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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파워열전 - 김영순 극단 ‘나는세상’ 대표]“멀어지는 가족관계, 치유와 힐링 됐으면”

찜질방 배경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 통해 사람들 향기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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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07호(창간기념호) 김금영 기자⁄ 2014.12.04 08:42:53

▲김영순 연출이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에 등장하는 찜질방 무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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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세상에 저런 며느리가!”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가 열리고 있는 정동 세실극장이 들썩였다. 자신의 아이가 싱크대에 턱을 부딪쳐 서너 바늘 꿰매자 시어머니 뺨을 때리는 며느리의 모습이 시연되고 있었다.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 장면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여보 나도 할말있어’엔 찜질방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집에서 홀로 강아지를 돌보는 쓸쓸한 60대 가장 ‘영호’,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구박 받아 서러운 40대 샐러리맨 ‘종수’, 자식농사 잘 짓고 노후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지만 속사정을 숨기고 있는 ‘말복’이 있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손자를 봐야 하는 갱년기 여성 ‘영자’, 사랑받고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아픔을 감추고 있는 ‘춘자’, 사춘기 아들과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오목’ 등이 등장한다. 극본을 쓴 김영순 연출이 3개월 동안 직접 서울과 경기 지역의 찜질방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에게 들은 인생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려졌다.』


왜 찜질방을 배경으로 선택했는가? 이에 대해 김 연출은 “각자의 삶이 평범한 것 같은데, 잘 살펴보면 모두 드라마와 소설 같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며 “옛날에는 빨래터나 우물가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서로 나눴다면 이젠 그 장소가 찜질방인 것 같다. 내 어머니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찜질방에 가 다른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해소하더라. 또 이건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 세실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의 한 장면. 사진 = 김금영 기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소통의 부재’다. 가족에게는 정작 말을 하지 못하고 처음 만난 그에게 속에 담겨 있던 말을 하소연하듯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등 가장 가까워야할 가족이 오히려 멀게 느껴지는 ‘불편한 대상’인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현장 리서치를 할 때 ‘우린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부부가 단 한명도 없었어요. 그리고 시댁 또는 친정과의 갈등, 자식과의 불화를 겪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가장 사랑해야 할 존재가 바로 가족인데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멀어진 가족 사이가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작품을 더 쓰고 싶어졌어요.”

학창시절 김 연출은 공부보다는 가수 조용필을 따라다니고 순정만화를 읽기 좋아하는 소녀였다. 자유분방하게 자란 그는 고등학교 때 연극반으로 활동하다가 연극판에 뛰어들어 나이 서른에 미국으로 늦은 유학을 갔다. 미국 브리검영대학교에서 연극 연출을, 뉴욕대학교에서 공연학을 전공했다.

해외에서 수많은 연극을 봤는데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엄마들의 수다’라는 작품을 만났다. 물론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각 나라마다 문화와 사회적 특징이 달라 100%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30대 초중반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단순한 이야기였는데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했다.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는 찜질방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자 살아온 인생에 대해 털어놓는 공연이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조용필에 빠진 소녀, 이젠 공감의 연극에 매료

“사람 사는 이야기는 세계 어디서나 같구나, 그야말로 만국공통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을 보고 ‘여보 나도 할말있어’에 대한 첫 아이디어를 얻었죠. 전 항상 어떻게 하면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일상 이야기로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문화예술이 존재하는 목적은 공감과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신념을 바탕으로 극을 만들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보 나도 할말있어’가 또 눈길을 끄는 점은 ‘민낯 연극’이라는 것이다. 배우들은 조금의 메이크업도 하지 않고 완전 민낯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한다. 여배우들의 경우 민감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찜질방을 배경으로 어색한 풀메이크업을 하고 등장하는 예쁜 여배우의 모습은 공감보다는 이질감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객들이 배우들을 더 가깝게 느끼고 마치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공감대를 주기 위해 설득했다.

김 연출에게도 연출가이자 극작가로서의 자신 뿐 아니라 새롭게 발굴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있다. 바로 극단 ‘나는 세상’의 대표이다. ‘여보 나도 할말있어’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만든 신생 극단인데, 아직 창단식도 치루지 못했을 정도로 규모가 미미하지만 앞으로 알차게 꾸려나갈 예정이다. ‘나는 세상’이라는 이름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로 세상을 향해 날아가고 싶다는 뜻이 담겼다.

“연극은 배우도 중요하지만 관객 없이는 불가능한 존재예요. 전 관객들 각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만들고 싶어요. 매 장면마다 자기 이야기라 생각하며 공감을 하고, 또 그러면서 공연을 보는 순간만큼이라도 치유 받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겠습니다.”

김 연출의 바람과 포부가 담긴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는 정동 세실극장에서 12월 31일까지 공연된다. 공연 문의는 02-766-9003(아츠컴퍼니)

(CNB저널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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