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임 임원들에 선물, 하나은행은 전임 행장이 후임에 물려줘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엘리자베스 여왕, 존 F. 케네디,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 수많은 명사들에게 사랑받은 만년필. 몽블랑은 우리에게 IMF 구제금융 당시 합의문 서명에 사용된 펜으로 유명하다. 1992년부터는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운영하며 세계의 문화 후원자들을 치하하고 있다. 독일 장인정신이 만든 100년 역사의 명품 필기구 브랜드 몽블랑이 걸어온 화려한 길을 되돌아봤다.』
몽블랑(Mont Blanc)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위치한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이다. 사시사철 만년설에 덮여있어 ‘흰 눈이 덮인 산(White Mountain)’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이름을 갖고 있다. 한편, 몽블랑은 독일이 만드는 세계 최고의 명품 만년필 브랜드의 이름이다.
문필가들에게 특히 사랑받아온 남다른 명품 브랜드 몽블랑의 역사는 190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은행가 알프레드 네헤미아스와 베를린의 엔지니어 아우구스트 에버스타인 그리고 문구상인 클라우스-요하네스 포스가 새로운 만년필 생산을 위해 힘을 합쳐 세운 공장에서 시작됐다.
1909년 드디어 뛰어난 품질의 만년필 ‘루즈앤느와(Rouge et Noir)’가 탄생했다.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의 유명한 소설 ‘적과 흑’에서 영감을 받은 이 만년필 이름은 브랜드가 초창기부터 지녔던 문화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얼룩을 만들지 않는 만년필’로 광고된 몽블랑 최초의 만년필은 매우 성공적으로 판매됐다. 독특한 블랙 에보나이트 바디와 레드컬러의 캡으로 제작되어 ‘빨간모자(Little Red Riding Hood)’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창립 초기의 회사명은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Simplo Fillerpen Company)’였고 ‘몽블랑’은 브랜드 명칭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인 몽블랑은 스스로가 이뤄낸 기술적 성취와 유럽 장인정신의 절정을 상징했다. 비슷한 시기 미래의 브랜드 엠블렘으로 이어지게 될 화이트컬러의 캡이 몽블랑 만년필에 추가됐다.
1913년 회사는 ‘몽블랑 심플로(Montblanc Simplo GmbH)’로 이름을 변경하고,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로고를 만들었다. 만년설로 덮여있는 몽블랑 산의 여섯 개 봉우리를 상징하는 ‘6개의 모서리를 지닌 화이트스타’였다. 새로운 로고는 순식간에 독일 전역과 유럽 전역에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1919년 펜과 잉크, 종이와 샤프펜슬 등의 오직 몽블랑 제품만 판매하는 첫 번째 부티크 매장이 독일 함부르크에 오픈했다. 이어서 독일 전역의 주요 도시들 그리고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에까지 매장이 늘어갔다.
이 기간 동안 몽블랑의 광고부서는 미국에서 유행하는 획기적인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채택했다. 거대한 규모의 몽블랑 만년필을 차에 싣고 다니기도 하고, 항공기의 한쪽 편에 몽블랑 회사명을 그려 브랜드를 알렸다. 1920년대 찍힌 파리의 사진에는 건물 정면 전체에 몽블랑 광고가 담겨있기도 하다.
유럽 최고봉 ‘몽블랑’ 브랜드·회사명으로 사용
몽블랑이 진정한 명성을 알리게 된 것은 1924년 ‘몽블랑 마이스터스튁(Meisterstück, 걸작)’ 만년필을 출시하면서부터였다. ‘걸작’이라는 뜻을 지닌 마이스터스튁은 출시했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오늘날까지도 변치 않고 생산되고 있다.
이 만년필은 블랙 고급 레진에 골드 플레이트 소재의 3링으로 장식되었으며, 1929년부터는 골드로 제작된 펜촉에 유럽 최고봉인 몽블랑 산의 높이 ‘4810’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마이스터스튁 컬렉션이 점차 확대되면서 ‘149’라는 숫자는 특유의 닙(nib, 펜촉) 사이즈를 지닌 본래의 만년필을 의미하게 되었다.
1935년 몽블랑은 펜파우치, 노트북, 필기구 케이스와 같은 고급 스몰레더 제품들을 제작하기 위해 그 당시 가죽장인 정신으로 유명한 마을 오펜바흐 근처에 워크샵을 세웠다. 초기단계에서부터 몽블랑은 필기구와 완벽하게 짝을 이루는 액세서리를 가죽으로 제작할 수 있는 고도로 숙련된 최고의 장인들을 찾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오펜바흐 가죽제품 워크샵과 몽블랑 함부르크 공장은 파괴되었지만, 전후 몽블랑 마이스터스튁이 여러 유명인사와 정치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확고히 한 덕분에 몽블랑은 회복될 수 있었다. 현재 가죽제품은 지난 2006년 설립된 몽블랑 펠레테리아 가죽공방에서 제작된다.
1980년대에 전세계 명품시장이 활성화되자 1983년 고급메탈을 사용한 첫 번째 에디션 ‘마이스터스튁 솔리테어(Meisterstück Solitaire)’ 컬렉션을 출시했다. 솔리드 골드로 제작된 마이스터스튁 솔리테어 149 만년필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만년필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마이스터스튁 149 만년필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중요한 여러 문서에 서명하는데 사용되었으며,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1990년 10월 3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와 동독의 로타어 드 메지에르 총리가 통일조약에 서명할 때 사용된 것을 비롯해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외에 서독의 슈미트 전수상,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스페인의 소피아 여왕 등이 열렬한 애호가이고,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각국의 유명인사들이 몽블랑을 사용했다.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가인 월스트리트에서도 ‘성공’이라는 의미를 담은 몽블랑 만년필이 즐겨 사용되고 있다.
걸작 ‘마이스터스튁’으로 명성 확고해져
1997년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임창열 재정경제원 장관이 IMF와의 합의문에 서명할 때 사용한 펜도 몽블랑이었다.
▲몽블랑 가죽제품 ‘익스트림 컬렉션 패스포트’
이외에 삼성그룹의 故 이병철 회장이 몽블랑 애호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건희 회장 또한 몽블랑을 즐겨 사용하고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삼성그룹 윤종용 부회장은 당시 신임 임원 100명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한 바 있다. 이는 몽블랑이 상징하는 성공과 신뢰의 이미지 그리고 기록의 중요성을 전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하나은행에는 전임 행장이 신임 행장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다.
몽블랑은 1997년 스위스 주라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한 르로클(Le Locle)에 브랜드의 워치메이킹 워크샵인 ‘몽블랑 몽트르’를 설립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첫 번째 걸작품은 ‘마이스터스튁 워치 컬렉션’이었다. 2008년 뛰어난 수작업 무브먼트로 유명한 빌르레의 전통적인 아뜰리에 미네르바(Minerva)를 인수하며 르로클 공장은 더욱 성장했다.
필기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브랜드로서 몽블랑은 ‘시간의 기록(Writing Time)’에 큰 가치를 두고 크로노그래프 시계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으며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그 결과 지난 2008년 처음으로 자체 기술력으로 무브먼트 개발에 성공, 크로노그래프를 최초로 발명한 니콜라스 뤼섹의 이름을 딴 ‘뤼섹 컬렉션’을 발표했다.
▲몽블랑을 사랑한 정치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현재 르로클 공장에서는 몽블랑의 ‘스타 니콜라스 뤼섹 컬렉션’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계들이 생산되고 있으며, 빌르레 공장에서는 하이엔드 에디션이 생산된다.
1986년 몽블랑은 유명한 광고 슬로건 ‘몽블랑, 글쓰기의 예술(Montblanc, The Art of Writing)’을 발표하며 브랜드의 문화 관련성을 확실히 강조했다. 이미 1930년대부터 몽블랑은 문학대회로 이름을 알렸으며, 문학, 발레, 음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국제적으로 후원해왔다.
1990년대에 걸쳐 문화세계에서 펼친 혁신적인 활동들은 ‘럭셔리 메종(luxury maison)’으로서의 몽블랑의 부상과 함께 이뤄졌다. 특히 1992년 제정된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Montblanc de la Culture Arts Patronage Award)’은 전세계 각국의 훌륭한 문화예술분야 후원자를 기리기 위해 시상하는 전세계 유일의 국제적인 상이 되었다.
올해로 23회째를 맞이한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은 한국을 비롯한 독일, 러시아, 멕시코, 미국,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프랑스 등 전세계 11개국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다.
순수 예술가들로 구성된 국제 심사위원단의 투표에 의해 각 국가별 수상자가 선정되고, 시상식은 각 국가 주요 도시에서 개최된다. 수상자는 문화예술 후원금으로 사용될 1만5000유로의 상금과 특별히 제작된 ‘문화예술 후원자상 펜’을 부상으로 수여받는다.
올해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자는 한국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 겸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중국의 상하이 롱 뮤지엄 설립자 리 취안&왕 웨이, 프랑스의 로젠블룸 컬렉션 갤러리 건립자 스티브 & 키아라 로젠블룸, 독일의 예술작품 수집가 하이너와 울라 피츠, 이탈리아의 모니니재단 운영자 마리아 플로라 모니니, 일본의 지휘자 겸 음악교육가 세이지 오자와, 멕시코의 모렐리아 국제영화제 주최자 알레한드로 라미레즈 마가나, 러시아의 에르미타슈 기부펀드 창설자 미하일 표트로프스키, 스페인의 비영리문화예술재단 운영자 헬가 드 알비어, 영국의 박물관 기부금 조성자 폴 루독, 미국의 트라이베카 국제영화제 설립멤버 제인 로젠탈 등이다.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등 문화 후원 활동 전개
특히 박삼구 회장은 2004년 한국 최초로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수상한 형 故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에 이어 10년만에 동생인 자신이 같은 상을 수상함으로써,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최초로 한 가족에서 2명이 수상자가 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편, 이 시상식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는 ‘문화예술 후원자상 펜(Limited Edition Patron of Art pen)’은 뛰어난 장인정신을 입증하는 몽블랑 최초의 에디션이자, 전세계의 몽블랑 컬렉터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에디션이다.
역사 속 위대한 후원자들을 기리는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펜’의 첫 번째 에디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예술인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로렌조 드 메디치(Lorenzo de Medici)’ 에디션이었다.
이후 역대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펜의 모티브가 된 위대한 문화예술 후원자로는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근간을 형성하는 등 러시아 제국을 유럽의 문화적 중심지로 변화시킨 러시아의 캐서린 여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모나리자’와 같은 훌륭한 예술작품을 수집하여 루브르 박물관의 토대를 세운 프랑소와 1세, 시스티나 성당의 명화 ‘천지창조’와 성베드로 대성당 재건 등의 업적으로 로마를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만든 교황 율리우스 2세,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같은 문학가, 음악가들을 지원하며 영국의 문예부흥기를 이끌어낸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해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기부문화를 꽃피운 앤드류 카네기 등이 있다.
올해 23번째로 선보인 2014년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펜은 일생동안 예술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음악계에 혁신을 일으킨 헨리 E. 스타인웨이에게 헌정됐다. 4810과 888 2개의 에디션으로 출시되는 이 필기구의 디자인은 헨리 E. 스타인웨이의 놀라운 피아노 혁신과 영향력있는 예술후원 업적을 기리며 제작되었다. 헨리 E. 스타인웨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음악가들의 활동을 장려하고 있는 ‘스타인웨이 아티스트 프로그램(Steinway Artists’ Programme)’을 통해 많은 아티스트들을 후원했다.
(CNB저널 = 정의식 기자)
정의식 기자 es.jung@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