’에 근거해 비무장지대에 한국주민 거주의 ‘자유의 마을’과 북한주민 거주의 ‘평화의 마을’이 생겼다. DMZ의 위치는 동서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서단 동경 126° 2‘에서 강원도 고성군의 동단 동경 128° 35’에 이르고, 남북으로는 경기도 고양시와 김포시의 남단 북위 37° 34‘에서 강원도 고성군의 북단 북위 38° 36’에 이른다. DMZ는 비극의 땅이자 동시에 희망의 땅이다. 있어서는 안 될 참혹한 전쟁이었지만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며 DMZ, 한국의 비무장지대는 이 땅의, 아니 이 세계의 평화를 기리는 땅이 될 수 있다. 한국전쟁을 반추해 보면 오로지 힘의 논리로 점철되는 역사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분명 패잔국은 일본인데 애꿎은 대한민국이 반으로 갈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왜 패잔국인 일본이 반으로 갈려야지 우리나라가 갈려야 했는지에 계속 의문이 갔다. 힘의 논리와 피점령국의 비애…. 정의의 진화였던 역사의 발전에도 사람 변수가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이기주의적인 못난 정치 지도자들로 나라의 운명은 비참해진다. 국가만이 아닌 국민 모두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몰아간다. 애매하게 반으로 갈린 대한민국에는 전쟁이 발발했다. 그 잔인한 전쟁으로 패잔국 일본은 부흥한다. 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DMZ는 모두 지니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이국 땅인 미국에서 공부하며 지인들의 약소국 대한민국에 대한 편협한 인식에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며 국제관계를 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1989년 귀국 이래 역사와 국제관계의 파생 지역인 이 DMZ 상징성에 대한 성찰도 지속됐다. 불행한 땅이었지만 발상의 전환을 혁신적으로 하자면 이곳이 인류의 평화를 상징하는 메카가 될 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고 많은 분들과 이러한 생각을 함께 공유하는 움직임을 가졌다. 지금은 역사적, 군사적, 외교적 영역만이 아니고 문화, 생태, 환경 영역에까지 두루 많은 관심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에 오로지 하나 밖에 없는 이곳에 대한 연구들이 각 영역에서 세계적인 협업으로 깊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또한 이곳에 생태공동체를 만들어 평화도, 자연도 보존되는 다시없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국제적인 평화 공동체 마을, 예를 들면 포콜라레 운동의 ‘마리아 폴리’ 같은 곳이 이곳에 자리 잡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평화공동체를 넘어 영성공동체이기도 한 세계적 평화-생태 마을이 자리 잡아 영원한 교육적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 - 안명옥 차의과학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교수,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