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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필, 당신이 모기를 죽이는 이유는?

모기 눌린 모습 연속촬영해 작품 만드는 정지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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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2-313호 김대희⁄ 2013.02.12 08:48:36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작업실에 돌아왔는데 20~30마리의 모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여름 내내 한두 마리 보일까 말까 하던 것들이 갑자기 많아진 거죠. 작업실 천정 한구석에 빗물이 조금씩 세는데 세 번 연속으로 지나간 태풍으로 페인트 통에 고인 양이 꽤 되면서 그 곳에 모기가 알을 낳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여름과 가을밤의 불청객 모기. 요즘처럼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꽁꽁 싸매는 겨울에는 보기가 힘들지만 매년 우리를 찾아와 괴롭힌다. 이러한 모기가 기발한 상상을 통해 예술 작품으로 표현됐다면 어떨까. 살아있는 모기가 아닌 죽은 모습으로 빨간색의 피가 터져 징그럽게 보일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기라는 생각을 버린 채 그 자연스러운 색감만으로 감상한다면 모기가 아닌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 다른 느낌이다. 갤러리 자작나무에서 만난 정지필 작가는 모기의 눌린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 작품으로 만든다. 그는 모기를 잡기 위해 작업실에서 잠을 자기도 하는데 모기에게 밤새 피를 뜯기는 고통도 참아낸다. 피를 빤 모기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 유리컵으로 모기를 잡아서 죽지 않을 정도로 모기의 힘을 뺀다. 그리고 유리판 위에 올려서 다른 유리판으로 눌러 죽인다. 이렇게 죽은 모기를 촬영하는데 한 장이 아닌 수 십장을 촬영해 이어 붙이게 된다. 때문에 큰 사이즈로 사진을 뽑아내도 깔끔한 화면을 보이며 사진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C-프린트로 뽑아낸 것 외에 판화지 같은 종이에 프린트해서 더욱 회화적인 느낌이 강했다.

전시를 공동 기획했다는 펠릭스 박(Felix Park)은 “지인의 소개로 정지필 작가를 알게 됐는데 작품을 보고 사진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어요. 수채화 느낌도 나면서 매혹적이었죠. 죽은 모기지만 아름다운 느낌도 있었고 독특한 작업이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가 이렇게 모기를 주제로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누구에게나 짜증나는 존재인 모기를 잡다가 그 살인에 대한 정당성을 찾으면서였다. 재미있기도 하면서 웃음이 나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모기를 보면 잡잖아요. 가만히 작업을 하다가도 뭔가 움직이는 것 같으면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가고 자꾸 모기에 물릴까 신경도 쓰이고 정말 짜증나면서 신경질적으로 변했어요. 모기들을 잡을 때 내 피를 빨아 통통한 놈들을 죽이면 더 큰 통쾌감을 느꼈죠.” 어릴 적 외계인의 꿈이 형상화 이렇게 모기를 잡아 죽이던 중 그는 갑자기 어릴 적에 커다란 외계인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살짝 살짝 눌러 터트려 죽이는 끔찍한 꿈을 꿨던 것이 떠올랐다. 사실 누가 자신을 귀찮게 하거나 짜증난다고 해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모기를 그렇다는 이유에서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내 자신이 매우 잔인하고 잔혹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지난 시간 동안 모기를 죽이는 것에 대해 그 어떤 잔인함이나 끔찍함을 느끼지 못했던 거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존재에 대해 잔인하고 끔찍한 짓을 무감각하게 해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기를 죽이는 일을 정당화 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그는 이렇게 정당화 할 수 없다면 평생 모기들에게 약한 정도이지만 계속 짜증나게 당하고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정당화 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싶어진 것이다. 이에 그는 모기에 대해 좀 진지하게 자신만의 생각을 해봤다고 한다. 그가 생각한 해피엔딩은 모기도 잘 진화해서 지금까지 우리처럼 남아있는 것이며 앞으로 더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덜 짜증나고 덜 위협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모기가 피를 빨고 나서 가렵지 않다면, 모기가 피를 빨면서 병을 옮기지 않는다면, 심지어 빨면서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성분을 주사해 준다면…. 이런 돌연변이 모기가 나와서 결국 인류와 모기류 서로에게 우호적이고 유쾌하게 공생 가능한 상황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내 그가 결론을 내렸다. 모기류가 인류에게 우호적인 쪽으로의 진화를 위해서는 우선 짜증나는 모기들은 가능한 죽여야 한다. 드디어 모기를 죽이는 것이 정당화 됐으며 모기를 죽이고 기념사진을 찍기로 하면서 작업이 진행됐다. 작업 과정은 동영상으로도 촬영한다. “앞으로 형태가 달라질 수 있지만 모기 작업은 계속 할 계획이에요. 모기 전시는 이번에 처음 선보였고 작품과 함께 직접 잡은 실제로 눌린 모기도 함께 전시했어요. 모기를 잡고 놔두면 피가 마르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모양과 형태가 변하기도 해요. 그래서 며칠에 걸쳐 촬영하기도 하죠.” 일상에서 쉽게 보는 모기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모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하는 정지필 작가의 개인전 ‘Give & Take’는 사간동 갤러리 자작나무에서 2월 2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 김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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