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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의 한국 재벌사]한진그룹 편 2화

버스 등 신규 사업마다 ‘돈다발’, 육해공 종합수송 기업집단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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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9호 박현준⁄ 2012.11.05 14:38:36

국내 최초의 항공사는 1948년 10월 1일에 신용욱(愼鏞頊,1901~1962)이 순수한 민간자본으로 설립한 대한국민항사(KNA)였다. KNA는 미국산 스틴슨 단발 경비행기 3대로 민항사업을 개시했다. 그는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22년에 일본 오쿠리(小栗)비행학교 졸업 후 일본항공특공대 조종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출정한 이력도 가지고 있었다. 신용욱은 경성방직의 김연수(金秊洙), 친일관료 출신인 고원훈(高元勳) 등과 함께 조선항공공업회사를 창설한 후 비행기를 생산해서 일본군에 헌납하고 1942년부터는 일본군의 항공수송을 맡아 일본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했다. 정기비행·어군탐지·비행관광업도 겸했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일본군 비행기 수백 대를 헐값으로 구입하여 고철로 처리, 막대한 이익을 얻어 KNA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던 것이다. 신용욱은 1949년 2월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제2·3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8년 KNA 여객기 1대가 납북됨으로써 재정적인 손실을 입은 뒤 영업부진이 계속되어 1962년에는 항공기와 부품이 세무당국에 압류당하는 등 사업이 파국을 맞자 자살을 선택했다. 14년의 KNA시대가 마감된 것이다. 60년대 말 대한항공공사 인수, 10대 재벌 진입 당시 군사정부는 KNA의 영업중지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국적(國籍) 항공사의 발족을 서둘렀다. 그 결과 대한항공공사(KAL)가 1962년 4월 30일에 공칭자본 5억 원, 불입자본 2억5000만 원의 국영기업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항공수송 수요가 부진한데다가 정부가 납입해야할 자본불입마저 지연됨으로써 항공기 도입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또한 KAL은 보유기종의 노후화로 고장 및 연발착 빈번 등으로 공신력이 떨어져 부실화됐다. KAL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부실화가 가속화되자, 1968년 6월에 민영화작업에 착수했다. 조중훈이 KAL의 인수를 결심하고 재무상태를 조사해 본 결과, 1968년 12월말 현재 수권자본금 35억 원, 납입자본금 15억47만8000원이었으며 국내외 장, 단기 부채총액은 금융부채 3억2958만 원, 차관부채 15억180만3875원 등 총 23억4000만 원이었다.

한진은 KAL의 부채 23억4000만 원을 전액 부담하기로 하고 이를 14억5300만 원에 인수했다. 불하대금 변제조건은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이었는데 거치기간 5년 동안에는 무이자로, 6년째부터 연리 12%로 매년 분할 상환하는 것이었다. 1968년 당시 은행권의 일반대출 금리가 연 25.8%였다는 점과 물가상승율이 연평균 15%인 점을 감안할 때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특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을 인수함으로써 마침내 10대 재벌에 진입하게 되었다. 한진의 재벌화 작업은 1960년대 말부터 본격화했다.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현금을 재원으로 여타 기업체의 설립 및 인수 등을 통해 활발한 재벌화를 도모했던 것이다. 이 무렵 한진의 다각화 내역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속버스사업에의 참여이다. 한진상사는 1961년에 미전략공군사령부의 버스 80대를 할부방식으로 불하받아 1964년에 대한운수를 설립해서 버스여객운송업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여객운송업이 본격화된 것은 1968년 12월 31일 경인고속도로와 서울-수원간 경부고속도로의 일부구간이 개통되면서부터였다.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됨에 따라 한진상사는 1968년 11월 29일 교통부로부터 경인고속도로 버스여객자동차 운송사업 내인가(10대)와 1969년 4월 11일에는 운송사업면허를 각각 취득하고, 서울-인천간의 여객운송을 통해 사업개시 3년 만에 투자자금을 전액 회수하는 등 호황을 구가하였다. 이후 고속도로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한진의 고속버스사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국내 최대의 고속버스회사로 성장했다. 둘째, 포항제철(현 포스코)과의 항만하역작업 계약체결이다. 1968년 4월 1일 포항제철의 설립과 함께 한진은 제철소 건설자재운반 및 하역관련 협력업체로 지정되어 포항제철 건설관련자재 운송부문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당시 한진의 베트남사업이 막바지에 있었던 관계로 이를 대신할 새로운 대형 프로젝트가 필요했는데 국내에서 고속버스사업과 화물운송 및 포철건설프로젝트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셋째, 한일개발의 설립이다. 한일개발은 1968년 8월에 한진그룹 본사건물인 해운센터빌딩을 건설하면서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설립됐다. 해운센터빌딩은 총 26층의 고층건물로 국내 최초의 철강재 골조건물이었는데 이후 한일개발은 그룹 내 각종 건물공사를 전담하여 기술을 축적하는 한편, 해외 건설에도 주력하여 주력기업의 하나로 성장했다. 넷째, 대한항공과 관련한 부대사업에의 진출이었다. 한진은 1968년 2월에 국내공항에서 항공기 지상조업과 부대사업을 목적으로 한국공항을 설립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경영을 본격화함으로서 항공수송 분야의 부가가치를 제고하는 한편 몸집을 부풀렸다. 베트남 특수 약진, 국내 최대 수송 기업집단 완성 다섯째, 육영사업에의 진출이다. 인하대학교는 1954년에 하와이교포와 이승만 대통령이 주축이 되어 인천에 설립한 공과대학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4.19혁명과 5.16쿠데타 등 정치적 격동과정에서 운영난에 직면한 것을 계기로 한진이 1968년에 인수했다. 이후 한국항공대학까지 인수하는 등 한진은 교육부문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진그룹은 1968년을 전후하여 형성됐다. 그 결과 한진그룹은 1972년 현재 8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로 부상하여 삼성, LG그룹에 이어 재벌순위 3위에 랭크됐다. 20여 년 동안 운수업 외길을 걸어온 한진의 화려한 변신이었다. 이 무렵 한진은 다른 재벌들처럼 무분별한 백화점식 다각화를 지양하고 철저하게 운수업 중심의 수직적 다각화를 하고 있었다. 국내 최초로 수송전문의 재벌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19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 특수를 계기로 재벌로 도약한 한진그룹은 1970년대 이후에도 약진을 거듭해서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종합수송 기업집단을 형성했는데 성장내역은 다음과 같다. 1972년 4월 한진관광(주)을 흡수해서 (주)한진으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같은 해 9월에는 한국원면창고(주)를 흡수합병했다. 1974년 인천항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을 개시하고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으며, 1976년 9월에는 부산항 제3부두에 30톤급 갠트리 크레인을 설치하고 운영을 개시했다. 1977년에는 그간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중동의 항만하역사업에 진출했고, 1980년 동아통운(주)을 합병했으며, 1991년에는 부산~인천 정기 연안 해송 컨테이너선인 한광호를 취항한 데 이어 1992년부터 택배사업과 우등고속버스 운행을 개시했다. 1994년 해운항만 업무를 전산화하고 1996년 8월에는 대한종합운수를 흡수합병했다. 대한종합운수는 수출입 컨테이너 화물의 운송 및 보관전문업체로 1977년 7월에 삼부(三釜)통운(주)로 설립됐다. 1980년에는 부산 수영만에 컨테이너 장치장을 건설하고 서한컨테이너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1982년에는 선주컨테이너로 또다시 변경됐다. 1983년 5월에는 철도청으로부터 철도 소(小)운송면허를 취득하고 1984년에는 경기도 부곡에 철도터미널을 운영해왔는데 1987년에 한진에 인수되어 대한종합운수(주)로 변경한 것이다. 동사는 부산에 국내 최대의 off dock 컨테이너 장치장과 보세창고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경기도 부곡에는 열차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연간 화물취급 능력은 12만 TEU로 90대의 트랙터와 300대의 chassis, 18대의 각종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1999년에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회사로 지정됐고, 2000년 3월 국내 최초로 택배 무선정보시스템을 구축, 물류업계 최초로 전자상거래부문 ISO(국제표준화기구) 9002인증을 획득했다. 2002년 10월 울산항 8부두를 준공하고 일본 후쿠야마통운과 국제물류부문 업무제휴를 했다. 2005년에는 미국에서 육운사업을 개시하고 한중 물류합자법인 청도한진육해국제물류유한공사를 설립했다.

2006년 4월에는 동양고속에 여객사업부를 양도했으며, 2008년 9월에는 신세계SEDEX를 인수했고, 12월에 계열회사 (주)한진드림익스프레스의 택배사업부문을 이양했다. 2010년에는 우즈베키스탄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개인택배 브랜드 ‘파발마’를 출시했으며, ISO 28000(물류보안경영시스템)와 KOSHA 18001(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을 각각 획득했다. 연결대상 종속회사로는 (주)한진드림익스프레스, 한진인천북항운영(주), 부산글로벌물류센터(주), 미국 현지법인 한진인터모들아메리카(HANJIN INTERMODAL AMERICA INC.), 청도한진육해국제물류유한공사, 한진국제물류(홍콩)유한공사, 한진복운국제화운(상해)유한공사, 한진국제물류(대련)유한공사, 한진복운국제화운(심천)유한공사, 우즈베키스탄 현지법인 유라시아로지스틱스서비스(EURASIA LOGISTICS SERVICE) 등이 있다. 정석기업 정점 순환구조, 3세 후계구도 준비도 착착 1969년에 보잉720기를 도입하여 국제선 노선에 투입, 국내 제트여객기 시대를 열었다. 1971년에는 보잉707 1대를 도입, 보잉 727기와 함께 전 노선을 커버하였다. 또한 3대의 보잉 707화물기를 도입, 수익원을 다변화했다. 1971년 3월에는 호놀룰루와 로스앤젤레스의 취항권을 획득하고 이 노선의 효과적 운용을 위해 1972년 10월에 보잉747기(747-2B5)를, 1973년 5월에는 보잉747-2B5B(HL7410)을 각각 도입했다. 초기 미주노선은 서울-도쿄-호놀룰루-로스앤젤레스를 거쳐야 하는 장기 노선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직항편은 몇 년 후에 개척됐는데 보유기종의 항속거리 미달과 항공협정의 불리한 조항 때문이었다. 미주노선 경영이 안정되면서 대한항공은 유럽노선 개척에 눈을 돌렸다. 이를 위해 1975년 8월에 에어버스 A300기(HL7218)를 임차 도입해서 화물 및 여객노선에 취항시켰다. 보잉707화물기와 맥도넬 더글라스 DC-10여객기로 파리까지 가는 유럽항로 운항이 개시된 것이다. 1978년 5월에는 도쿄 도착편의 KE701편이 나리타 국제공항에 첫 착륙하는 이색적인 기록도 세웠다. 1985년에 대한항공 보잉 747SP기 편성을 시작으로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정규노선이 신설됐다. 1987년 2월에는 DC-10기 등을 대체하는 MD-11의 도입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MD-11의 계약성능 미달 문제와 보잉과 맥도넬 더글라스사가 합병되면서 이 항공기의 유지비가 오를 것으로 전망되어 2003년까지 모두 처분했다. 1997년부터 보잉 777과 에어버스 A330등을 도입하기 시작해 MD-11의 공백으로 생긴 2~300석 규모의 장거리 기체를 보완했다. 2007년에는 국내의 저가항공사 시대를 맞아 대한항공도 저가항공사인 진에어를 설립하고 2008년 7월 17일 김포-제주 간 노선의 취항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현재는 일본,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지역을 취항중이며, 국내 저비용항공사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미국령 괌에 취항하였다. 2008년 7월부터 12월말까지 99%의 정시율과 99.6%의 운항율을 시현했을 뿐 아니라 국내선의 경우 자유좌석제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10년에 자산총액 17조8143억 원, 매출액 11조4605억 원에다 순이익 4617억 원을 시현했다. 2011년 6월 현재 133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39개국 112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다. IATA 기준 전세계 항공사 중 여객 운송부문 11위, 화물 운송부문은 국제화물 2위, 국제&국내 화물 4위이다. 창업자 조중훈의 아호를 딴 정석기업은 1978년 1월에 한진그룹 본사인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 118의 해운센터빌딩의 임대 및 종합관리, 주차운영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0년에는 해운센터빌딩 신관, 부산정석빌딩, 인천정석빌딩 및 해외 현지법인 형태로 하와이 와이키키 리조트호텔까지 운영하는 자본금 24억5000만 원으로 성장했다. 주목되는 점은 정석기업이 한진그룹의 최대 주주로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현재 한진그룹은 (주)한진을 비롯해 대한항공, 한진해운 등 40개 계열사를 둔 재계 순위 12위 기업집단이다. 한진해운홀딩스 계열을 제외하면 한진그룹은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정석기업은 모기업인 (주)한진의 지분 17.98%를 갖고 있으며 (주)한진은 다시 대한항공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오너 3세들이자 조양호의 자녀들인 조현아와 조원태, 조현민 등은 2009년 10월에 정석기업 지분을 각각 2만3960주씩 약 26억 원에 취득해서 3세 경영시대를 대비했다. - 이한구 수원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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