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9월 27일 정부는 대기업집단의 주력기업 전문화정책을 단행, 재벌들의 문어발경영 해소를 촉구했다. 그 와중에서 선경은 계열기업 정리작업을 추진했다. 선경은 주력사업을 섬유와 석유사업에 한정하고 그 일환으로 해외섬유(주)의 월곡공장은 ㈜선경에서 인수하고 동천공장은 선경매그네틱(주)로 넘겼다. 선경복장(주)은 ㈜선경에서 인수했다. 그리고 설립 이후 경영실적이 좋지 못한 선경반도체(주)와 선경머린(주)은 폐업했다. 선경기계(주) 및 선경목재(주)와 중소기업 업종인 ㈜워커힐여행사, 워커힐교통(주), 선경식품(주), 선경유화(주)는 매각처분하고 자본참여 형식으로 계열화했던 영남방직(주)은 지분을 매각했다. 선경은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총 11개 기업을 정리함으로써 계열기업 수를 종래 22개에서 11개로 대폭 축소해 정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형식면에선 매우 파격적이었으나 내용면에서는 영양가 없는 사업만 골라 가지치기했던 것이다. 이동통신사업 날개 달고 ‘대박 행진’ 계속 선경의 대박 행진은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는데 계기는 1994년에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것이었다. 한국전기통신(현 KT)은 1984년에 소위 ‘삐삐’로 불리던 무선호출서비스 업무를 분리해서 자회사로 한국이동통신을 설립했다. 동사는 1988년부터 휴대전화 서비스를 개시했는데 무선호출, 차량전화, 휴대전화에 대한 수요가 점증하는 등 전도가 매우 유망했다.
차제에 정부는 이동전화서비스사업을 경쟁체제로 전환하기로 하고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작업에 착수했다. 제2이동통신은 20세기의 마지막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치부되어 선경, 포항제철, 코오롱, 쌍용, 동양, 동부 등이 각축전을 벌인 결과, 1992년에 선경 및 포항제철과 코오롱의 컨소시엄인 신세기통신 등 2개 업체가 사업권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선경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기업이었던 탓에 물의를 빚어 제2이동통신은 신세기통신으로 낙찰되었다. 대신 선경은 선발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서 1997년에 SK텔레콤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1999년에 신세기통신마저 인수함으로써 국내 이동통신업계의 최강자로 부상했던 것이다. 선경은 1980년대 이후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서 급속하게 덩치를 키운 결과 2011년에는 삼성, 현대차그룹에 이어 재벌서열 3위로 성장했다. 그 와중에서 선경도 국내의 여느 재벌처럼 정치권과의 유대를 돈독히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종현은 전두환 대통령의 일해재단에 현대, 삼성, 대우, LG에 이어 5번째로 많은 액수인 28억 원을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장남 최태원의 장인인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30억 원의 뇌물을 공여했다. 개발도상국의 성공한 기업에 있어 정치자금 수수는 계속기업화의 필요충분조건이었던 것이다.
창업자 최종건이 적수공권으로 선경직물을 불하받아 기초를 마련한 반면, 동생 최종현은 이를 재계서열 3위의 SK그룹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SK그룹은 한화, 두산, 해태, 동양, 하이트, 애경그룹 등과 함께 일제가 남겼던 귀속기업을 모체로 해서 재벌화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또한 선경은 현대, LG, 한진그룹 등과 함께 형제경영을 통해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이기도 했다. 외환위기 시련 속에서도 사업다각화로 성장 1993년 3월에는 국내 최대의 에너지기업인 SK(주)가 쌍용그룹으로부터 국내 정유시장 점유율 12.6%의 쌍용정유 지분 28.41%를 인수했다. 쌍용그룹은 쌍용자동차 매각과정에서 추가로 1조7000억 원의 부채를 떠안게 되었는데 이를 정리하기 위해 쌍용정유를 매각했던 것이다. 이로써 국내 정유시장은 종래 5사 분할체제인 SK(주), LG정유, 쌍용정유, 한화에너지, 현대정유 등에서 SK(주), LG정유, 현대정유 등 3사 지배체제로 전환하게 되었는데 특히 SK(주)는 쌍용정유를 인수함으로써 시장지배율이 종래 36.2%에서 48.8%로 크게 향상되어 명실상부한 국내 정유업계의 리더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종현의 사망 직후인 1999년 10월 SK상사(SK네트윅스)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연간 시장규모 4조 원대의 의료용품 유통사업에도 진출했다. 의료정보 분야 벤처기업인 비트컴퓨터, 메디다스, 전능메디칼 등과 제휴하여 전자상거래를 통해 병원과 약국에 약품, 의료장비 등을 공급할 목적에서였다. 1999년 12월 20일에는 이동통신산업계의 1위인 SK텔레콤이 신세계통신의 코오롱과 포항제철 지분 51.19%를 인수했다. 이로써 SK텔레콤은 국내 이동통신 시장점유율 60%를 장악, 최대의 독점업체로 도약했다. 2000년 4월에는 한덕생명보험을 인수, 이미 인수한 국민생명과 함께 SK생명에 통합했다. 당시 정부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부실화된 두원, 조선, 한국, 한성, 동아, 태평양, 국민, 한덕생명보험 등을 다른 기업들에 헐값에라도 인수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는데 그 일환으로 SK그룹이 한덕생명과 국민생명을 한꺼번에 인수했던 것이다. 나머지 부실 생명보험사들도 전부 재벌에 인수되었다. 이로써 국내 생명보험시장은 재벌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다. 이외에도 평화은행 카드사업부를 인수, SK는 새로 신용카드사업에도 진출했다.
그 결과 SK그룹은 2003년 현재 계열사수 59개에 자산 50조 원의 재벌서열 3위로 도약했다. 대부분의 재벌들이 외환위기로 축소경영 등 엄청난 시련을 겪는 와중에도 SK그룹만은 약진을 거듭했던 것이다. 이 무렵까지 SK그룹은 “비교적 모나지 않은 그룹이었다. 시류를 잘 타서인지 거대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역대정권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일이 거의 없었고 재벌개혁을 화두로 꺼낸 현 정부 아래서도 늘 예봉을 비켜가고 있다. 다른 기업들과도 큰 마찰 없이 지내왔다.”(뉴스메이커, 410호) 사상 최대의 분식회계로 최대 위기 맞아 그러나 SK그룹은 창업 50주년에 즈음하여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는데 그 시작은 2003년 2월 최태원 회장이 전격 구속되면서부터였다. 최태원이 비상장 계열사인 위커힐호텔 주식과 SK C&C가 보유 중이던 초우량 상장기업인 SK글로벌의 주식을 부당하게 맞교환한 혐의 등 때문이었다. 사유는 최태원 등이 워커힐호텔 주식 변칙증여 및 SK증권 주식 이면거래 등을 통해 SK C&C와 SK글로벌에 각각 716억 원과 1355억 원 등 총 2071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은 진보 성향의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에 발발했기 때문에 주목대상이었다. 이후 정부당국의 집중적인 수사를 통해 SK글로벌이 사상 최대 규모인 1조50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SK글로벌은 2001년도 회계결산을 하면서 가공자산 계상 및 부외부채 처리, 해외출자회사 평가손실 누락 등을 통해 1조1881억 원의 은행채무를 누락시키고 1500억 원 상당의 허위 매출채권을 만들어 이익을 부풀리는 등 총 1조5587억 원 상당을 분식회계 처리한 것이다. 1995년부터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분식을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다. SK해운은 2002년에 페이퍼컴퍼니인 (주)아상 및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사람 등에 총 2900억 원을 빌려주고 그 중 2392억 원을 연말에 손실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SK해운은 700여억 원의 영입이익을 내고도 22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SK그룹은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SK해운의 2000년과 2001년의 회계장부를 조작, 2154억 원의 자금을 장부에서 누락시켰다. SK그룹은 분식회계 등을 통해 조성한 자금의 일부를 정치권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 와중에서 SK그룹은 또 다른 도전으로 고전했는데 그것은 뉴질랜드계 사모펀드인 소버린의 SK(주) 인수시도 때문이었다. 당시 소버린은 1768억 원을 들여 SK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주)의 지분 14.99%를 확보, 2대 주주로 급부상했다. 자산 50조 원대의 SK그룹이 통째로 소버린에 넘어갈 위기에 직면했던 것이다. 이후 최태원 등은 어렵게 경영권을 방어하는 한편 그는 SK(주)만 지배하고 나머지 계열사들은 독립적인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지었다. 이로써 최태원은 SK그룹 총수에서 물러났다. SK글로벌 분식회계사건과 소버린자산운용의 지배구조개선 압박, 재벌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 등이 맞물린 때문이었다.
섬유에서 에너지, 이동통신으로 바꾸면서 성장
이 사건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는데 첫째 흑자기업이 분식회계로 말미암아 부실기업으로 전락, 국민경제는 물론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둘째 재벌총수들이 과거처럼 최소한의 지분만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식의 경영행태가 재벌 오너들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SK의 분식회계는 국내 재벌들의 고질적인 파행경영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어서 의미가 크다.
그럼에도 SK그룹의 약진은 계속되어 2011년 4월에는 계열회사 수 86개에 자산총액이 97조420억 원으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순위 5위에 랭크되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전력 등 공기업을 제외하면 삼성, 현대차그룹에 이어 3위다. 1980년대를 경계로 삼성, 현대, LG, 대우 등 빅(big) 4와 나머지 재벌들 간에 양극화가 점차 심해짐에도 불구하고 SK가 탑(top) 3에 진입한 것이 매우 이채롭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하이닉스(전 현대전자)의 경영권도 확보한 것이다. 하이닉스는 2011년 4월 현재 계열회사 수 9개 업체에 자산총액 16조1440억 원으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23위의 기업집단이다. 하이닉스는 2011년 11월 11일 지분 21.1%를 SK텔레콤에 3조4267억 원에 넘긴 것이다. SK가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종합 IT그룹으로 변신시킨다는 전략 때문이었다. 또한 주력인 SK에너지와 SK텔레콤이 내수기업임을 감안하면 인수 당위성은 더 절실했을 것이다.
SK그룹은 1953년 섬유에서 출발해서 화섬과 무역, 정유, 통신, 반도체 등으로 사업지평을 넓혀왔다. 그 와중에서 사업의 중심을 섬유에서 에너지, 이동통신으로 바꾸면서 성장을 도모했다. 향후 SK의 주력사업이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주목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