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가득 갈색조의 화면에 다양한 인물의 형태를 띠고 있는 추상화들이 걸려 있다. 특정인을 지칭할 수 없을 정도로 물감에 의해 뭉개지고 흘러내린 형상이다. 이 작품들은 동양의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작업으로 미국 화단에서 주목 받는 곽훈(71) 작가가 빈센트 반 고흐를 너무나 좋아해 그의 사상과 삶의 궤적까지 닮아가고 싶은 예술가의 관점에서 경의의 대상으로 작업한 결과물들로, 11월 8일까지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전시된다. 화면 가득 크게 그려진 얼굴 형상에는 윤곽만이 존재할 뿐 눈, 코, 입 등의 형태는 알아볼 수 없다. 그 위로 겹겹이 쌓인 다양한 물감들의 파편들은 숨어 있던 보석이 빛을 발하듯 조용히 자신을 드러낸다.
구체적인 재현보다는 무수히 많은 선과 나이프로 긁어낸 흔적에 다양한 색채와 인물의 형태를 품고 있는 갈색조 화면은 곽 화백이 지금까지 해왔던 같은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우주의 끊임없는 운행, 태양과 빛의 근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하나의 과정으로 대상이 존재할 뿐이라는 작가의 철학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전시장에서 만난 곽 작가는 “내가 반 고흐를 바라보는 관점은 그의 불행한 삶이 아니라 그가 가진 니체적인 철학”이라며 “니체의 조명을 받은 시각을 통해 새로운 렌즈로 대상을 바라본 결과를 화면에 옮겨놓은 작업”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미술평론가 임두빈은 “곽훈이 그린 빈센트 반 고흐는 진지하게 살려는 모든 화가들과 철학자를 비추는 거울이면서, 무엇보다 곽훈 그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곽훈은 자신의 그림 ‘빈센트 반 고흐’를 통해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고 해석했다.
미술사의 수많은 작가 중에서도 반 고흐에 이렇게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우연히 책을 하나 발견해 읽게 됐다. 고흐는 5개 국어에 능통한 지식인으로서, 대단한 인기를 모았던 화가였다”며 “그가 자살하기 직전 수일 동안 그려낸 작품을 통해 그가 정신병 환자였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곽 작가는 “고흐의 심리적인 상태에 주목하게 됐다. 화가들이 많이 그리는 것이 사람의 얼굴이다. 그 얼굴 중에는 마누라도 있고, 동네 아줌마도 있다. 근데 내 마음에 가장 들어온 얼굴은 바로 반 고흐였다”며 “그동안 동양의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작업을 한 나에게 가슴으로 다가온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에는 무수히 많은 선들과 겹겹이 쌓은 울퉁불퉁한 물감들을 통해 작가로서의 창조의 열정,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분출된다. 누군가에게 존경을 표하는 성찰을 통해 사색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되는 전시회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