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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사람들 ⑩ 도봉서 도봉1파출소 박종규 경위]10년전 약속한 자장면이 경찰서로 온 날

“교통사고 뒤 봉사하는 경찰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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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1호 안창현 기자⁄ 2014.12.31 09:13:34

▲박종규 경위. 사진 = 안창현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자장면 사겠다는 약속 지키러 왔어요!” 10여 년 전 농담처럼 한 약속을 잊지 않고 한 청년이 경찰서를 방문해 화제다. 홀어머니 밑에서 말썽만 피우던 초등학교 3학년 문제아와 한 경찰관의 이야기가 연말연시 매서운 날씨에 훈훈한 온기를 불러왔다. CNB저널 이번호에서는 이 따뜻한 미담의 주인공인 도봉경찰서 도봉1파출소의 박종규(56) 경위를 만나 10여 년 전의 사연을 들어봤다.

2004년 어느 날 노원경찰서에서 근무하던 박종규 당시 경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아주머니가 말하길 “내 아들이 손버릇이 좋지 않아 남의 물건을 상습적으로 훔친다. 또한 혼내면 반성하기는커녕 집을 나가서 학교도 잘 안 나간다”고 하소연했다.

박 경위는 당시 우연히 받게 된 이 전화에 마음이 쓰였다. 이혼 후 혼자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이 아주머니는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은 상태. 그는 박 경위에게 자신의 아들을 경찰서에서 데려가겠다면서 울먹였다.

몸도 불편한 홀어머니가 아들 문제로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파출소에 전화를 했을까 박 경위는 많이 안타까웠다. 그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문제 아이를 만나기로 했다.

“비번인 날 만나기로 하고 집을 방문했는데 아이가 집에 없었다. 어머니에게 아이가 자주 가는 곳을 물어 인근을 두 바퀴 정도 돌아서야 겨우 아이를 찾았다.”

어렵게 아이를 만난 박 경위는 그 뒤 7개월 동안을 거의 매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아이를 변화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박 경위는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씩 아이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그 아이에 대해 알려고 HTP라는 심리검사까지 했다. 그림을 통해 심리를 알아보는 방법인데, 내가 그쪽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박 경위는 말했다. 처음에 아이는 불만으로 가득해 박 경위에게 “아저씨가 뭔데 간섭이냐!”며 반항했지만, 박 경위의 노력은 그런 아이의 마음을 녹였다.

“나도 그때 ‘내가 왜 이런 일을 맡아서 했지?’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두면 ‘이 아이가 커서 어떻게 될까?’, ‘어머니는 또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게 될까?’ 걱정됐다. 그 아이도 처음부터 문제아인 것은 아니지 않겠나. 나름대로 외롭고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다가가니 아이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박 경위는 어린이날이나 추석 명절 때면 선물을 사들고 아이를 찾았고, 함께 식사하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3년간 계속 인연을 맺었다. 아이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도 큰 기쁨이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지냈고, 박 경위는 그 뒤 더 이상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문제 아이가 10년이 지나 얼마 전 약속을 지키지 위해 박 경위를 찾아왔다.

박 경위는 “나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아이와 친해졌을 때 내가 농담으로 한번 ‘네가 첫 월급을 타면 아저씨한테 자장면 사줄 수 있겠느냐?’고 했던 적이 있다. 이걸 기억하고 그 아이가 경찰서에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어머니와 함께 도봉1파출소를 찾은 아이는 이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현재 군 복무 중이었고, 군대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박 경위에게 자장면을 사겠다고 온 것이다.

▲10여 년 전 “첫 월급으로 자장면을 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5일 경찰서를 찾은 청년과 박 경위. 사진 = 도봉경찰서


덤으로 사는 인생, 봉사하는 기쁨으로

박 경위는 근무 중이라 함께 식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30여 분 동안 아이가 사온 귤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 아이가 가고 한참 동안 허전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평소 피우지 않던 담배를 동료에게 빌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하고 나도 놀랐고, 정말 마음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경찰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쏟아 이렇게 한 아이를 정성껏 돌봐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딱한 사연이라지만 우연히 받은 전화 한 통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실 1999년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야말로 죽다 살아난 큰 사고였다. 그 사고 뒤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경찰로서 사건사고를 처리하고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 외에 무언가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박 경위는 그 사고 이후 자신의 삶이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꾸준히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이 무언가 도울 일이 없을까 찾았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당한 교통사고가 아이들에겐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교통안전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박 경위는 다양한 봉사 활동을 했다. 우연히 파출소에 길을 잃은 치매 노인의 사진을 찍으면서 ‘장수사진’이란 이름으로 1000여 회가 넘게 영정사진 찍는 활동을 해왔고, 지인들과 희망장학회를 설립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30년 전 원예업을 하다 우연히 경찰관 모집 공고를 보고 경찰이 됐다는 박 경위는 “처음에는 우연이었지만, 지금 경찰은 내게 천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촛불과 같은 사람이 돼 다른 이들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작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그는 “잊지 않고 찾아온 그 아이를 생각하면 내가 잘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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