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우여곡절 끝에 19대 국회가 개원한 지난 7월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이명박 대통령이 개원연설을 하기 위해 입장했다. 이 대통령이 국회를 찾은 건 2008년 18대 국회개원 후 4년 만이다. 20분간 연설하면서 300명 국회의원들의 박수 한번 받지 못했다. 4년 전엔 무려 28차례나 받았다. 박수는 그렇다 치고 국회 입장 후 단상에 오르기까지 일부 의원만 기립했을 뿐,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임기말 이상한 현상이다. 장면 둘… 새누리당 경선주자 TV토론회가 열린 지난 7월24일 여의도 KBS 스튜디오. 시작부터 비박주자 4명의 ‘박근혜 때리기’가 계속됐다. 박 후보의 올케 서향희 변호사가 과거 저축은행 고문을 맡은 것을 놓고 급기야 ‘만사올통’(모든 것은 올케로 통한다)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4년 전엔 ‘만사형통’(모든 것은 대통령 형으로 통한다)이란 말이 오르내렸다. 51년 전의 5·16 혁명에 대한 역사인식 차이도 첨예하게 갈렸다. 국회 개원연설 대통령 입장 때 의원들 기립도 안 해 민주당 경선주자 합동연설회가 열린 지난 7월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는 3000여명이 몰렸다. 민주당의 정치적 텃밭에서 열린 첫 경선레이스에서 후보들은 노무현-김대중 정권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면서 4·11 총선 패배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8명 주자들의 주메뉴는 상대방 헐뜯기다. 530만 표 차로 정권을 뺏긴 후유증에서 못 벗어난 듯, 승자독식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장면 셋… 지난 7월19일 광화문 교보문고 신간 부스. 많은 사람들이 새로 나올 책을 기다리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다. 정작 본인이 직접 대선출마를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요동치고 있다. 책을 낸 후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양자대결에서 처음으로 앞섰다. 소위 집권 공약 대담집 형식의 이 책은 6시간 만에 1만부가 팔렸다. 5일 만에 15만부가 매진돼 출판기록을 갈아치웠다. 보기 드문 현상이다. 얼핏 연관성 없어 보이는 위의 세 가지 장면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 꼴과 차기 대통령 후보자 면면이 절묘하게 겹쳐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아무리 임기 말 레임덕이라지만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최대한 지켜야 한다. 대통령이 입장하고 퇴장할 때 기립은 기본 중 기본이다. 국정 최고지도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민의의 전당은 도덕성이 생명이다. 안철수는 대선출마 언급하는 게 국민에 대한 책무다 둘째, 대권주자들은 토론과 연설수준을 높여야 한다. 막행막식은 곤란하다. 정책 비판과 비난은 몰라도 음해성 비방은 퇴출 1순위다. 상대에게 쏜 모함의 화살은 결국 자기에게 돌아온다. 들은 귀는 천년이요, 말한 입은 사흘이다. 듣기는 속히, 말하기는 더디게(快廳慢說)가 맞다. 누구에게나 천(賤)은 있다. 이 천을 감출 줄 아는 사람과 어느 정도 참을 줄 아는 사람만이 격(格)을 가질 수 있다. 셋째, 안철수 원장은 대선출마 여부를 빨리 직접 언급하는 게 옳다. 그게 본인이 평소 강조하는 공인의 책무다. 비겁하게 신비주의 방식으로 포퓰리즘을 이용한다는 주변의 비판을 불식시켜야 한다. 삼복더위 지나고 런던올림픽 열기 가라안고 풍성한 한가위 맞을 때쯤 각 당 후보가 가려진다. 12월19일 대통령 선거일은 성큼 온다. 대선 후보자들에게 꼭 들려줄 게 있다. “비워라, 비우면 채워진다.”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라는 벼에 관한 얘기다. 논에 항상 물이 차 있으면 벼가 부실해진다. 하찮은 바람에도 잘 넘어진다. 가끔 물을 빼고 논을 비워줘야 벼가 튼실해진다.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에게서 배우는 사람이 대권을 잡는다. - 김경훈 CNB뉴스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