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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수(穗)가 노랗던 파랗던 제대로 감별해야 이삭이 패고 알곡이 맺힌다. 싹수는 어린 싹이다. 싸가지는 싹의 모가지다. 싹수가 노랗다면 싸가지가 없다는 거다. 아니다 싶으면 뽑아 버려야 한다. 될 성 부른 놈은 떡잎부터 다르다. 농부는 싹수같은 ‘생명의 골든타임’을 알고 있다.
골든타임은 최적의 시간을 정하고 실행하는 원칙이자 중용(中庸)이다. 중용은 단순한 중간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황금같은 중심이다. 골든타임은 이념보다 상황, 논리보다 현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업의 성패는 싹수의 감별에 따라 판가름 난다. 기업가는 ‘투자의 골든타임’을 알아야 이긴다. 투자의 골든타임을 떠올릴 때 일본 최고 부자 손정의 만한 사람이 없다.
중국 알리바바 뉴욕 증시 상장…최대 수혜자는 손정의
재일교포 3세 손정의(58·일본명 손마사요시)는 일본 이동통신업체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이대호 선수가 활약하는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주다. 대물림이나 정경유착 재벌이 아닌 자수성가형 거부다. 애플의 아이폰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한 주인공이다. 포브스지 선정 세계 갑부 53위로 돈을 쓸 데 쓸 줄 아는 기업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손정의가 오늘(9월 19일) 투자의 대박을 터뜨렸다. 이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그는 이 회사 지분 34.4%를 가진 최대 주주로 이번 상장의 최대 수혜자다. 2000년 205억원 투자로 14년 만에 59조원을 거머쥐어 3000배 투자수익률을 올렸다. 알리바바 시가 총액은 172조원, 구글·페이스북에 이어 글로벌 인터넷기업 3위다.
2000년 마윈(51)이 창업한 알리바바는 중국 제조업체와 해외 바이어를 연결해주는 작은 온라인 사이트로 출발했다. 지금은 중국시장 80%를 장악하는 중국판 G마켓으로 불린다. 손정의는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청년 마윈을 만나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했다. 투자의 골든타임이 빛나는 혜안(慧眼)이다. 돌다리 두드리는 경영이 있듯, 빛의 속도로 승부를 걸 때도 있다.
중국 최고 부자로 등극한 마윈도 창업 후 5∼6년간 고전했다. 손정의는 기다림의 미학을 경영에 접목한 사람이다. 씨를 뿌리고 경작해 결실을 맺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직원들이 투자에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다만 투자를 머뭇거리다 시기를 놓치는 걸 싫어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하면 용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재일교포 손정의의 꿈…한·일 상생 비즈니스와 남·북 화해
생명의 골든타임, 투자의 골든타임 말고 ‘채용의 골든타임’도 있다. 아이러니하게 채용의 골든타임도 6분이다. 기업 채용 담당자가 입사지원서 한 통을 보는데 6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력서에서는 경력사항을, 자기소개서에는 지원동기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손정의가 6분 만에 중국 최고의 부자 마윈을 감별한 건 우연이 아니다. 투자의 싹수를 알아 본 거다.
한국인 혼이 살아있는 손정의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상생하는 비즈니스를 이루는 거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국가 차원의 전력망 수급에 관심이 많다. 부산과 구슈(九州)를 잇는 200km 해저 전력망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전력수급이 안정된 우리나라 전기를 부족한 일본에 공급하는 거다. 최근 방한해 한전 경영진을 만났다.
손정의가 한일 해저 전력망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아시아 수퍼그리드(전력망)와 관련이 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몽골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대단위 프로젝트의 하나로 한·일 전력망은 첫 단추다. 이 프로젝트에 북한이 참여하게 되면 동북아 평화는 물론 상생의 자원협력이 기대된다. 국가차원을 넘어선 대륙수준의 상생 비즈니스가 기대된다.
손정의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풍림화산(風林火山)으로 정의한다. 손자병법에 나와 있는 전략이다. 때론 바람처럼 빠르고, 숲처럼 고요하고, 불처럼 거세고, 산처럼 무겁게…중국 최고 부자 마윈을 탄생시킨 일본 최고 부자 손정의, 그에게 한국인 피가 흐르는 게 자랑스럽다. 그에게 남북한 긴장완화·평화통일과 관련해 일정 역할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