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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석 교수의 ‘파워 컬처’]우리는 왜 무채색 자동차를 좋아하나?

세계는 지금 칼라혁명 한국은 예외…진화론적 해석이 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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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0호 글·최창석 (정리 = 박현준 기자)⁄ 2014.01.06 13:47:39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무채색선호는 지속될 것이고 무채색 중에서도 이제까지 잘 팔렸던 색상에 가까운 색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기사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우리나라 도로는 온통 무채색 자동차 물결이다. 한국인은 왜 무채색을 좋아할까? 다른 나라는 화려한 유채색을 좋아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다를까? 진화에서 답을 찾아보자. 
우리의 무채색 자동차 선호도는 어느 정도일까? 현대자동차는 YF쏘나타를 2009년 9월 17일에 출시해 주력칼라로 짙은 빨강(색명 레밍턴 레드)을 TV에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이 칼라는 하이퍼메탈릭, 슬릭실버, 블랙다이아몬드, 화이트크리스털 등 9개 칼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파격디자인에 걸맞게‘섹시함’을 강조한 이 칼라는 얼마나 팔렸을까? 2009년 9월∼11월까지 0.7%, 나머지 무채색계열이 99.0%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9년에 팔린 현대·기아차 9개 차종 중 경차 모닝과 준중형차 쏘울을 제외한 7개 차종의 무채색 비율이 95% 정도였다. 이들 차종 중에서 쏘울의 무채색 비율이 31.3%로 매우 낮다. 그러나 52% 팔린 색상인 바닐라셰이크는 유채색으로 분류돼 있지만 무채색에 매우 가깝다. 이 색을 무채색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무채색 비율이 83.3%이다. 제네시스는 유채색이 아예 없다(한국인 자동차 95.2%의 칼라 심리학…엑센트서 쏘울까지 ‘색깔 수난사’국민일보 2010-03-11). 
또 미국 페인트업체 듀폰은 해마다 지역(국가)별 자동차 인기색상을 설문조사했다. 2009년 12월 조사에서 한국 소비자들은 은색(39%), 검정(29%), 흰색(14%), 회색(5%), 빨강(4%), 파랑(3%) 순으로 꼽았다. 즉, 무채색 계열이 87%로 압도적이었다. 이런 무채색 선호도는 한국이 유럽, 북미, 인도, 러시아 등 9개 조사 지역 중에서 가장 높았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무채색 선호도가 2008년에는 무려 95%, 2010년에는 91%이었다. 

현대·기아차 유채색 전략의 흥망
무채색 벽을 넘어서려는 자동차업계의 첫 도전은 1994년 출시된 현대차 엑센트였다. 1989년부터 현대차 색상을 개발해온 조성우 칼라팀장이 기억하는 분위기는 이랬다. “소비자를 리드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초로 파스텔톤의 보라, 초록, 분홍을 적용했죠. 보라는 미국인 선호도 2위까지 했던 색인데… 1년 만에 색깔을 다 바꿨어요. 공장 탱크의 페인트를 모두 버린 겁니다.” 매장을 찾은 고객은 파스텔톤 엑센트에 대해 대체로 “보기 좋다”는 반응이었지만, 정작으로 사간 것은 흰색, 은색, 검정이었다. 

▲YF쏘나타의 레밍턴 레드. 이 색상은 TV에 대대적인 광고에도 불구하고 2009년 9월~11월까지 판매대수 중 0.7%를 차지했다.


칼라팀은 전략을 바꿨다. “트렌드를 주도하려 들지 말자. 차라리 다양한 무채색을 제공하자” 흰색을 순백색과 진주색으로 나누고, 은색에 하이퍼메탈릭, 맨해튼실버 등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차종마다 4∼9개인 색상 라인업에서 유채색은 점점 자리를 잃었다. 유채색은 아반떼의 6가지 색상 중 청남색과 앰버레드, YF쏘나타의 9가지 색상 중에 에스프레소(짙은 커피색), 레밍턴레드, 블루블랙뿐이다. 

무채색 선호에 대한 전문가 분석 
엑센트에 이어 두 번째 ‘색깔혁명’을 시도한 것은 기아차 쏘울이다. 9가지 색상 라인업에 바닐라셰이크, 토마토레드, 칵테일오렌지, 문나이트블루, 블루스톤 등 유채색을 5가지나 포함시켰다. 2009년 판매 1위는 크림색 계열의 바닐라셰이크(52%). 토마토레드가 3위(9%)였고 무채색 비율은 31.3%에 그쳤다. 바닐라셰이크는 유채색으로 분류됐지만, 실은 무채색에 매우 가깝다. 이 색을 무채색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무채색 비율이 83.3%이다. 
현대차 칼라팀은 최근 2003∼2009년 판매차량의 색상별 비율을 분석했다. 2003년 75%이던 검정, 흰색, 은색, 회색계열이 2007년부터 3년 연속 90%를 넘었다. 무채색 선호가 오히려 강화됐다. 이에 대한 김훈철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겸임교수의 말이다. “그게 참 이상해요. 칼라시대가 오리라 예상했는데… 옷도 돈 낼 때는 결국 무채색을 골라 들거든요. 잠재의식인지, 안정희구 심리인지, 아직 칼라마케팅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어요.” 

▲YF쏘나타의 잘 팔리는 색상. 자동차에서 무채색 선호도는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

▲현대자동차 YF쏘나타의 색상별 판매대수 비율(2009년9월~11월). 무채색 비율이 99.0%, 유채색(레밍턴레드, 에스프레소) 비율은 1.0%에 그쳤다. (출처 : 도로는 온통 ‘무채색’ 물결, 동아일보 2009-12-08)


그는 기업은 칼라마케팅에 나서야 한다는 요지로 2002년 ‘칼라마케팅’이란 책을 썼다. 또 그는 “내 차도 회색 오피러스예요. 그러고 보니 나도 무채색이네요. 검정색 타다가 다른 색 타보자고 고른 건데.”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왜 거의 무채색일까? 무채색 차를 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이유는 “중고차로 팔 때 손해 보지 않으려고”이다. 중고차 시장에선 무채색과 유채색 가격차가 수 십 만원까지 벌어진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무채색 수요가 많다는 증거일 뿐이다.
감성색채공학을 연구하는 석현정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2010년 핀란드 기업 노키아 의뢰로 한국 소비자 트렌드를 조사했다. 조사항목 중 하나는 ‘왜 한국인은 흰색을 좋아하나’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튀는 걸 꺼린다. 차 선택은 ‘남들이 어떻게 볼까’가 중요한 잣대다. 그렇다면 흰색을 비롯한 무채색은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라고 석 교수는 추정했다. 그도 흰색 아반떼를 몬다. 

▲국가ㆍ지역별 자동차의 무채색 선호도. 우리나라의 무채색 선호도가 가장 높다 (출처 : 미국 페인트업체 듀폰사 2009-12).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무채색도 검정과 흰색, 은색, 회색의 심리가 다르다고 분석했다. “정반대예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는 신분의 상징입니다. 아직 생활용품이 아니에요.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검정은 과시하려는 욕구에서 택하는 반면, 흰색·은색·회색은 자신을 감추려는 선택입니다. 유채색은 개성인데 아직 개성을 드러내는 분위기가 아닌 겁니다” 그의 차도 회색이다. 
한국인의 대표적 특성이라는 ‘빨리빨리’도 자동차색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상관관계는 정일희 기아차 칼라팀장이 지적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판매방식은 미국 유럽과 좀 다릅니다. 소비자가 선호할 사양을 예상해 집중적으로 만들어놓죠. 구매계약이 체결되면 빨리 인도할 수 있게요. 특이한 칼라나 사양은 만들었다가 안 팔리면 재고가 되니까 주문에 맞춰 만드는 편입니다.”(한국인 자동차 95.2%의 칼라 심리학, 국민일보, 2010-03-11). 


▲2009년 현대ㆍ기아차 차종별 무채색 판매대수 비율. 쏘울의 무채색 비율이 가장 낮다. 쏘울에서 유채색 성공을 가져온 바닐라셰이크는 실은 무채색에 매우 가깝다. 이 색을 무채색 범주에 포함시키면, 무채색 비율이 83.3%이다.


한국 무채색 VS 중국 유채색 
그렇다면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차 색상은 무엇일까? 현대차가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판매중인 주요 차종의 색상 비율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대체로 무채색 계열을 선택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붉은색과 금색 등 색상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상반기 중국에서 팔린 ‘엑센트’(현지명 베르나) 중 적색 계열은 무려 34%에 달하지만, 한국에서는 4.1%에 불과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금색과 노란색 같은 황색 계열의 비중이 12%에 달하는 점도 눈에 띈다.

▲현대·기아차의 색상. 파스텔톤 보라색 엑센트는 1994년 색깔혁명에 실패했고, 바닐라세이크 소울은 색깔도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바닐라세이크 소울은 유채색이라고는 하지만 무채색에 매우 가깝다.

준중형 ‘i30(아이써티)’에서도 중국인들의 붉은색 선호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경우 상반기에 토마토레드 등 붉은색 계열 판매가 2.8%에 불과했지만, 중국은 같은 기간에 무려 34%로 집계됐다. 국내에서 1.7%에 불과한 청색 계열(산토리니블루, 클린블루)이 중국에서는 29%에 달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판매가 저조한 색상이 중국에서는 인기색상인 것이다. 왜 그럴까? 
한국인의 무채색선호는 빙하기의 시베리아 설원(雪原)에서 진화된 북방형들의 시각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인구 중에서 북방형이 차지하는 비율이 55.1%∼65.0%로 남방형보다 높기 때문이다. 빙하기의 시베리아는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이 반복돼 하얀 설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숲도 다른 물체들도 흰색에 대비되어 무채색에 가깝게 보였다. 이로 인해 북방형의 시각은 색상보다는 명암의 구별능력이 발달돼 우리나라는 무채색을 선호할 것으로 보여진다. 

자동차에서 무채색선호는 백의선호와 산수화에서 낮은 채도의 채색과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그렇다면 무채색선호는 한국뿐만 아니라 북방형이 많은 중국북부, 몽골, 일본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유럽과 북미, 인도, 러시아, 중국에서 유채색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인도와 중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인도는 더운 지방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남방형으로 보이고, 중국남부의 광동은 남방형 비율이 69.9%, 대만은 74.8%로 매우 높다. 남방형은 더운 지방에서 진화하면서 색채감감이 뛰어난 유채색시가 발달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중국남부에서는 남방형이 많아서 유채색을 선호하지만, 반대로 북방형이 많은 중국북부에서는 무채색을 선호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에서 유채색 선호는 남방형이 많은 남부에서 주로 나타날 것이다. (출처 : 부담스런 빨강 베르나ㆍ금색 투싼, 中서 불티, 헤럴드 경제 2011-07-21)


북방형의 진화에서 무채색선호

유럽과 북미, 러시아인은 크게 보면 모두 백인들이다. 이들은 빙하기에도 지중해연안의 비교적 따뜻한 지방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유채색에 익숙한 남방형과 유사한 시각특성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에서 우리나라의 무채색선호는 특별히 의식해서라기보다는 무의식중에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시각은 시베리아에서 대략 4만3000년 전부터 오랫동안 진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산물로 그 뿌리가 매우 깊기 때문이다. 유채색 자동차를 대대적으로 광고한다고 해도 우리의 시각을 유채색으로 리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는 시각특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동차왕국인 미국 또는 다른 지역에서 선호했던 색이라고 해서 우리도 선호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갈 가능성이 높다. 

색의 다양성을 위해 유채색을 사용하더라도 기아차 쏘울과 같이 무채색에 낮은 채도의 유채색을 가미하는 것은 개성을 추구하는 요즘시대에 새로운 변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파스텔톤 보라색 등과 같이 높은 채도의 유채색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북방형의 시각은 그 색을 선호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매우 낯선 색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무채색선호는 지속될 것이고 무채색 중에서도 이제까지 잘 팔렸던 색상에 가까운 색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경향은 북방형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유사하게 나타날 것이다.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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