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계장치가 마치 숨을 쉬며 살아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생명체에는 피부나 털도 없다. 단지 뼈를 상징하는 금속 재질의 구조물이 살아있는 동물의 형체를 띠고 있을 뿐이다. 이 생명체는 키네틱 아티스트 최우람(42)이 어린 시절부터 그려온 살아 있는 것 같은 정교한 움직임을 표현하며, 조형미속에 내러티브를 표현하고 있는 기계 생명체 시리즈를 전시장에 옮겨다 놓은 장면의 첫 느낌이다. 최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는 기회가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진행되는 그의 10년만의 국내 개인전을 통해서 마련됐다. "어린 시절부터 움직이는 기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계에 생명체의 움직임을 집어넣어 조형적 아름다움과 함께 흥미로운 탄생설화를 부여했습니다." 작가의 설명처럼 전시장에는 신화적인 주제가 가득 담긴 기계생명체가 누워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구멍의 수호자라 불리는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 작품은 다큐멘터리 방송에 자주 나오는 극지방의 거대한 표범의 어미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얼음구멍을 자신의 이빨을 이용해 지키는 것을 보고 나서 만든 작품이다. 최 작가는 "아주 오래 전 두 개의 세계가 있었다. 두 세계는 작은 구멍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서로 통할 수 있었다. 쿠스토스 카붐들이 어딘가 새로운 구멍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게 되면 깊은 잠에 들어가고, 죽은 듯 자고 있는 그 들의 몸통에서는 유니쿠스라 불리는 날개 달린 홀씨들이 자라나고, 몸통에서 떨어져 다른 구멍으로 날아가 새로운 쿠스토스 카붐으로 자라나 새로 생겨난 구멍을 지켰다"고 전했다.
최우람 작가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정교한 움직임' 그리고 '기묘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내러티브'이다. 어릴 적부터 기계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졌던 작가는 인간 문명의 산물인 기계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복제, 번식하고 진화해 나가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모티브로 작업을 펼쳐냈다. 이를 바탕으로 생명체의 관절과 심장을 지닌 듯 한 섬세한 움직임 그리고 마치 실재 존재함을 증명하듯 작가가 만들어낸 학명으로 명명되는 기계 생명체들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기계 생명체들은 그 자체의 조형적 아름다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에 부여된 흥미로운 탄생설화를 수반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그 동안 다뤄온 기계 생명체에 대한 사유와 상상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전혀 보이지 않던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움직이는 조각'이라는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되 개별 생명체의 모습이 아니라 신화 속의 존재를 그대로 표현하거나 오브제 그 자체의 모습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이는 작가가 지난 10년간 해왔던 기계문명에 대한 논의를 신화와 종교의 영역까지 폭넓게 확장시키며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던지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