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해에 개봉된 정치 관련 영화(‘킹메이커’)에는 역시 정치적으로 재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이 영화에서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이자, 민주당 내 경선만 이기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모리스 주지사(조지 클루니 분)에게 그의 언론담당 보좌관 스티븐 마이어스(라이언 고슬링 분)가 소리 지른다. “당신은 이기려 하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정치의 딱 한 가지 룰을 어겼어요. 당신은 전쟁을 시작할 수도, 거짓말을 할 수도, 사기를 칠 수도, 나라를 거덜낼 수도 있지만, 인턴을 범하면 안 돼요. 적들이 그걸로 당신을 쓰러뜨리잖아요(Because you want to win. Because you broke the only rule in politics. You want to be President, you can start a war, you can lie, you can cheat, you can bankrupt the country, but you can't fuck the interns…, they'll get you for that).” 거짓말을 할 수도, 사기를 칠 수도, 나라를 거덜낼 수도…. 낯설지가 않다. 전쟁을 시작하고, 거짓말-사기를 치고, 나라를 거덜낸 대통령을 우리는 최근 아주 줄기차게 보고 있다. 국민을 죽음의 아가리로 몰고 가는 대통령이라도 언론만 장악하면 거짓 선전으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고, 나라를 거덜낼 일을 마구잡이로 하더라도 언론만 꽉 쥐면 가끔 시장통에 나가 오뎅을 먹는 것 같은 사진만 올려주면 지지율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검찰만 잘 휘어잡으면 죄를 져도 전~혀 처벌받지 않는 시스템이 팍팍 돌아간다. 비록 영화 속 대사지만 이렇게 ‘모든 걸 해도 되지만, 언론에 두들겨 맞을 일만 피하면 된다’는 게, 미국 정치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내주는 것 같다. 창작 수준인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증거’를 근거로 이라크 전쟁이라는 난장판을 벌여 놓고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조지 부시 직전 대통령의 화려한 치적에서 미국 정치의 이런 요지경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한심한 미국 정치를 만드는 요인으로 양당 제도를 꼽는 분석도 있다. “공화당이 하건, 민주당이 하건 다 그게 그거”란 인식이 특히 하층민에 잘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투표율은 낮아지고 조지 부시가 그랬듯 아주 적은 지지만 받더라도 대권을 누릴 수 있다. 미국의 양당제는 ‘나머지 99%’를 대변할 제3당의 출현을 막는 역할도 잘 수행한다. 로스 페로, 랄프 네이더 등 제3당 후보가 99%에게 좋은 정책을 제시했어도 선거에선 거의 무의미한 성적을 거둔 요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유럽 국가에는 다당제가 많다. 누구나 자신을 대변할 정당을 갖고 있고, 이들 정당들이 득표율에 따라 연립정부를 운영하면서 일당 독주를 막는 시스템이다. 반면 미국, 일본, 한국 등은 완전 양당제 또는 유사 양당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자민당이 전후 55년간 거의 1당 독점을 누렸으며, 그 비결은 자민당 내 파벌이 번갈아 가며 집권하는, 즉 ‘바뀌는 것 같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안 달라지는’ 이른 바 1.5당 시스템이었다. 한국에서도 자유당(이승만), 공화당(박정희), 민정당(전두환)으로 이어지는 1당 독재는 물론이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3당 합당’(1990년)을 통해 자민당과 비슷한 1.5당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국에도 유럽식 다당제가 정착돼 ‘사회적 약자라도 자신을 대변할 정당을 갖는’ 시대가 도래하길 기다려본다. 그나저나 미국에서는 “정치인은 모든 짓을 다 해도 되지만 성추행만은 안 된다”니 그래도 한국보다는 나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정치인이 모든 깽판을 다 치고 난 다음에 또 성추행까지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 최영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