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5호 이진우⁄ 2013.07.15 13:41:17
누군가 게임을 하나 제안한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1000만 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뒷면이 나오면 500만 원을 내놓으라고 한다. 과연 사람들은 이 내기에 선뜻 응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행동 경제학 연구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이 실제로 이런 게임을 제안해봤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거절했다고 한다.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충분히 있는데도 말이다. 카너먼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손실을 보지 않는 쪽으로 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손해가 나는 것은 싫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심리 기제를 ‘손실 혐오’라고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고통이 2배 정도 강도가 더 세다고 한다. 손실 혐오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직원들은 결과가 나쁠 경우 승진이나 연봉에 영향이 미칠 것을 두려워해 위험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위험 조정 수익이 가장 큰 쪽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쪽을 선택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을 쏟아 붓고 있는 셈이다. 카너먼은 이러한 직원들의 심리에 대해 “실적이 나쁘거나 손실이 발생할 경우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면 당연히 손실 혐오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직원들의 이런 두려움은 경영자들이 생각하는 두려움보다 훨씬 더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직원들이 위험감수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멘탈 트레이닝 전문가인 문 원장은 “불안이나 두려움은 인간의 본질적인 본능으로 다소 유사한 개념이다. 하지만 굳이 차이가 있다면 두려움은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기억을 통해 느끼는 것이고, 불안은 특정한 대상이나 기억과 관련 없이 본능적으로 엄습하는 것이다. 인터뷰하는 와중에는 용어에 특별히 차이를 두지 않고 혼용하도록 하자”면서 “우리가 어떤 소음이나 무서운 장면, 흐느끼는 소리 등의 위협을 감각기관이 느끼면 전두엽에서 대뇌피질로 전달되고, 최종적으로는 편도체라 불리는 뇌 기관에서 불안을 관장하게 된다. 불안의 두 얼굴…영혼 잠식 vs 흔들어 깨울 수도 만약 사람들이 이러한 불안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이는 자칫 생존의 문제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예들 들면 어떤 사람이 독사를 봤는데 불안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그 독사를 잡아서 가지고 놀다 물리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당신이 산길을 지나다가 호랑이를 만났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마 당신은 호랑이를 본 순간 불안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대략 3가지 정도의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첫째 무조건 도망친다. 이는 거의 본능이랄 수 있다. 호랑이가 위험한 동물이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에 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연스런 몸부림인 것이다. 둘째는 오금이 저린 채 얼어붙을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호랑이에 맞서 싸운다. 문 원장은 “불안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의 영혼마저 잠식해버려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반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작용할 수도 있다”면서 “사람은 자기 인식을 통해 오히려 불안 속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다. 불안에 항복하거나 감춰두는 것은 효과적인 대처방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영화 ‘라이프오브파이’를 보면 주인공 파이와 함께 조각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호랑이 리차드 파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한 인간이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해 가는지에 대한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호랑이는 두려움의 상징이다. 이러한 두려움에 맞서 파이가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은 앞서 말한 3가지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호랑이를 피해 바다에 몸을 던질 수도, 아예 얼어붙은 채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거나, 아니면 영화에서처럼 호랑이에 맞서 서서히 길들여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문 원장은 두려움에는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로 두려움은 우리가 타고나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은 학습되고 탈 학습될 수 있다. 둘째는 두려움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 셋째 두려움 뒤에는 사실상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무언가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넷째로 두려움에는 현실로부터의 실제적인 두려움과 상상으로부터의 비실제적인 두려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두려움은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끼고, 진정한 위험이 아니라고 느끼거나 감당할 수 있다고 느끼고, 혼자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으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조건이 충족되면 우리는 그 두려움을 넘어서거나 즐거움으로 만들 수 있다. 셸리 라자러스. 그녀는 타고난 ‘광고장이’로 광고계의 대스타였다. 현재는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오길비앤마더의 사장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광고계의 전설인 데이비드 오길비가 설립한 이 회사는 ‘브랜드 구축’을 기업 목표로 내걸고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면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순항 중이다.
현명한 리더, 두려움을 이기는 승자의 결정 라자러스가 광고 책임자 시절, 그녀는 오길비 최대의 고객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광고를 맡아 인쇄물과 TV광고를 통해 이 고객사를 신용카드업계의 세계적 아이콘으로 만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미 모두가 그녀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 했다. 당시 직원이 오길비앤마더에서 성공하는 공식은 뉴욕 본사에서 계속 승진을 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지역의 지사장이 되는 것이 정석이었다. 라자러스는 “나는 애틀랜타나 휴스턴으로 갈 수도 있었고 아예 싱가포르로 넘어갈 기회도 있었다. 모두 괜찮은 자리였다. 우리 회사가 워낙 잘 나가던 때였기 때문이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라자러스는 전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고 한다. 소아과 의사인 남편이 뉴욕에 개원한 터라 다른 도시,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었다. 그녀로서는 남편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도 그녀가 지사로 옮기기를 종용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녀의 상사는 그녀의 성공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계속해서 중책을 맡겼다. 오길비에는 DM 사업부와 광고 사업부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는데 분위기도 전혀 달랐다. DM 사업부는 우편 광고물을 대량으로 고객에게 발송하는 ‘기술자’들의 집합소나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에게서는 창의력이나 열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라자러스는 상사에게 DM 사업부를 맡겨달라고 했다. 주변에서는 모두가 그녀의 결정에 대해 ‘자살 행위’라면서 미쳤다고 했다. 창의적인 광고 일을 버리고 기계적인 광고물 사업을 맡겠다고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라자러스는 나름 계산이 있었고 자신이 있었다. 우선 광고계 스타인 자신이 자진해서 DM 사업부를 맡게 되면 사업부의 사기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광고와 DM을 자유롭게 접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DM 사업부로 옮기는 행동이 진정 위험한 행동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그녀가 광고를 맡았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전 세계 고객들의 소비패턴을 보여주는 독점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를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면 고객의 관심과 요구에 맞는 ‘타깃 광고’가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라자러스는 자리를 옮겨 4년 동안 DM 사업부를 이끌었다. TV나 인쇄물을 통해 ‘특권을 지닌 멤버십’이라는 슬로건을 늘 보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고객들은 DM 사업부가 다달이 카드명세서와 함께 보내는 우편 광고물을 통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받으며 특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고객이 피부로 느끼는 이런 브랜드 경험은 오길비만의 전매특허가 되었던 것이다. 문 원장은 “광고계에서 잘 나가던 라자러스가 DM 사업부를 택할 때는 두려움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잘 알지도 못하고 경험도 없었지만 그녀는 핵심을 놓치지 않고 광고와 DM을 접목해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창조해냈다”면서 “리더가 두려움을 피하거나 감춰두는 것은 적절한 대처방법이 아니다. 이에 맞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자기 인식을 통한 믿음의 깊이가 성공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관습적 지혜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관습적 지혜는 손실 혐오라는 보편적 본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위험을 부풀려 생각하고 지나치게 방어벽을 쌓다 보면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위험에 휘둘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빈약한 지식을 가지고 막연하게 추론을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객관적 분석보다는 특정한 선택이나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의 육감을 과신한다. 마지막으로 객관적인 정보를 무시하고 군중심리에 편승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리더가 ‘위험한 결정이 아닐까’라며 불안을 느낀다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와 위험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은 라자러스가 즐겨 쓴 방법이기도 하다. 또 세계적 의료기구 제조업체인 벡스터 인터내셔널의 카멘 사장은 “우리가 항상 성공할 수는 없다. 빨리 실패하는 것이 저렴한 실패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빨리 실패하고, 그 실패로부터 빨리 배워야만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진짜 개구리 왕자를 찾아내려면 수많은 개구리와 키스를 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문 원장은 리더가 불안을 다스리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는 초점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저 고민만 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마음가짐으로 미래 비전에 대한 소망을 키워나가며 실행 중심적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는 실패를 예상하라는 것.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경기 도중에 넘어졌을 때 이어지는 침착한 행동을 보라. 이는 경기 중에 넘어졌을 때를 예상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훈련을 반복한 결과인 것이다. 시도해 보고 실패하면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재시도할 것인가. 실패를 예상하고 실패했을 때 점검하고 보완해서 재시도하는 것이야말로 실행력을 위한 핵심 포인트다. 셋째로 관찰하고 또 관찰해야 한다. 참새가 처음 논에 널려 있는 허수아비를 보게 되면 어떤 행동을 보일까? 아마도 사람으로 착각하고 도망갈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찰을 통해 움직임이 없자 살살 접근해 보면서 허수아비의 반응을 관찰한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서게 되면 허수아비 위에 올라타기도 하는 등 예전과 같이 자유롭게 행동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불안을 창조적 에너지로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에 점진적 자극과 과부하를 통해 적절한 불안을 조성한다. 그리고 갈등을 풀고 자원화 하되, 일반화시키기보다는 개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위기감을 조성하는 가운데에서도 초점을 전환해 비전과 희망을 세우고 실행력을 강화해야 한다. 실패를 허용하고 재시도 능력을 높이는데 주력할 것이며, 조직원들이 긴장 후에는 휴식과 이완을 통해 재충전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역할에 주력하도록 한다.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