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칼럼니스트 1호로 불리는 이인식 씨는 휴대폰을 안 쓴다. 최신 과학 트렌드를 연구하는 사람치고 아이러니하다.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게 그의 브랜드가 됐다. 그러니 이젠 쓰고 싶어도 못 쓴다. 휴대폰 외에 신용카드와 운전면허도 없다. 3무(無)인생을 산다.
이씨는 원고지에 볼펜으로 원고를 쓴다. 원고료와 인세, 강연료가 주 수입원이다. 우리나이로 일흔에 접어들어 ‘융합하면 미래가 보인다’ 란 책을 냈다.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설파한다. 대중과학서를 올해로 45권째 출간했다. 매년 두세 권씩 책을 내고, 꾸준히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쓴다. 휴대폰을 안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요금이 비싸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과학 칼럼니스트 “통신료 비싸 휴대폰 안 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이씨는 LG그룹에 근무했다. 대성산업 상무를 거쳐 46살에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24년째 과학저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직함은 지식융합연구소장. 사무실도 연구원도 없다. 자택이 사무실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과 카이스트 겸직교수도 지냈다. 그는 피땀 흘려 원고를 써 번 돈이 아들 휴대폰 통신비로 나가는 걸 아깝다 했다.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자기라도 휴대폰 없이 살자고 결심했다.
우리나라는 휴대폰보급률 세계1위다. 통신인프라는 세계으뜸이다. 세계 휴대폰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 보면 안다. 보고 누르고 찍고 속삭이는 게 다반사다. 휴대폰은 분신이다. 잠잘 때도 곁에 둬야 안심이다. 휴대폰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끝난다. 언제 어디서나 휴대폰에서 자유롭지 않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교차한다.
가계비 지출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엥겔지수와 맞먹는다. 한 달에 드는 쌀값과 통신비가 엇비슷하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가장 큰 광고주다. 앞 다퉈 쏟아내는 마케팅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경기불황에도 새로 문을 여는 가게는 한집 건너 이동통신 대리점과 24시 편의점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신(新) 풍속도다.
비싼 통신비 고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휴대폰을 안 쓰고, 못 쓰는 제2∼제3의 이인식 씨가 많다. 통신비 부담은 급기야 알뜰폰(MVNO 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을 낳았다. 이동통신 3사의 통신망을 저렴하게 빌려 요금이 30% 정도 싸다. 가계 통신비 절감을 위해 2011년 7월 도입됐다. 중소 통신사업자가 4∼5%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가 시장 장악하는 알뜰폰사업 대책 세워야
2월 현재 알뜰폰 가입자가 260만명을 넘었다. 우체국이나 농협, 대형마트 등 가입할 수 있는 곳이 늘면서 크게 늘었다. 대부분 기존 통신사가 외면하는 2G·3G(세대)요금제에 가입한다. 고속·고가의 LTE(4세대)시대가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례적으로 15개월 만에 3G폰을 다시 출시했다. 이동통신 3사도 기존 가입자를 지키려 2G·3G폰 주문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알뜰폰 시장마저도 대기업 독무대다. 이동통신 3사와 중소업체간 가격경쟁을 통해 통신비를 내린다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중소기업 활성화와 일자리창출에도 역행하고 있다. 알뜰폰 가입자 가운데 40%를 SK텔링크와 CJ헬로비전 등 대기업 계열사가 독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26개 중소업체는 1∼2만명을 확보하는데 그친다. 일방적 게임이다.
유통망과 자금력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뒤진다. 마케팅 파워도 절대적으로 밀린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현재 에버그린모바일과 유니컴즈 등 6개 중소 통신업체에만 우체국 알뜰폰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 대기업이 우체국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소기업에 허용된 마지막 보루는 지켜져야 한다. 알뜰통신사업자협회(김홍철 회장)도 올해 가입자 400만, 시장점유율 7∼8%를 목표로 유통채널 확보와 시장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알뜰폰 중소업체 육성을 약속했다. 다행이다. 베풀어야 돌아온다.(식신생재 食神生財)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