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 영향 미치는 셀프리더십 통해 한 분야의 최고로 우뚝 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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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다. 그리고 리더와 자주 혼동 내지 비교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뒤에서 미는 사람을 우리는 ‘보스’라고 부른다. 즉 보스는 부하직원들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고, 그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행태를 보인다. 반면 리더는 스스로 솔선수범을 통해 부하직원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 나가도록 앞장서서 행동으로 보여준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조직 전체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이다. 다시 말해 조직 전체가 지향하는 올바른 방향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 만약 리더가 방향 선택을 잘못한다면, 그 조직은 마치 암초를 만나거나 풍랑을 만나서 좌초하는 배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이는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즉 모든 개인은 자신에게 리더이며, 이를 ‘셀프리더’라 한다. 따라서 셀프리더 역시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방향과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실천경영연구소 백금기 대표는 “셀프리더는 자신에게 스스로 영향력을 미치는 셀프리더십을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생의 방향과 선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잘 세워 실천함으로써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러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간절한 일인가? 국가의 발전 방향에는 맞는가?(선진국 형인지, 후진국 형인지) 그리고 목표에 대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어렸을 때 뼈저린 가난을 경험했다. 4남2녀의 막내인 그가 10세 되던 해 부친을 여의고, 온 가족이 초가집과 호롱불 밑에서 서로 부대끼며 힘겹게 살던 시절이었다. 당시 시골에서는 가족 중 누구 하나 입을 덜면 그만큼 남아 있는 가족들이 조금은 더 먹을 수 있겠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 대표는 일찍이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상경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던 차 1990년께 18세의 소년은 어려서부터 마음먹고 있던 계획을 무작정 실천에 옮겼다. 하지만 기본 학력이 약했던 탓에, 할 만한 일이라고는 봉제공장에 취직하는 것이 최고였다. 한 달에 고작 15~18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봉제 일을 하던 중, 백 대표는 ‘나의 몸을 담보로 해서 일을 하면,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고 고민하다가 전기 관련 일을 하게 됐다. 지금이야 크레인을 이용해 간단히 전(신)주를 설치하지만, 당시에는 직원들이 일일이 땅을 파서 무지막지한 전주를 심고 세워야 했다.
예측 못한 사고 충격…간절한 마음 길렀다
백 대표가 처음에 땅을 파는 일을 시작했을 때 그의 월급은 5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각이 트인 사람이라면, 좀 더 나은 기술(전주에 올라가는 일)을 익혀서 하루 일당 15만 원을 받는 기능공을 꿈꿀 것이다. 이후 백 대표는 땅 파는 일을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전주에 올라가는 연습을 계속했다. 이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때로는 선배들에게 몽키로 뒤통수를 맞아가면서도 악착같이 전주에 올랐다. 지금도 그의 뒷머리엔 그 당시 아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백 대표는 “전주에 오르는 연습을 한 지 1개월 쯤 되었을 때 실력이 부쩍 늘었다. 이때부터는 월급이 50만 원에서 90만 원으로, 또 120만 원, 150만 원으로 계속해서 오르게 됐다”면서 “이제 비로소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났고, 더 욕심을 부려 살아있는 전기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그런데 ‘인생사 호사다마’라 했던가. 1992년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고를 당했다”고 회상했다.
가난을 벗어던지겠다며 희망을 꿈꾸던 스무 살의 청년은 같은 해 8월 17일 오전 10시 30분경, 그가 간절하게 사랑하고 있던 전주위에서 감전 사고를 당한다. 순간적으로 2만2900V의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전류가 그의 왼쪽 팔로 들어와 왼쪽 다리로 빠져나갔다. 설상가상으로 불꽃까지 피어나서 몸의 45% 정도가 4도 화상을 입은 동시에, 오른쪽 손가락 하나와 발가락 하나도 오그라들어 떨어져나가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아울러 왼쪽 팔과 다리는 결국 살리지 못한 채 절단하고 말았다.
이후 1년 가까이 병원생활을 한 뒤 사회에 나왔을 때,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때로는 인격을 무시당하기도 하는 상황과 싸워야 했다. 크게 좌절한 나머지 자살을 결심하고 약국에서 수면제를 다량으로 구매해 먹기도 했지만, 이 또한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인생의 멘토, 이영권 박사의 따뜻한 손길
백 대표는 “지금은 사회가 많이 성숙해져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지고 대우도 좋아졌지만, 1990년대 초만 해도 장애인이라고 하면 아예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며 “그리고 병원에서 생활할 때는 정말로 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냈다. 특히 장애인이 쓴 자서전 등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사회로부터 나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받게 되니,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었다”고 토로했다.
2004년 4월 5일 새로운 운명이 결정되는 두 번째 사건이 있었다. 현재 세계화전략연구소 대표인 이영권 박사의 강의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당시 이 박사는 강의는 물론 라디오 생방송과 KBS 방송 등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백 대표는 이 박사를 만나 소위 시쳇말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제발 살려달라며 매달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같은 해 4월 8일부터 약 5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박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여하튼 백 대표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마침내 그가 살고 있던 광주광역시를 방문한 이 박사를 다시 만났다. 아울러 이 박사가 그의 초라한(?) 손을 꼭 잡으면서 “너도 네 인생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 나와 함께 해보자”고 말해, 영원한 인생의 멘토와 멘티 관계가 성립됐다. 드디어 2009년 12월 19일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이 박사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비로소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동기부여 강사가 되겠다’는 아주 선명한 목표도 세웠다.
“이 박사께서는 10년 전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지금의 학력으로는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니 우선 공부에 전념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33세에 대학교에 입학했고, 지금까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10년째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그 와중에도 서울이나 광주에서 진행되는 세미나는 물론이고 자기계발, 인문학, 심지어는 재테크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강의란 강의는 모두 찾아다니면서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 대표는 인생의 방향인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한민국의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많이 보고, 많이 들어야 하며, 자신이 죽을 때까지 할 일이라는 판단이 들어야 한단다. 이러한 목표 설정은 주변에서 해줄 수 없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목표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향하는 대상을 말하며, 최소 30대 이상이 되면 목표에 대한 방향 설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백 대표는 “인생의 방향인 목표를 설정할 때는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첫째로 그 목표하는 일이 정말로 자신에게 간절한 일인가? 둘째는 그 일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맞는지 여부, 즉 선진국형인지, 후진국형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면서 “후진국형이라면 이는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엔 목표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생의 방향…목표설정은 어떻게 하나?
백 대표는 목표설정에 대한 세 가지 관점에 대해 자신의 사례를 바탕으로 제시했다. 그의 목표는 ‘대한민국 최고의 동기부여 강사가 되는 것’이다. 이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간절하게 이루겠다는 목표라고 한다. 백 대표는 “마지막까지 현장에서 강의하다 죽는 것을 꿈꾸고 있다. 결코 환자로 죽기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 기일에도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그때 강의가 있으면 강의를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가 해마다 아버지 산소를 찾는 날은 자신이 사고를 당했던 8월 7일이다. 그런데 이때도 강의가 있다면 그 일에 충실했다. 백 대표는 이에 대해 진정으로 간절함이 없다면 결코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자신의 경우엔 강의를 하는 일이야 말로 간절한 인생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백 대표는 이처럼 절실한 간절함을 가지려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아집을 버리라고 단언했다. 만약 아직도 아집이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역시 사고가 나기 전에 있었던 생각은 모두 떨쳐 버렸단다. 그때서야 비로소 새로운 인생의 방향이 보이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 관점에서는 데드라인을 정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목표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발전방향과 일치한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이를 장기, 중기, 단기로 나눠 세분화한다. 단기는 기본적으로 1년 단위를 말하는데, 이것을 12분의 1로 쪼개고 다시 30분의 1로 쪼개면 하루의 계획이 나오게 된다.
백 대표는 “나의 경우 현재 나이가 42세인데, 50세가 될 때까지의 중기목표는 박사학위를 수료하는 것과, 적어도 매년 한 권씩의 책을 쓰는 것이다”며 “또 하루의 계획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매일 밤 11시부터 약 30분 정도는 일기를 쓰며 마무리하고, 다음날 아침 4시 50분에 기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기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기목표로 대학원에 다니면서, 성적까지도 컨트롤한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학점을 얻기 위해 공부에 최선을 다한다. 이를 위해 강의실의 좌석은 물론, 도착 시각, 그리고 가계부까지 철저히 쓰고 있다. 또 하루하루를 내일 뜨는 태양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과거 사고가 있던 날 아침에 어머니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나간 뒤 저녁에 집에 돌아가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을 직접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백 대표는 또 두 번째 관점에서 ‘인내심을 가지라’고 권했다. 즉 가을에 피어나는 꽃에게 봄에 피어나라고 다그치지 말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엔 독특한 ‘빨리빨리’ 문화가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변화를 시도할 때 2~3일도 안되어 주변에 확인을 구하는 경향이 많다. 물론 그 정도의 시간에는 눈에 띄게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태해지고 게으른 마음이 솟아나면서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그래서 목표에 대한 데드라인을 지키는 마음이 중요하다.
자신이 목표하는 일에는 최고가 되어라!
마지막으로 자신이 목표하는 일에서 어떻게 최고가 될 것인가? 이를 위해서 백 대표는 모든 개인들이 자신의 삶 자체를 매우 전략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백 대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아침시간에 어떤 전략적인 마인드로 실천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목표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침 4시 50분에 일어난다. 그리고 10분 동안 옷을 입고 근처 공원에 나가서 40~50분 간 운동을 한다. 셀프리더는 스스로 건강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이 진짜 보약이라고 의사들도 말하곤 한다.
5시 45분에 집에 돌아와 10여 분 간 사워를 한 뒤에 6시부터 15분 동안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 후 15분은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서 그날의 이슈를 체크한다.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한 시간 동안엔 세 명의 지인에게 세 통의 메일을 보낸다. 예전에는 강의를 할 때 사투리를 쓰지 않기 위해 입에 볼펜을 물고 매일 1시간씩 발성연습을 했다고 한다.(기자와 인터뷰하는 내내 전혀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7시 30분에는 3~5분 정도 어머니와 화상통화를 매일 한다. 이것은 부모와 자식 간에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의외로 많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신뢰가 약한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백 대표는 부모님에게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잘하라고 당부했다. 매일 주어지는 아침시간을 이렇게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단다.
사람들은 대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과 고민이 많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런 걱정과 고민이 머잖아 자신에게 현실로 닥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백 대표는 이런 생각을 할 시간에 자신의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간절히 생각하라고 권했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또 책상 옆에 있는 액자 안에 목표를 넣어 두고 매일 수시로 바라본다고 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이라는 나의 조국이 오직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목표에 대한 간절함 속에서 사람들이 긍정적 사고를 갖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셀프리더십은 스스로를 갈고 닦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설정해 달성해 가는 과정에서 중도에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결코 후회가 되지 않는 삶을 매일 매일 알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셀프리더인 것”이라고 말했다.
백금기 실천경영연구소 대표
- 학력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 석사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 과정
- 경력 현) 세계화전략연구소 수석연구원
현) 세계화전략연구소 이영권의 성공센터 강사
-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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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꿔준 최고의 비법, 멘토링(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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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우 기자
이진우 기자 voreo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