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㉑]웃기면서도 멋진 아테네 미남 근위병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0일차 (아테네)
유럽 문명의 동부 최전선 수호자 그리스
호텔이 자리한 오모니아 광장 부근은 시내 중심이지만 세계 각국 이민자들이 북적거리는 우중충한 곳이다. EU지역 불법 입국의 90%가 터키-그리스 육로 국경에서 일어나는 만큼 아테네는 불법 입국자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오모니아 광장과 신타그마 광장 사이에 위치한 국립역사박물관이다. 1453년 동로마제국 멸망 이후 수세기 동안 겪은 오스만 압제 역사에 관한 기록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고 기독교도로서 겪었던 핍박의 세월을 묘사했다. 오스만 통치가 그리스인들에게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에 퍼진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1830년 독립, 그리고 오스만제국을 상대로 싸운 1912년 발칸전쟁 승리로 마케도니아 일부 지역을 회복해 완전한 독립국이 되기까지의 기록도 전시돼 있다. 특히 오스만의 유럽 서진(西進)을 막은 1571년 레판토 해전이 강조돼 있다. 독립을 얻기까지 그리스어와 그리스 정교가 민족통합의 매개체가 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독립전쟁을 비롯해 펠로폰네서스 전쟁, 나바리노 해전, 1차 대전, 2차 대전과 나치 점령(1941), 레지스탕스 운동 등의 기록도 있으니 그리스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초장신 미남 위장대 근위병들이 전통 복장을 입고 교대식을 하고 있다.
한국전 참전국 그리스
아테네는 그리스 인구의 40%인 400만이 사는 대도시지만 도심은 비교적 작아서 산티그마 광장을 중심으로 걷기에 충분한 거리에 볼거리가 다 모여 있다. 광장 앞 국회의사당에 가니 마침 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견학 온 학생들이 짓궂게 굴어도 꿈쩍 않는다. 초장신 미남 의장대 근위병들의 전통 복장이 우습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위병 교대식이 열리는 국회 앞 광장에는 무명용사의 묘가 있고, 그 옆에는 그리스 군이 참전한 해외 전쟁이 지도 위에 표기돼 있는데 그리스 문자로 ‘KOPEA’라는 표기가 눈에 번쩍 띈다. 맞다. 그리스는 전투병을 보낸 참전 16개국 중 하나 아닌가? 총인원 5500명이 참전해서 186명이 전사했고 610명이 부상을 당했다.
기독교·비잔틴 박물관
이어서 인근 비잔틴·기독교 박물관으로 옮겼다. 비잔틴 제국의 개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로마제국이 수도를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으로 옮긴 330년부터 오스만에 의해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지가 비잔틴 시대다. 비잔틴 문화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체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동로마제국 전역에 퍼진 기독교와 헬레니즘이 결합된 문화를 말한다. 박물관에는 기독교가 당시 동로마제국 시민들의 일상과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기록이 많다. 고대 그리스와 파라오 양식이 결합된 이집트 기독교인 콥틱 양식도 소개돼 있다.
▲아테네 국립역사박물관 모습. 1453년 동로마제국 멸망 이후 수세기 동안 겪은 오스만 압제 역사에 관한 기록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7∼8세기 성전(聖戰)을 외치며 침입한 아랍 세력으로 인한 기독교 수난시대에 이어 14∼15세기 동로마제국 멸망 직전, 즉 동방 세력의 도전이 가장 드셌던 시기에 오히려 가장 찬란하게 꽃핀 비잔틴 문화가 소개돼 있다. 그리스가 기독교 전파와 보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럽 최전방 동부전선에서 동방 세력과 이슬람 세력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유럽 세계 기독교 문명의 정체성을 지킨 그리스의 공로가 커 보인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그 고마움을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함으로써 표시했을 것이다.
그리스 이민족 격퇴사
비잔틴·기독교 박물관 옆에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BC 490년 마라톤 전쟁과 살라미스 해전 등 페르시아 격퇴사가 전시돼 있다. 알렉산더 대왕 관련 전시물, 아랍 세력의 이베리아반도 진출과 프랑스 남부 투르 프와티에 전투(792), 그리고 한국전 참전까지 기록해 놓았다. 당시 그리스에서 한국까지 항공기로 60시간, 배는 30일 걸렸다고 기록돼 있다.
토론에 열중인 그리스인
지하철로 케라미코스로 이동했다. 노천카페에서 젊은이들이 주말을 즐긴다. 고대 아테네 귀족 묘지로 알려진 케라미코스에는 아직도 발굴 중인 무덤들이 많다. 이어서 아크로폴리스로 방향을 잡았다. 아크로폴리스 올라가는 길은 꼭 우리나라 어느 동네 뒷산 올라가는 것 같은 정겨운 거리다.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아테네는 유럽에서는 변방이지만 이곳 젊은이들은 유쾌하게 주말 오후를 즐기며 그들의 선조가 그랬듯이 토론에 열중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인 로마의 거리가 눈길을 끈다.
높은 도시 아크로폴리스
아크로폴리스는 이름 그대로 ‘높은 도시’다. 페르시아 전쟁 승리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을 맺고 그 중심축으로 여기에 신전을 지은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나처럼 힘들여 올라왔다가 허탕 치는 사람들이 많다. 니케아 신전, 에렉티온 신전, 파르테논 신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니 아쉽다. BC 400년에 건축됐으니 2500년 됐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아크로폴리스 입구 작은 바위 동산에서는 아래쪽으로 아고라 터가 잘 보인다. 고대인들이 사회와 정치를 논하던 아고라 광장이 온전히 보존돼 있다. 1세기 사도 바울이 기독교를 전한 것도 여기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이름을 딴 그리스정교 교회도 보인다. 신전과 스토아도 근처에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학문을 설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거대한 제우스 신전
아크로폴리스 지하철역 쪽으로 나오니 제우스 신전이 있다. 거대한 구조물이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멋있다. 처음에는 기둥이 104개 있었으나 지금은 16개가 버티고 있다. 제우스 신전에서 큰 길 건너편에는 멜리나 메르꾸리의 흉상이 소담하게 서있다. 1999년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배우 출신으로 그리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그녀를 ‘남자의 심장을 가진 여자’라고 이곳 사람들은 부른다.
내일 오전 로마로 가야 하므로 호텔로 돌아가 쉴까 생각도 했으나 오늘 하루 종일 아테네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건너편 산 정상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없다. 리카비토스 언덕은 높이 272m로써 아테네를 대표하는 두 개의 언덕 중 하나다. 먼저 언덕을 한참 걸어 올라간 후 그곳부터 푸니쿨라를 타고 도착한 언덕 정상에는 성 조지 교회가 아담한 자태를 드러낸다. 멀리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조명이 들어오니 고대 도시의 밤 분위기가 그윽하다.
11일차 (아테네 → 로마)
신타그마 광장에서 15분 간격으로 떠나는 공항행 X95 버스는 요금이 메트로의 절반이다(3.2유로, 한화 5000원). 방문한 도시의 지리와 시스템, 풍경에 익숙할 즈음이면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 하는 각박한 스케줄이 아쉽다. 공항 가는 고속도로 양편으로 삼성과 LG 광고판이 나란히 서 있고 아테네 공항은 LG 모니터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작은 나라 한국의 존재가 돋보인다.
한국 여권의 위력
아테네 공항 로마행 탑승구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직원에게 제재를 당한다. 이탈리아 비자가 없기 때문이다. 참 서러울 것이다. 예전 우리 모습이 그랬을 것 같다. 이지젯 항공기는 에게해와 아드리아해를 연달아 건너 지중해에 접어들더니 한 시간 45분 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지중해 사람들은 항공기가 착륙하면 박수를 친다. 카이로에서 아테네행 올림픽 항공기가 그랬고 오늘 또 그랬다. EU 쉥겐 지역 내 국가 간 여행은 입국 심사가 없어서 편하기 이를 데 없다. 이탈리아는 인구 6000만이고 로마는 300만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1.5배, 남한의 4배다.
▲‘높은 도시’ 아크로폴리스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모든 길이 통하는 곳’ 로마에 입성
‘모든 길이 통하는 곳’ 로마에 드디어 입성했다. 로마 공항은 왁자지껄하다.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기 좋아하는 남유럽 사람들의 특성을 엿본다. 로마 공항은 전 세계 모든 지역의 항공기가 발착한다. 세계의 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터미널을 나오니 대형 LG 전광판이 뉴스와 정보를 쏟아낸다. 레오나르도 공항특급 열차(14유로, 한화 2만1000원)로 테르미니역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테르미니역 부근은 이민자 거리다. 미국 뉴욕만큼 인종이 다양한 것 같다. 외환 송금 서비스 업체인 웨스턴 유니온과 인터넷 국제전화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역에서 몇 발짝 거리에 있는 호텔은 위치가 매우 편리해서 모든 부족한 점들을 덮어주고도 남는다. 신속히 여장을 풀고 로마 탐방에 나섰다. 일단 바티칸 방향으로 간다. 테르미니 메트로역에서 A라인을 타고 오타비아노 에스 피에트로역에 내려 10분 걸으니 성베드로 광장 입구다. 가는 길에 서 있는 우아한 건물들이 로마에 첫 발을 디딘 여행자를 압도한다.
세계인들이 모인 성베드로 광장
바티칸 시국(市國) 바티칸 광장(성베드로 광장)에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또한 성베드로 성당을 향해 오른쪽에는 사도 바울, 왼쪽에는 성베드로 동상이 서 있다. 광장에는 아기예수 탄생을 재연하는 실물 인형들이 전시돼 있는데 해마다 전시 내용을 바꾼다고 한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TV 뉴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성베드로 광장에 들어선 감회가 새롭다.
세계 각국 관광객들이 모두 있다. 로마에 온 순간, 그리고 성베드로 광장에 들어선 순간 왜 로마가 세계적인 관광지인지 깨닫게 된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는 말이 맞다. 성베드로 성당에 입장하니 마침 미사가 열리고 있다. 이 장엄함과 화려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성당 내부에는 역대 교황들 중 일부의 동상과 무덤이 있다.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는 초대 교황 성베드로부터 2005년 별세한 요한바오로 2세까지 역대 교황들의 이름이 빼곡히 쓰여 있다.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제우스 신전.
아기자기한 로마의 거리
이어서 찾아간 곳은 산탄젤로 성채, 즉 천사의 성이다. AD30년 하드리안 황제 통치 시절 그의 묘로 만들어졌다. 꼭대기에 있는 탑이 11세기에 추가됐으니 얼마나 오랜 건축물인지 알 수 있다. 산탄젤로, 즉 ‘천사의 성’ 옆에는 빗토리아 에마누엘 2세 다리가 테베레강에 걸려 있다. 강을 따라서 적당한 간격으로 다리가 여럿 놓여 있는데 다리 모습이 모두 다르다. 강을 따라 걷다 보니 포폴로 광장이 나온다. 귀여운 쌍둥이 교회가 있고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오벨리스크와 오르간 분수가 있다.
관광객 티를 내더라도 어쩔 수 없이 로마에서는 아예 카메라를 겉에다 꺼내 놓고 다녀야 할 것 같다.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지하철 출구를 나올 때마다 신기하고 놀랍다. 예사롭지 않은 건축물과 거리 풍경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사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패션 디자인 감각이 우수함은 당연할 것이다. 광장, 성당, 오벨리스크, 분수…. 이런 것들이 로마의 상징 아닌가? 어디선가 성당 종소리가 들려와 고도(古都)의 밤 정취를 북돋운다. 케밥으로 저녁을 해결한 뒤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내일은 새벽 열차를 타고 나폴리로 가야 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