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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세월호 참사는 표현의 자유 무시서 비롯”

청해진해운 직원의 청와대신문고 고발 무시…오픈넷·공익법센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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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1호 정의식 기자⁄ 2014.08.14 09:02:31

▲사진 = 이성호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항상 바쁘다. 강단에서 법학을 강의하고 오픈넷이란 인터넷 공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에서는 공공의 법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른 바 ‘표현의 자유’를 전도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가 좀 더 보장됐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법리체계의 여러 문제점들과 그 대안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박경신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UCLA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를 취득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2005년부터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던 중 언제부터인가 시민사회운동에 깊이 참여하게 된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및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민변) 회원, 오픈넷 이사 등 여러 시민운동단체에 몸담고 있다. 2011년부터 지난 5월까지 2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오픈넷 사무실에서 박 교수를 만나 그간의 여러 사건들과 진행중인 활동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 심의위원 시절 ‘성기 사진 게재’ 논란이 있었는데, 사건의 실체에 대해 설명해 달라.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떤 네티즌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자 성기 사진을 게재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를 검열·삭제하려 했다. 이 사진이 불법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몇몇 심의위원들이 보기에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삭제하려 했다.

최소한 누군가가 올린 게시물을 삭제하려면 삭제 전에 당사자에게 알려주고, 이의제기할 기회를 주고, 지운 후 알려주는 절차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당사자는 본인 게시물이 어떤 이유로 없어졌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되고, 모르니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삭제되면 문제의 데이터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라도 올려서 보관하려 했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검찰이 규정했다.

사람들의 신체는 자연스러운 거고, 지금도 일반 서점에 가면 의학 서적이나 누드 사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정도 수위의 사진을 음란하다고 불법으로 단정 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불건전하다’는 막연한 잣대로 국민이 올린 글이나 작품을 차단해선 안된다. 음란물로 규정하려면 대법원이 정한 여러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걸 따지지 않고 차단한 사례였다. 심의위원으로 일하며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다. 어느 법 위반인지가 불분명한 정보를 삭제하거나 차단한 경우가 많았다. 영화나 방송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방영되는 수준의 게시물도 단순히 심의위원 눈에 끔찍하다는 이유로 삭제·차단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 해당 사안으로 법적 분쟁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2012년 7월 1심에서 검찰 측 주장이 받아들여져 유죄가 나왔지만, 2012년 10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은 다시 상고했고, 대법원 최종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은 채 2년이 지났다. 재판이 너무 오래 지체되고 있는 감이 있는데, 더 오래 걸린 다른 재판들의 사례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한 2년은 지나야 최종 판결이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가 괜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애초에 관심없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알만한 분들은 다 알아주시니 문제되지 않는다. 내가 정치를 할 것도 아니고.


- 심의위원 활동이 지난 5월 끝났는데, 현재는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는가?

대학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다. 학교 밖에서는 오픈넷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활동이 주가 된다. 표현의 자유와 법치주의를 위한 활동이다. 오픈넷은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기술혁신 등 인터넷 관련 사안 위주고, 참여연대에서는 인터넷과 관계없는 분야 이를테면 영화나 방송, 교과서 등에 대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알다시피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세계 법원들은 물론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인터넷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나 성별, 재력에 관계없이 서로 평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일종의 이상향 같은 곳”이라 인정하고 있다. 그런 인터넷에서 ‘실명제’는 독약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오픈넷은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게시물을 쓸 때 실명 인증을 해야한다는 조항은 위헌 판정을 받았다. 오픈넷의 중요한 업적이다. 하지만 실명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성인물, 게임물 등은 여전히 실명인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픈넷은 그런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시민권의 보장과 확대를 위해 기획소송, 입법활동, 이해기관 로비, 대중계몽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환경파괴문제, 재벌독점폐해, 열악한 노동환경, 공권력에 의한 사찰 등 권리로 인식되지 않던 작은 권리들을 찾기위한 여러 소송을 지원하고 있으며,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권 특히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중점적으로 벌이고 있다.

또, 집단소송법,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납세자 소송법, 제조물책임법 등을 4대 공익법제로 명명하고 입법화를 추진하는 한편 사법연수원생들의 법률봉사활동 유치, 로스쿨생 실무수습, 변호사 연수 등의 활동으로 공익변호사를 양성하고 있다.


- 교수보다는 시민사회운동가에 가까운 삶을 살고 계신데.

사실 원래 그러려고 그랬던 건 아니다. 법을 가르치다보니 너무 법과 현실의 간극이 컷다.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현실이나 하위법이 나오면 안 되는데, 그걸 확신을 가지고 가르쳐야하니 양심의 가책을 너무 많이 받았다.

이를테면 변호사 숫자를 제한하는 법, 이건 헌법을 가르치다보면 당연히 위헌이라 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나라는 위헌인 법이 유지되고 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법이다. 전국에서 1000명 딱 뽑으니까. 충분히 변호사가 될 실력을 갖춰도 전국에서 몇 명 안에 들어야만 변호사가 되야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학생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법조차 엉망인 상태에서, 헌법 정신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사안과 관련해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변협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 변호사단체인 민변조차 전략적 침묵이랄까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중이 제 머리 깍기 어려운 격이다. 처음 시민단체와 일을 함께 한 것도 변호사 정원제 때문이었다. 2001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금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로스쿨이 만들어지며 정원이 1500명으로 늘어 조금 더 나아지긴 했다.

나머지 활동들도 마찬가지다. 시장 경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할 룰들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저의 과제다.

▲사진 = 이성호 기자


- 최근의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도 할 말이 있으신데.

일단 세월호 참사 자체가 표현의 자유의 문제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청해진해운에서 임금체불을 당한 직원이 청와대신문고에 고발을 했으나, 국가기관은 임금체불 문제해결에만 관심을 가졌고, 과적 관행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가 좀 더 보장된 사회였다면 그 직원은 세월호의 여러 문제점들을 인터넷에서 공론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임금문제는 물론 과적 문제를 비롯한 안전 문제까지 학부모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고, 여론을 통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근본적인 문제점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내부고발을 하려면 형사 처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허위로 입증되지 않은 언사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평판을 저하시키는 언사를 발설한 자는 처벌될 수 있다.  소위 ‘진실유포죄’다. 물론 형법 제310조에 의해 ‘오로지 공익을 위한’ 언사는 합법으로 인정받지만 어디까지 공익으로 인정받을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당했다며 고용주의 실명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던 것이 공익적 사유로 인정받지 못해 명예훼손 유죄판결을 받았다. 현재까지 법원이 임금체불을 공익적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직 그 판결이 뒤집어지지 않은 채 판례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내부고발이 활발해질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해경의 구조활동에 문제가 있다”고 허위 인터뷰한 홍가혜씨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 사람이 한 얘기는 나중에 다 사실로 드러났지만, 잠수부가 아닌데 잠수부를 사칭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본인의 알려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은 명백하지만, 실제로 그 얘기로 인해 피해입은 사람이 없었고, 유족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재판까지 갈 큰 문제는 아니었다고 본다. 처벌할 사안은 전혀 아니다. 사칭을 해서 업무를 방해한 것도 아니었다. 고소 자체가 업무 방해가 아닌 해경에 대한 명예 훼손이다. 이런 식으로 명예훼손은 다양한 분야에서 개개인들의 언로를 막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세월호 후속대책으로 안전위반을 더욱 중하게 처벌하는 법개정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좋은 법이 없어서 세월호 사태를 당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법도 그 위반 사실을 알리려는 사람이 항상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우리는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도처에 세월호같은 참사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요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내부고발이 아니고서는 그런 문제들은 시정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은 언론의 자유도 위축시킨다. 국내 언론들이 익명보도만 하는 것이 그런 이유다. 진실을 보도해도 공익적 사유가 없으면 처벌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자가 매 사안을 공익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걸 매번 법원에서 판결받아야 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다 증발되어 버릴 것이다.

외국 언론에 비해 국내 언론이 그만큼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명보도가 아닌 익명보도만 해서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오히려 엉뚱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 ‘사실인데 공익적이지 않다면 보도할 수 없다’가 아니라, ‘사실이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보도해도 된다’가 되어야 한다.

지난 17·18대 국회에 진실유포죄를 폐지하자는 법안이 개진되었으나, 국회의원들이 본인의 명예훼손에 민감해하는 이유 때문인지 여야를 막론하고 당론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조만간 다시 이 법안이 추진될 것이다.


- 표현의 자유를 가능한한 확대하자는 입장이신데, 이를 악용해 극단적 언사가 난무하는 문제도 있다. 규제가 어느 정도 있어야하지 않나?

모든 말이 똑같진 않다. 어떤 표현들은 물리적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것들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 타인에게 정신적 피해를 줄 것이 명확한 말들은 규제되야 하고, 특히 차별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말은 규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안이든 형사처벌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호남혐오표현이 심한 수위에 올라있는데, 이 문제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직접적 차별 선동은 민사처벌을 받는게 맞고, 집단적 차별에 대한 것이 아닌 정치적 견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욕설 같은 건 용인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는 극단적 발언들을 규제하기 위해 ‘모욕죄’를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모욕죄가 실질적으로는 주관적 자아가 높을 것으로 보이는 외관 즉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모욕죄가 형사처벌의 형태로 존재하고, 이에 따라 검찰이 개입하면서 더욱 공무원이나 권력에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의 무기가 되고 있다. 최근들어 ‘듣보잡’, ‘지는 만원이라도 냈나’ 정도의 표현에도 모욕죄 유죄판결이 나오면서 건강한 분노의 표현을 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지난 2013년 8월 모욕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이전까지 9대0 합헌 판결이 나던 것이 당시 6대3으로 3인의 재판관이 위헌의견을 내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조만간 모욕죄는 없어지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 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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