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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하야시킨 美 워터게이트와, 한국의 민간인사찰이 닮고 또 다른 점

미국에선 단순절도가 대통령 하야로 이어지고, 한국에선 초대형 사건이 2년간 묻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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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7호 최영태⁄ 2012.04.03 16:42:10

대통령이 몰래 하수인들을 시켜 불법을 저질렀다. 그들 중 일부가 법망에 걸렸다. 처음엔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범인들과 정치권과 연결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을 향해 수사망이 좁혀지기 시작한다. 대통령은 돈으로 범인들의 입을 막으려 들고, 사법기관은 수사기록을 빼돌려 대통령 측에 전달하지만….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다. 위는 1974년 미국 대통령 닉슨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의 스토리다. 김종익 씨 등에 대한 민간인 사찰 문제가 대형 사건으로 커진 가운데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기록을 역사책(하워드 진 지음 ‘미국 민중사’)에서 읽어봤다. “한미 두 나라에는 참 비슷한 일도 많지만 다른 점도 있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거진 것은 1972년 6월이었다. 당시 미국은 선거 국면이었다. 재선을 노리는 닉슨 대통령은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휘하 운동원 5명을 워터게이트 호텔로 침입시킨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경찰에 붙잡힌다. 처음엔 단순한 호텔 절도 사건이었지만 수사 과정에서 백악관과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입막음 돈 건네지고, "감형시켜준다" 약속하고…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절도 사건에 관련됐다면? 한국에선 사법기관이 ‘정치적 고려’를 하기 쉽다.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다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사법기관엔 이런 부담이 한국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적다. 검찰이 3개월 만에 이들을 기소하고 수사망을 좁혀 들어가자 하위 공직자들 사이에서 증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승사자 같은‘ 미국 사법기관의 공포를 아는 하위 공직자들이 “이러다가는 내가 죽는다”고 깨달으면서 살기 위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닉슨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워터게이트 침입 5인조에게 “수감돼도 대통령 권한을 이용해 감형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입막음을 위해 45만 달러(5억 원 상당)를 건넸다.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수사를 진행 중인 FBI에 “사건을 호텔 절도 사건 이상으로 확대하지 말라”고 부탁했고, FBI 국장은 사건 관련 기록을 몰래 빼돌려 닉슨의 법률조사관에게 넘겼다. 그러나 증언이 잇달으면서 백악관의 이러한 기도는 모두 무산됐고, 결국 닉슨은 워터게이트 호텔 침입 뒤 2년 2개월 만인 1974년 8월 하야했다. 단순한 호텔 절도 사건이 ‘대통령 하야’로 이어진 데는 사법당국의 수사 의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물론 미국의 사법기관(경찰, 검찰, 법원)도 역사적으로 지배층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수사 또는 판결을 한 기록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추상같은 정의부(미국 법무부의 영어 명칭은 Department of Justice)’의 면모를 갖췄고, 결국 사법기관의 이런 엄정한 태도가 ‘단순 절도사건으로 일국의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큰일을 이뤄냈다. 워터게이트 도둑놈 사건이 정식 기소되는 데 미국에선 단 3개월이 걸렸다. 반면 2010년 6월 터져 나온 김종익 씨에 대한 민간인 사찰 건이 전국적 관심사가 된 것은 거의 2년이 지난 뒤에, 정말로 우연히 뜻밖의 증언이 나온 뒤였다. 이런 게 두 나라의 차이다. 공정한 사법기관은 이렇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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