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동양화적 분위기에 눈에 띄는 새하얀 바탕, 여기에 컬러와 흑백의 조화가 캔버스 위에서 잘 어우러지면서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든다. “정말 잘 그렸다.” 그리고 얼룩말이나 호랑이 등과 함께 과거의 배경이 융합된 모습에 “재밌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서울옥션 강남점에서 오랜만에 만난 김남표 작가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보는 순간 세세하게 작은 변화들이 느껴졌다. 더 다양해진 표현들과 살아있는 듯한 디테일 그리고 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재료인 털의 사용에 있어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과거의 인물들이나 모습들이 작품 속에 함께 공존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들은 구한말을 소재로 했어요. 역사적 사건들을 우리 사람의 눈이 아닌 동물들의 눈으로 보는 거죠. 이렇게 바라봤을 때 장면들이 새롭지 않을까 했어요.” 그는 그동안 인간사회의 산물과 자연 구성물의 조합을 통해 초현실적인 화면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하지만 2012년 1년 동안 회화 작업을 멀리한 채 여행과 드로잉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무엇인가 자신이 보여주고 작품에 담을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결국 그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감을 택했다. 알고 보니 그는 선조들의 모습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들의 눈과 마주치는 게 좋았고 대학원 시절 많이 그려왔었다고 한다. 바로 그 시절 관심이 많았던 조선시대 말기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이번 개인전은 그동안 고민한 작품세계의 중간점검이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그의 계획을 보여주는 자리가 되는 셈이다.
그의 신작을 살펴보면 상투를 튼 인물과 광화문 등 그 시대의 시간과 역사를 상징하는 오브제가 등장하는 가운데 이런 오브제와 상관없는 듯한 태도로 한가롭게 풀을 뜯거나 응시하는 얼룩말이 등장한다. 이러한 오브제와 함께 컬러와 흑백의 조화로움은 단순히 잘 그린 그림 그리고 재미있는 그림을 넘어 흥미와 관심을 집중시킨다. 특히 점점 다양하고 독특한 재료가 쓰이는 미술계에서 인조털을 이질감 없이 조화롭게 활용하는 점이 그의 특징 중 하나다. “털은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에요. 털은 오브제라기보다 일종의 제어 장치로 작용하죠. 그림을 그리면서 무엇인가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남겨지고 그곳에 털이 들어가요. 시스템 안에 한 요소로 털이 들어가면서 지금은 털뿐만 아니라 여러 재료를 사용하기도 해요.” 그는 작업하기 위해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는다. 먼저 그려가면서 상상하며 완성해간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이어지며 작품이 나온다는 얘기다. 삶의 일상도 수십 번, 수백 번 바뀌는데 지금 그리는 그림과 잠시 후 아니 다음날 그리는 그림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과가 또 다른 결과를 만들고 이야기가 흘러가듯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자신이 가진 생각을 멀리하고 작업에 임할수록 작품에 더 진실 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평면이지만 입체적으로도 보이는 그의 작품은 밝고 화사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차분함이 묻어난다. 현실과 비현실이 하나 된 초현실세계를 추구하는 그는 현실의 좋은 이미지는 이미 완벽해 더 이상 상상이 안 되기 때문에 무언가를 수용할 여지가 없다고 한다. 작업은 캔버스에 파스텔을 이용해 전부 손으로 그리며 그 위에 인조털을 붙여 새로운 시각적 연출을 나타낸다. 석파정에서 구한말의 세계 표현 “올 가을 서울 부암동 석파정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에요. 그때 제대로 구한말 시대를 선보이고자 해요. 내용도 무거운 소재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잠시 갤러리가 아닌 장소의 변화를 꾀하는 여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시기에 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요. 2년 정도 돌아보고 다시 갤러리로 돌아올 생각입니다.” 그는 석파정이라는 공간을 통해 현재 자신이 선택한 구한말의 세계를 맘껏 펼쳐 보인다는 생각이다. 이에 그곳에서는 캔버스가 아닌 종이나 장지를 이용해 그 공간과 어울리고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3년만의 개인전 ‘Instant Landscape-Traveler’로 돌아온 그의 초현실적인 작품은 서울옥션 강남점에서 4월 11일부터 30일까지 전시되는데 관람자들을 과거와 현대가 혼재된 시공간의 여행으로 초대한다. -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