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경영 가운데 제일 힘든 게 병원경영이다” 아련한 군복무시절 군의관에게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됐다. 병원경영은 경영학원론에도 잘 언급되지 않고 회사·협회·단체와 달리 수익경영과 동떨어지게 보였기 때문이다.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신성함도 있지만 돈벌이의 치열함이 공존한다. 최근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진주의료원 폐쇄 갈등은 병원경영의 어려움과 엇나간 의료시스템에 대한 경고다. 우리나라 34개 시·도립 공공병원 대부분은 적자다. 진주의료원 갈등이 적자누적에서 나왔건 노조전횡에서 비롯됐건 간에 공공병원 운영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인건비 비율이 민간병원의 두 배에 달한다는데 그렇다면 제아무리 장사라도 당할 도리가 없다. 우리나라 공공병원 병상 비중은 10.4%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GDP에서 우리와 비슷한 스페인(74%), 체코(91%)에 비해 크게 뒤진다. 34개 시·도립 공공병원 대부분 적자 공공병원 뿐 아니라 민간병원 경영도 녹록찮다. 건강보험 진료 수가가 원가에 못 미친다. 초음파나, MRI, 고가 암치료장비, 선택진료비 등 ‘비급여 수입’으로 버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다. 두 시간 기다려 30초간 진료 보는 ‘컨베이어벨트 병원’…의사나 환자나 불편하고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병원수익에서 장례식장 의존도가 높다. 치료로 돈 버는 병원이 죽은 사람 장례식장 운영에 기대는 건 아이러니다. ‘병원장사-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 란 책을 보면 공공병원 실상이 낱낱이 나와 있다. 김기태 전 한겨레 기자의 현장고발 탐사보고서다. 가난한 이들이 더 쉽게 아프고, 더 쉽게 다치고, 더 쉽게 사망하는 슬픈 사연을 담았다. 빈부격차보다 심한 건강불평등 원인을 찾고 있다. 의료 사각지대인 신생아중환자, 산부인과, 응급의학은 공공병원이 보듬어야 할 분야지만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내팽개쳐진다. 의료진의 열정부족, 시스템부재도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수준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얼마 전 사우디에 의료시스템을 통째로 수출하는 협약을 맺었다. 1970년대 중동 건설특수에 이은 의료특수로 경제적 파급효과는 3000억 규모다. ‘쌍둥이 프로젝트’ 로 불리는 이번 협약은 순수 우리 의료기술을 그대로 전파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사우디 4개 도시에 400병상 규모의 메디컬타워를 건립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올해는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우리나라 선진 의료수준의 뿌리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올해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다. 동의보감은 세계 과학사의 최고봉이자 생명과학의 필독서, 의학 백과사전이다. 의학서 최초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이다. 전쟁의 참상이 아물지 않은 와중에 허준 선생이 일흔이 넘어 완성했다. 질병의 원인을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서 찾는다. 고통 받는 국민이 스스로 생명력을 깨울 수 있도록 한 양생술로 가득 차있다. 허준 선생은 서문에서 말했다. “환자가 책을 펼쳐 눈으로 보면 허실, 경중, 길흉, 사생의 조짐이 거울에 비친 듯 명확하다. 함부로 치료해 요절하는 우환이 없게 한다” 주어는 환자(국민)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흠뻑 넘쳐난다. 자랑스러운 유산 동의보감에서 국민사랑을 배우자.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다시보고, 새로운 시야로 세상을 다시 보자. 바람에 깃발이 나부끼지만, 움직이는 건 바람(적자)도 깃발(노조)도 아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이른바 풍번문답(風幡問答)이다. 진주의료원 폐업 갈등은 적자누적이나 노조전횡 차원뿐이 아니다. 의료열정 부족과 국민사랑 결핍의 문제다.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