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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두 골프 세상만사]씁쓸하고 달콤한 미소, 그리고 이별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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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2호 박현준⁄ 2013.11.11 13:28:54

며칠 전에 한 지인의 1500회 골프라운드를 기념하는 라운드 행사가 있었다. 얼핏 계산을 해보니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라운드 하더라도 1년이면 100라운드, 무려 15년을 해야 1500라운드라는 결과가 나온다. 골프라는 운동을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과 건강과 동반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5년의 세월동안 1500회의 라운드를 즐겼다면 이 4가지 덕목이 잘 갖추어져있음을 뜻한다. 그는 근무시간에 묶여있는 월급쟁이가 아닌, 골프라운드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조절하고 경비를 조달할 만한 능력 있는 중년의 사업가이기 때문에 돈과 시간과 건강까지는 무리 없이 잘 갖추어져 있을 터이다. 하지만 골프마니아들이 흔히 ‘골프 동반자가 사라졌을 때, 나의 인생도 끝나리라’며 동반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듯이, 필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점도 그가 어떻게 동반자들을 조달했을까 하는 것이다. 외국에서라면 혼자 혹은 골프장에서 함께 한 낯선 골퍼와도 라운드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4인이 1조로 팀을 이뤄 라운드를 한다. 그에게도 사업파트너나, 가족, 지연과 학연과 취미 등의 인맥으로 이루어진 골프모임이 있을 것이다. 남의 이력을 계산하다가 스스로를 돌아보니 필자 역시 얼추 그 정도의 라운드 경력은 쌓은 것 같다. 처음 10년은 일주일에 적어도 3회였다가, 그 다음 5년은 주 2회였다가, 그 이후로는 일주일에 한 번꼴이다. 요즘에는 3개의 월례회가 있고, 월 2회 꼴로 친구들과 라운드를 한다. 연습장모임, 골프장멤버모임, 골프칼럼니스트모임이 바로 3개의 월례회다. 필자가 시나브로 골프에서 멀어지는 까닭은 동반자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건강을 잃었거나,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골프에서 멀어지기도 하지만 죽지도 않았으면서 필자 앞에서 ‘펑’ 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드라이버샷의 거리가 엄청나게 나갔던 친구가 있었다. 동반 라운드를 할 때면, 드라이버샷을 날려놓고는 필자를 향해 득의만만하고도 달콤한 미소를 보냈지만, 홀 아웃을 하고나서는 씁쓸한 미소로 어금니를 사려 물던 친구였다. 그녀는 연습장에서도 죽어라 드라이버만 휘둘렀다. 금전으로 직결되는 어프로치와 퍼트의 진가를 모르던 친구라, 골프내기에서는 소위 ‘까먹기 좋은 도시락’이었다. 이 친구가 비 온 뒤에 죽순 자라듯 어프로치와 퍼트의 실력도 자라면서 우리는 어지간히 슬픔과 기쁨을 교환했고, 달콤한 미소와 씁쓸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조만간에 도시락과 도시락 주인의 위치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생각이 스쳐갈 즈음, 그녀가 갑자기 이민을 가겠단다. 그녀와 한국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가졌다. 퍼트 하나면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이 왔다. 필자는 진정으로 필자보다 더 먼 거리의 그녀의 퍼트가 성공하기를 바랐고, 필자의 바램과 실수 덕으로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필자를 이겼다. 참혹한 패배의 슬픔을 느끼려는 순간 기쁨이 대신했고, 기쁨 때문에 이별의 슬픔이 더 커졌다면 역설일까. 아마 그녀는 필자와는 반대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부모를 남겨두고 시집가는 딸의 마음이나 막역한 친구와 경쟁해서 이긴 승리자의 마음, 씁쓸하고도 달콤한(bittersweet). 인디언들에게 친구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천만금을 얻기는 쉽지만 벗을 얻기는 어렵다’는 속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막역한 벗을 얻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골프친구란 더욱 그렇지 않던가. - 김영두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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