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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의 한국 재벌사] STX그룹 편 2화

초일류 쌍용중공업 인수는 IMF가 강덕수에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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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6-317호 박현준⁄ 2013.03.11 13:49:52

쌍용중공업은 1994년 3월 (주)승리기계제작소를 흡수합병 했으며, 1997년 2월 고출력의 대형엔진공장을 준공했다. 그러나 1997년 말에 초래된 외환위기로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했다. 1986년 10월에 인수한 동아자동차(쌍용자동차)가 쌍용그룹 해체를 가속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1955년 12월 서울 창천동에서 버스제작업체인 하동환(河東煥)제작소로부터 출발해 1975년부터는 미국 더러(Theurer)사 등과 기술제휴해서 믹서트럭, 벌크시멘트 특장차 생산으로 다각화하면서 1977년 2월 26일에 동아자동차(주)로 상호를 변경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인천시 부평동 한국수출산업공단 내에 부지 1만여평, 공장 4240평의 휠 디스크 전용공장을, 1978년에는 경기도 송탄시 칠괴동 150에 1만2000여 평의 특장차 완성공장을 각각 마련했다. 동아자동차는 1981년 2월 28일 ‘자동차공업합리화조치’로 특장차메이커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1982년 7월 26일에 정부가 특장차전업화계획을 백지화함으로써 경영난에 직면했다가 1986년 9월 30일에 쌍용그룹에 인수되었던 것이다. 또한 신진자동차의 부도로 지프차메이커인 (주)거화도 함께 인수해서 1988년 3월에 쌍용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고 생산능력도 연 3만대 수준으로 확장했다. 이후 쌍용자동차는 한국형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인 ‘코란도’와 ‘무쏘’를 개발한데 이어 1990년대에는 독일 벤츠와 기술제휴, 대형의 고급세단인 ‘체어맨’까지 출시해 기아, 현대, 대우자동차와 함께 국내 자동차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부실규모가 점차 확대되어 1997년 말에는 쌍용자동차의 부채가 3조4000억 원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부채비율이 높았던 쌍용그룹은 돌파구의 하나로 1998년 1월에 쌍용자동차의 경영권을 대우그룹에 넘겼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1997년에 쌍용제지를 미국 P&G에, 1998년에는 쌍용투자증권을 미국 H&Q에, 1999년에는 쌍용정유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펀드에 각각 매각했다. 주력기업 중의 하나였던 쌍용건설도 위태로워졌다. 외환위기로 국내외 미수금이 누적된 데다 쌍용자동차 채무 1800억 원까지 떠안은 탓이었다. 쌍용건설은 유동성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1999년 3월 워크아웃에 돌입했으나, 쌍용그룹의 경영상태는 호전되지 않은 채 2000년 7월에는 부채비율이 1773%에 달하며 30대 재벌 중 가장 높았다. 모기업이자 국내 시멘트업계 1위인 쌍용양회는 부채만 4조 원에 육박, 청산위기에 몰렸으나 2000년에 일본 태평양시멘트로부터 6580억 원을 유치해서 2001년 10월에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쌍용그룹은 이후에도 회생에 주력해서 2001년에는 쌍용중공업(현 STX중공업), 쌍용엔지니어링, (주)텍스텍을 계열회사에서 분리했다. 2002년에는 쌍용화재(현 흥국화재)를, 2003년에는 용평리조트를 세계일보에 각각 매각했다. 그 후 쌍용캐피탈과 남광토건을 계열분리했으나 그룹을 회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4년 말 2세 경영인 김석원이 회사재산 310억 원을 개인 명의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되면서 쌍용그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쌍용그룹 해체의 직접적 원인은 1997년 외환위기였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부실투성이였던 쌍용자동차 때문이었다.

쌍용그룹, 내우외환 겹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 STX그룹 창업자 강덕수(姜德壽)는 1950년 8월 경북 경산에서 출생, 동대문상고를 거쳐 명지대학을 졸업한 후 1973년에 쌍용양회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27년 동안 쌍용그룹에서 샐러리맨 생활을 하면서 재무·기획통으로 거듭났다.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쌍용그룹의 사세가 점차 기울어져 갔는데, 당시 강덕수는 쌍용중공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었다. 2000년 11월 쌍용중공업의 최대주주였던 쌍용양회가 보유주식 678만3170주(34.45%)를 한누리투자증권(2008년 3월 KB투자증권으로 변경)을 중심으로 한 한누리컨소시엄에 매각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면서 강덕수가 쌍용중공업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매각작업은 1개월 후인 2000년 12월에 완료되었는데, 그는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받은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과 사재 20억 원을 동원해 장내매수 등을 통해 쌍용중공업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2001년 5월에 쌍용중공업을 (주)STX로 변경했다. ‘STX’란 상호는 System·Technology·Excellence(시스템·기술·탁월)의 첫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강덕수는 2004년 5월 18일 지분 14.39%를 확보함으로써 최대주주의 지위를 확보했다. 쌍용중공업 모체로 사업 분할과 인수 통해 STX그룹 탄생 국내 최대의 대형엔진 제작업체의 경영권을 거저 얻다시피 했는데 이는 외환위기가 강덕수에게 준 선물이었다. 당시는 외환위기가 점차 수습되는 상황이었으나 워낙 충격이 큰데다 한치 앞이 예단되지 않은 터여서 부실투성이의 덩치 큰 기업일수록 M&A시장에서 기피대상이었던 때문이다. 쌍용중공업이 퇴출기업으로 결정되자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을 퇴출시킬 수 없다며 종업원자격으로 인수했던 것이다.

강덕수는 (주)STX의 경영권을 확보함과 동시에 사업 분할을 통한 계열사 수 확대와 기업인수 등 공격경영을 통해 사세를 확장했다. 2001년 6월 (주)STX의 소재사업 부문을 분할해 기초소재 가공 및 디젤엔진 핵심부품, 선박, 항공, 발전용 가스터빈의 신소재부품 설계가공업체인 STX엔파코(현 STX메탈)를 설립했다. 동사는 2002년 8월에 벤처기업에 선정됐으며 2004년 4월에는 중대형 엔진용 부품설비 라인을 준공했다. 2005년 10월 쌍용그룹 계열사였던 (주)텍스텍을 흡수합병 했으며, 2009년 5월에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같은 해 11월에는 대구에 첨단소재공장을 준공해 2010년 3월에 STX메탈로 상호를 변경했다. 창원 내동과 신촌 공장, 대구 공장 등 총 3개의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는 STX메탈은 세계 최고의 디젤엔진 부품 및 선박기자재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 6월 중속 디젤엔진용 터보차저가 세계 일류상품으로, 2006년 7월에는 중속 디젤엔진용 크랭크축이 세계 일류상품으로, 2007년 6월에는 대형 디젤엔진용 실린더라이너가 세계 일류상품으로 각각 선정된 것이다. 또한 2008년 12월에는 ‘잠수형 카고오일펌프’가 ‘차세대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덕분에 매출도 가파르게 증가해서 2003년 2000억 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2006년에는 4641억 원, 2008년에는 1조214억 원으로 순이익 511억 원의 실적을 올렸다. 2009년 6월 말 현재 STX엔진이 45.78%의 지분을 소유한 최대주주이고, 자산총액은 7708억 원이며 자본금은 557억 원에 이르렀다. 2001년 10월에는 대동조선(주)을 인수해서 화학탱크선, 컨테이너선, 벌크선, 자동차운반선, 수리선, 선박기자재 전문의 STX조선해양을 출범시켰다.

조선-해운 인수 및 에너지와 자원개발 사업 진출 대동조선은 1962년 1월 부산 영도에서 대한조선철공소로 창립되어 1967년 4월에 동양조선공업(주), 1973년 1월에는 대동조선으로 상호가 변경됐다. 대동조선은 설립과 동시에 국내 최초로 2000GT급 컨테이너 전용선을 건조했으며, 1983년에는 역시 국내 최초로 석유시추선 보조선 2척을 진수시켰다. 1994년에 진해조선소를 착공하고 1995년에는 ‘50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그러나 1997년 말 외환위기로 타격을 받아 1998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2001년 10월에 (주)STX가 경영권을 인수해서 2002년 1월에 STX조선해양(주)으로 상호를 변경했던 것이다. 2004년 11월에는 STX팬오션(주)을 인수했다. 동사는 2007년 2월에 LNG운반선을 최초로 수주했으며, 밀려드는 수주 물량을 소화해내기 위해 같은 해 3월에 중국 다롄(大連) 창싱다오섬에 550만㎡의 부지를 확보하고, 2012년 말 완공을 목표로 조선소를 착공했다. 선박건조도 병행해서 2008년 12월에는 다롄조선소 1호 작품인 5만8000톤급의 산적화물선(Bulk Carrier)을 진수했다. 2008년 12월에는 ‘20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등 세계 6위의 조선업체로 성장해 2009년 3월에 STX조선해양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부산 영도와 창원시 진해의 2개 조선소는 연간 60만G/T의 생산능력을 확보, 2010년에는 자산총액 6조7320억 원에 3조940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02년 11월에는 STX에너지를 설립하고, 신규로 에너지사업에도 진출했는데 모체는 같은 해 1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현물출자해서 설립한 산단열병합발전(주)이다. 1990년 8월에 준공된 경기도 안산 소재의 반월열병합발전소와 1992년 6월에 준공된 경북 구미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할 목적에서였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에 (주)STX가 산단열병합발전의 경영권을 인수해서 2002년 11월에 STX에너지로 상호를 변경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적정가에 한국전력이 전량 구매해주는 조건이어서 새로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치부된 때문이었다.

반월열병합발전소는 56.7MW 용량의 주터빈 1기와 6.0MW 용량의 보조터빈 1호기 및 14.3MW 용량의 보조터빈 2호기를 갖추고 연간 67만4170MWH의 전력을 생산한다. 또한 2기의 주보일러와 3기의 보조보일러를 갖추고 200여 수용가에 공정용·난방용 증기를 공급하고 있다. 구미열병합발전소는 85.5MW 용량의 주터빈 1기와 11.6MW 용량의 보조터빈 1기를 갖추고 연간 85만596MW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역시 2기의 주보일러와 2기의 보조보일러를 갖추고 60개소의 수용가에 공정용·난방용 증기를 공급한다. STX에너지는 2007년 4월 타이거오일(주)를 인수해서 유류 제품 보관 및 도소매 판매 등의 에너지 유통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경기도 평택시에 13기의 저장탱크(총 저장 용량 10만2850㎘)를 갖추고 전국 39개소의 주유소(2009년 4월 기준)를 운영, 관리하고 있다. 또 한 같은 해 11월에는 STX솔라를 설립해서 태양전지사업에 진출했으며, 같은 해 12월 및 2008년 1월에는 STX탱크터미널(주)과 STX오일앤서비스(주)를 STX에너지에 흡수합병 했다. 또한 STX에너지는 해외자원 개발에도 착수해서 2007년 12월 다국적 에너지기업인 쉘(Shell)로부터 지분을 양수받아 아일랜드 북서해상의 2개 광구와 덴마크 자치령인 파로군도(Faroe Islands) 남동 해상의 1개 광구 등 3개 광구의 지분을 확보, 석유자원 개발사업에 진출했다. 2007년 10월 중국 산서성 평정 지역의 무연탄광 지분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으며, 2008년 5월에는 우즈베키스탄 아랄해 인근 수르길(Surgil) 가스전 개발사업을 위한 한국컨소시엄에 참여했다. 2008년 12월 말 기준 자산총액은 5573억 원이며 매출액 6067억 원이고 순이익은 356억 원이다. - 이한구 수원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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