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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 주목 작가 - 이건용]“인생은 짧고 예술도 짧다” 달팽이로 본 느림의 미학

‘달팽이 걸음_이건용’전, 속도를 가로지르는 디지털시대 예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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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5호 왕진오 기자⁄ 2014.07.03 08:50:26

▲신체드로잉 작품을 설명하는 이건용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왕진오 기자) 현대 문명의 속도를 통해 생명을 우리시대에 새롭게 조명하는 원로 작가 이건용(72). 회화 본질에 대한 탐구와 예술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수십 년 동안 펼쳐오고 있다.

그가 평생을 이어오고 있는 작품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달팽이 걸음_이건용’전이 6월 24일부터 12월 1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원형전시실에서 펼쳐진다.

이건용은 1969년 결성된 후 현대미술에 대한 이론적 탐구와 실제 작품을 긴밀히 연결하고자 했던 ‘공간과 시간(ST)’를 이끌었다. ’아방가르드 그룹(AG)’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한국 현대미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

또한 미술계 주류와 관계없이 개념미술, 행위미술, 설치작업 등에서 실험적 시도를 감행해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금언이다. 하지만 이건용은 이를 뒤집어 “인생은 짧고 예술도 짧다”라고 도발적으로 선언한다.

이건용의 작품 중 많은 것들이 행위로 이루어져 있어 작품의 실체가 그 행위를 수행하는 시간동안만 존재할 뿐, 이후에는 사진이나 영상 등의 기록물, 또는 그 흔적을 담은 잔재들로만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

▲달팽이 걸음-이건용전 설치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하지만 “예술도 짧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렇듯 작품이 지니고 있는 한시적인 성격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삶과 예술이 유리된 게 아니라는 작가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은 전시장의 벽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도 있고, 천장에도 있으며,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나가는 일상, 그 행위 하나 하나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 담긴 이야기는 때때로 작가의 작품 속에 내용으로 직접 담기기도 한다. 삶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자연 그리고 예술과 이어지는 관계를 통해서 다양한 작품으로 형상화되며, 이는 천천히 꾸준하게 그려지는 궤적으로 남는다.

‘달팽이 걸음’은 19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처음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작품이다.

자연 속 달팽이의 느린 걸음을 통해 디지털 시대 문명의 빠른 속도를 가로질러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발표 당시에는 당대 권력에 의해 상처받은 작가의 신체를 연상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누가 뭐라 하건 느리면서도 꾸준한 걸음을 달팽이처럼 걸어간 뒤에 남는 궤적은 작가가 평생 일구어온 삶과 작품세계를 연상하게 만든다.

현대미술은 때론 미술품같이 보이지 않는 의외의 사물들이 예술작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어떤 사물이 ‘작품’이 된다는 것은 그 사물과 전시 공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이 존재한다는 상황에 달려있게 된다.

규격화된 전시실 환경에서 이건용의 ‘작품’과 관객은 관계 맺기를 시작하며, 이 관계의 시작을 통해 작품은 우리를 눈앞에 새롭게 등장한다. 이 작품들을 통해 관객은 자연과 인간의 행위, 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유와 명상 속으로 빠져든다.

▲전시장에 설치된 ‘신체항’ 사진 = 왕진오 기자


작가가 197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협회전에 처음 발표한 ‘신체항’은 1973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제8회 파리국제비엔날레에 출품해 이목을 끌었으며, 오랜 시간 여러 전시에서 선보인 설치작품이다.

‘신체항’은 흙에 뿌리내린 나무를 정방형의 흙더미와 함께 떠내어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 상태의 작품이다. 관람객들로 하여금 인공적인 전시실의 환경 속에서 자연 그대로인 듯 보이는 나무의 커다란 모습과 마주하며 직접 대면하게 만든다.

이건용의 작업이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왜 화면을 마주보면서 그려야만 하는가?”는 의문을 제기하고, 화면 뒤에서, 옆에서, 화면을 등지고, 또 화면을 뉘어놓은 채 자연스러운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원형과 하트모양의 붓자국을 남겼기 때문이다.


“왜 화면을 마주보면서 그려야만 하는가?”

이와 같은 퍼포먼스의 결과로 빚어진 이미지들은, 사상 유례없이 혁명적으로 독특한 회화 언어를 만들어 냈다.

‘신체드로잉’ 연작은 바로 이러한 방법론을 구사한 회화 언어를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화면 뒤에서 앞으로 팔을 내밀어 그 팔이 닿는 데까지 선을 그어나가 완성시키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러한 신체드로잉을 통해 몇 가지 유형의 드로잉 방법론을 여러 가지 이미지와 병치시키거나 중첩시켜 다양하게 변형해낸다. 이 이미지의 변주는 지속적으로 진화, 발전해 오늘날에도 다양한 회화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창작의 외길 30년을 이어온 이건용의 작업이 오늘에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것은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출발한 작가의 작업관에 있다.

회화란 무엇이며 조각이란 무엇인가? 미술품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디에 자리하는가에 관해 새삼스럽게 되물어보는 과정에서 작가는 먼 옛날, 과거의 시간 속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그의 생각의 실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그림이 평면 위에 그려진 환영이며, 조각이란 자연물에 가한 인공적인 손길의 흔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의 재발견인 것이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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