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할 회사에 이런 투자를 하고 라인업을 확충할 리 없지 않나.” 르노삼성의 매각설이 나오는 가운데 방한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 카를로스 곤의 반문이다. 현재 르노삼성에 대해서는 매각설과 R&D 인력 이탈설 등 각종 루머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는 모습이다. 올해 르노삼성의 상반기 판매량을 살펴보면, 내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41.7% 급감한 3만648대, 수출은 26.1% 줄어든 5만2414대로 나타났다. 전체 판매량도 32.8% 떨어진 8만3062대로 급감했다. 여기에 지난 6월에는 국내 완성차 업체 중 5위로 내려앉으며 ‘꼴찌 추락’이라는 오명까지 입게 됐다. 궁지에 몰린 르노삼성의 상황을 의식한 듯 지난 6월 르노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카를로스 타바레스 부회장이 한국을 찾아 르노삼성의 라인업 확충 등을 약속했다. 이어 7월20일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1인자인 카를로스 곤 회장까지 내한해 “르노삼성이 더 나은 실적을 올릴 수 있도록 돕겠다”고 장담했다. 특히 곤 회장은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2014년부터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닛산의 ‘로그(ROGUE)’ 연 8만대씩을 생산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1700억 원(1억6000만 달러)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은 30만대에 달하지만, 판매 부진으로 올해 17만대만을 가동할 전망이다. 따라서 남은 13만대의 여유 생산능력을 ‘로그’ 생산에 쓰겠다는 게 곤 회장의 전략이다. 그러면서도 곤 회장은 르노삼성을 ‘로그’의 생산 기지로 활용한 이유가 단순히 생산능력의 여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는 “다른 곳에서 로그를 생산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굳이 한국을 최종 선택한 것은 르노삼성이 갖고 있는 품질 경쟁력을 믿었기 때문”이라며 “경쟁력이 없다면 생산능력이 남아돌더라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곤 회장의 이번 결정이 르노삼성의 근본적인 경영난을 해결해주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곤 회장은 “르노삼성은 앞으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중요한 생산 거점이 될 것”이라며 “이로써 닛산은 경쟁력 있는 생산력을 추가 확보하게 됐으며, 르노는 확고한 아시아 지역의 허브를 가지게 됐다. 또 르노삼성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 모멘텀을 가진 셈”이라고 말했다. 3개 회사가 모두 웃을 수 있는 ‘윈-윈-윈’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7월 20일 내한해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활용” 밝혔지만 일부에선 “곤 회장의 선물은 근본적 해결책 안돼” 분석도 이 같은 곤 회장의 발언에는 르노삼성을 그룹 차원에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해법만이 나와 있을 뿐, 한국 시장에서의 위기 극복 방안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르노삼성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으려면 단순한 생산 거점으로서의 기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부산공장 생산 가동률을 높이는 것 외에 한국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단위별로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이정표를 갖고 브랜드 강화 전략을 실현하겠다. 부품 국산화율을 높이고, 르노삼성의 전체적인 세그먼트를 강화할 것이다. 큰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타바레스 부회장 내한 당시 제기된 이야기만 반복하는 데 그쳤다. 한편 곤 회장의 이번 발표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르노삼성은 하반기 대규모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의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곤 회장의 발자취 때문이다. 곤 회장은 그간 구조조정을 무기 삼아 무너져가는 회사를 일으켜 세우며 ‘칼잡이’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또한 르노삼성의 위기를 두고 “이대로 두면 구조조정의 수순을 밟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르노삼성 매각없고, R&D도 유지” 무성한 루머에 곤 회장 “긍정적 상황” 주장
다음은 7월20일 열린 카를로스 곤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한국의 강점은 무엇인가? “한국의 높은 기술력과 비용 경쟁력이 강점이다. 현재 상황에서 한국은 성과가 좋으며, 정부 지원도 뛰어나다. 환율도 우호적이다. 여러 가지로 아주 긍정적인 상황이다. 또한 한국의 부산공장은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룹 내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 르노삼성 매각설이 돌고 있는데. “매각은 없다. 르노삼성에 대해 끊임없이 개선 작업을 벌이는 것은 매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 동아시아권에서의 향후 방향성은? “르노그룹은 ‘르노삼성’이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갖고 있다. 르노그룹은 르노삼성, 닛산과 함께 생산 부문을 공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소형 자동차를 생산할 수도 있다. 비용적인 면에서도 소비자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의 수요 또한 나름대로 확보 중이다.” - 르노삼성의 점유율이 크게 떨어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시장점유율이 작년의 7%에서 올해 4%까지 떨어진 게 사실이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한때의 높은 점유율에) 만족했었는지도 모른다. 제품 경쟁력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시장의 경쟁은 치열했다. 그래서 점유율이 떨어졌다. 앞으로 비용경쟁력과 제품 품질을 올릴 것이다. 부품 국산화에만 초점 맞추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퍼포먼스를 개선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도전을 피해가는 기업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 -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는 닛산 ‘로그’만 생산되나? 또 1700억 원의 투자 비용은 어디에 쓰이나? “현재로서는 로그만 생산할 예정이다. 투자 금액 1700억 원도 로그 생산 설비에만 투자한다. 1700억 원은 신차 연구·개발에는 부족한 비용이다. 필요하다면 추가로 투자할 수도 있다. - 로그는 어느 지역에 수출되나? “한국에서 생산되는 로그는 북미 대륙에 우선적으로 수출된다. 가능하다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 시장에 수출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 한국을 핵심 생산 거점으로 보고 있다.” - 중국 시장에도 수출되나? “중국 시장으로의 수출은 다른 문제다. 중국 시장은 별도로 본다.” - 이번 결정은 이왕에 놀고 있는 르노삼성의 13만 생산능력을 활용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인가? “물론 부산공장에는 활용하지 않는 생산능력(캐파)이 있다. 그러나 르노삼성에 경쟁력이 없다면 남은 캐파를 활용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활용하는 것이다. 경쟁력이 없다면 남아도는 캐파라도 쓸 수 없다. 중요한 부분이다. 르노삼성은 ‘2012년 리바이벌 플랜’을 갖고 있다. 르노삼성의 경쟁력을 좀 더 높여주는, 함께 가는 전략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 르노삼성의 R&D 부문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런 소문은 들어보지 못했다. 프랑수와 프로보 르노삼성 사장이 답변해 달라.” 프랑수와 프로보 “이런 루머에 대해 질릴 정도로 많이 들었다. 르노삼성에게는 비전이 있다. 곤 회장이 말한 대로 낙관적인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R&D 인력은 전혀 떠나지 않았고, 중장기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카를로스 곤 “인력이 떠나가고 있다는 것은, 특히 R&D 인력이 떠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루머다.” - 곤 회장은 ‘코스트 킬러’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코스트를 늘릴 때인가 줄일 때인가? “물론 비용 경쟁력도 높여야 되겠지만, 계획을 잘 활용해 수출 물량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비용을 깎거나 높이는 차원이 아니다. 차량 라인업, 매니지먼트, 품질, 부품 국산화 등을 고려해 높은 수준의 전략을 짜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칼잡이’ 카를로스 곤은 누구?
“구조조정의 귀재”라고 불리는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은 매년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상위권에 랭크되는 주요 인사다. 타임지와 CNN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CEO’(2000), 파이낸셜타임스(FT)의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인’ 3위(2004년),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의 ‘자동차산업 지도자상’(2005년), 비즈니스위크의 ‘최고의 경영자’(2005년) 선정 등…. 각종 언론으로부터 수상한 실적만 해도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곤 회장은 1954년 브라질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랐다. 이후 16세 때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프랑스의 기술계 최고 명문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대학을 졸업했다. 이런 성장 배경 덕에 브라질, 프랑스 등 다중 국적을 가진 코스모폴리탄으로 유명하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며 닛산 직원들에게는 일본어로 연설하기까지 한다. 대학 졸업 뒤 미쉐린에 입사한 그는 85년 30세의 나이로 미쉐린타이어 남미사업부 최고운영책임자 자리까지 오른다. 젊은 나이에 중책을 맡은 곤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대규모 적자에 갇힌 사업부를 2년 만에 살려 놓는다. 그 이후 곤은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진정한 코스모폴리탄…5개국어 척척 특히 곤 회장이 세계적인 CEO로 명성을 떨치게 된 데엔 쓰러져가던 일본의 닛산자동차를 일으켜 세운 ‘냉철한 실행력’이 큰 몫을 했다. 곤이 르노의 부사장으로 임명된 지 2년만인 99년, 회사는 닛산을 인수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로 새롭게 출발한다. 그리고 곤이 닛산의 최고운영책임자 역할을 맡는다. 파산 직전의 닛산을 곤이 떠맡게 된 셈이다. 곤은 닛산의 회생을 위해 ‘닛산 리바이벌 플랜(NRP)’을 만든다. 자산의 85%를 매각하고 노동력을 14% 감축하는 등 과감한 개혁이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곤의 실행력을 바탕으로 닛산은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돌아선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배 늘어났고, 부채는 15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곤은 ‘경영의 귀재’라는 별명과 함께 ‘칼잡이’라는 악명도 함께 얻었다. 닛산의 재건을 위해 가장 먼저 단행한 것이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곤은 수익성이 부진한 교토와 아이치, 나고야 등 닛산 5개 공장을 폐쇄하고 2만4000여 명의 직원을 감축했다. 현재 곤은 닛산과 르노 양측의 회장직을 모두 맡고 있다. 국제적 거대 기업의 두 CEO를 동시에 맡는 신출귀몰한 재주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그가 올해 닛산에서 받는 연봉만 9억8700만 엔(1250만 달러, 한화로 약 143억6000만 원)에 달한다. 이래저래 흥미로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 정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