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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치매 노인 변신 이재은]“제가 토해내는 숨비소리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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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7호 김금영 기자⁄ 2015.02.12 09:09:47

▲연극 ‘숨비소리’ 무대에서 열연 중인 이재은. 사진 = 연합뉴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1986년 드라마 ‘토지’에서 서희의 아역으로 등장한 다섯 살 꼬마 여자아이는 1999년 파격적인 19금 영화 ‘노랑머리’에서 성인 연기자로 거듭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젠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3월 1일까지 열리는 연극 ‘숨비소리’에서 어머니 역할로 변신해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 이재은이다.

드라마, 영화에서 주로 활동했던 그녀는 2013년 모노드라마 ‘첼로의 여자’를 시작으로 ‘선녀씨 이야기’, ‘각시품바’ 그리고 ‘숨비소리’까지 연극 무대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런데 맡아온 역할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 특히 화제가 됐던 건 ‘각시품바’. ‘품바’는 주로 남자배우들이 맡아온 역할이었는데 그녀가 각시품바를 맡으며 최초로 여자거지를 연기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이번엔 살날이 많이 남은 착한 아들과, 갈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치매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리는 연극 ‘숨비소리’다. 극 중 흰 머리에 얼굴엔 검버섯이 가득하고, 공원에 배변하기 일쑤인 치매 노인 역을 맡았다. 출연 소식이 알려지자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이재은은 “파격적이지 않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TV에서 80살 노인까지 연기해봤지만 연극에서 아무런 장치 없이 보여주는 백발노인 연기는 처음이네요. 그래서 긴장도 많이 되지만 화제가 될 만큼 파격적 역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인구 고령화 시대에 사랑하는 가족이 치매에 걸려 아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죠.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역할이에요. 저 또한 외할머니께서 어린 시절 치매로 돌아가셨어요.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외할머니 생각도 많이 나더라고요.”

▲이재은(오른쪽)이 극 중 아들 역을 맡은 김왕근(왼쪽), 강아지 역을 맡은 안연주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사진제공 = SZ엔터테인먼트


고령화시대 치매가족에 위로 전하고 싶었다

치매 노인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이라면 어둡고 무겁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지만, 오히려 이재은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천진난만한 모습을 부각시켰다. 대표적인 특징이 뭐냐고 물으니 “귀여운 할머니”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 부분도 있고, 실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투영한 것도 있다.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힘없는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멋쟁이였어요. 항상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옷도 멋있게 입었죠. 그랬던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뒤 마치 아기 같아지고 까맣던 머리가 백발로 변해 가는데 그 모습이 어린 제겐 낯설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어둡고 아프게만 치매 노인을 연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면 오히려 인위적일 수 있고 관객들도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죠. 누구나 흔히 공감할 수 있는, 그래서 더 위로받을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목표예요.”

이재은이 짚은 것처럼 ‘숨비소리’의 목적은 아파하고 눈물만 쏟자는 게 아니다. 치매 걸린 어머니와 아들 이야기를 그리면서 치매에 고통 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늘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공연을 보고 어머니, 아버지에게 안부 전화 한 통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며 “험난한 세상에 지친 사람들의 상처받고 차가운 가슴에 조금이라도 위로와 감동을 전해주고 싶다.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본인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물이라지만, 역시 여배우가 얼굴에 검버섯 분장을 하고, 치마가 들려 올라가 속옷이 보이기 일쑤인 인물을 연기하는 건 역시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재은은 다시 아니란다. 그녀는 아예 이 연극 첫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 여기엔 무용가이자 이번 연극을 제작한 남편 이경수의 영향이 컸다. 남편은 이재은이 연극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다. 작업 과정에 대해 묻자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며 웃었다.

▲치매에 걸린 노인 역을 연습하는 이재은(앞). 사진제공 = SZ엔터테인먼트


“둘 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 공연 기회를 가진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값진 선물이에요. ‘숨비소리’ 또한 그랬죠. 남편과 대본 작업부터 기획까지 모두 머리를 맞댔어요. 싸우기도 정말 많이 싸워요(웃음). 아무래도 무대 경험이 더 많은 남편이 동선이나 사소한 몸짓 등 바라보는 관점이 있고, 배우로서 연기할 때 제가 생각하는 관점이 있죠. 서로 의견교류를 많이 해서 충돌할 때도 있지만, 결국엔 가장 좋은 방향을 끄집어내죠. 무대에 서는 저를 늘 바라봐주는 남편이 있어서 든든해요(웃음).”


배우 넘어 공연 연출 및 제작 관심 기울이며 제2인생

남편과 함께 머리를 맞대면서 이재은은 이제 공연 연출과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공연 제작에도 참여했지만 처음은 아니다. 2014년 7월, 5년간의 개발과정을 거쳐 만든 ‘스토리시어터’ 공동 제작자로도 남편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스토리시어터는 일반적으로 공연을 보려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데, 반대로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에게 직접 찾아가 종이 인형극을 보여주는 미니어처 공연물이다.

이재은은 ‘숨비소리’ 프레스콜에서도 “내 꿈은 남편, 마음 맞는 배우, 스태프와 함께 장르 파괴적인 새 문화 콘텐츠를 크든 작든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것”이라며 문화 콘텐츠 개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해외에 나가 문화 페스티벌을 본 적이 있는데, 진짜 무대장치도 별거 없고 특별한 요소도 없는데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감동이 무엇이고 어떻게 전해줄 수 있는지 현재도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에도 이런 감동을 주는 공연과 페스티벌이 열리면 정말 좋겠다고 느꼈죠. 각종 페스티벌이 많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전 국민이 함께 즐기는 자리는 없고, ‘그들만의 잔치’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워요.”

문화 콘텐츠 개발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재은은 ‘흥’이라고 말한다. 타국과 다르게 한국 사람들에겐 특유의 내재된 흥이 있는데, 그 흥과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시작이 될 것이란다. 그리고 그 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공연장이다. 그녀는 “해외 공연장에서는 객석과 배우가 확실히 분리돼 엄숙하게 공연을 관람하는 분위기가 많은데 한국 무대에서는 배우가 관객에게 편하게 말을 걸기도, 무대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관객 또한 어색하지 여기기보다 즐겁게 참여한다”며 “현재 한국인들은 힘든 현실에 경직돼 내재된 흥을 분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연극 ‘숨비소리’는 아들과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겪는 갈등과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 = 연합뉴스


그리고 그 흥과 끼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녀가 수차례 올랐던 공연은 모두 라이선스가 아닌 창작 공연이었고, 스토리시어터에서도 서양의 동화가 아닌 전래동화 ‘햇님달님’을 추천해 인형극을 꾸렸다.

“최근 ‘난타’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해 화제가 됐잖아요? 특히 난타 공연장엔 외국인 관객들이 많이 온다고 해요. 전 난타가 성공한 이유가 한국적인 맛을 살렸기 때문이라고 봐요. 우리 이야기를 담은 창작 작품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비슷한 콘텐츠 속에서 차별성을 가져 눈에 띌 수 있는 거죠. 창작이 어렵고 힘든 건 사실이에요. 돈도 많이 들어가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죠. 하지만 한국의 창작자들이 조금 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 창작 욕구를 우리 이야기를 하는 데 썼으면 좋겠어요. 저도 라이선스 작품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현재의 열정은 지나면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창작 작품을 고집하고 있죠.”

그녀는 “앞으로도 연기 뿐 아니라 창작 작업도 계속 참여할 생각”이라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공연 연출도 직접 맡아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이재은이 현재 하고 있는 연극 제목 ‘숨비소리’는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에 떠올라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를 뜻한다. 연극에서는 이 숨비소리가 치매에 걸린 노인과 그 아들이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마침내 털어놓는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런데 연극을 떠나 배우 이재은에게도 현재 이 시기가 창작 공연에 대한 애정, 새로운 문화 콘텐츠 개발에 대한 욕구를 마음껏 토해 놓는, 자신만의 숨비소리를 시작하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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