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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㉒]로마의 원형 ‘포로 로마노’에서 영원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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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8-41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2.24 09:02:50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2일차 (로마 → 살레르노 → 아말피·소렌토 → 나폴리 → 로마)

넓은 평야와 험준한 산맥 지난 살레르노행 새벽 열차

로마 테르미니역을 새벽 6시 35분 정시에 떠난 열차는 넓은 평야를 달리더니 나폴리를 지나면서 험준한 아펜니노 산악 지역으로 들어간다. 열차 옆 자리에 앉은 영국 남성 스티븐과 대화를 나눴다. 영국 경제의 어려움, 살인적인 물가와 각박한 시민들의 삶, 이런 것들이 주제였다. 주말을 맞이해 런던에서 폼페이 유적지를 보러 왔다고 한다. 열차는 나폴리를 거쳐 로마 출발 세시간만에 살레르노에 도착했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산중에 둘러싸여서 그런지 춥다. 살레르노 역전에서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떠나는 아말피행 버스에 오른다(요금 3.6유로). 왼쪽으로 지중해와 숨바꼭질하면서 버스는 험준한 바위산 중턱 절벽길을 올라간다. 살레르노항에는 컨테이너 선박이 가득하고 시칠리아행 가리말디 페리도 보인다.

아말피 해안 도로에서 만난 예쁜 마을들

아래로 천 길 낭떠러지의 좁은 도로이지만 버스는 마주 오는 차들과 절묘하게 교행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가끔 한국 동해안이나 제주도 해안 같은 풍광도 나타나지만 절벽의 높이가 그것의 수십 배 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유산 아닌가! 거친 해안 절벽에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마을을 꾸몄을까 감탄하기를 여러 번, 버스는 23km 구간을 1시간에 주파해 아말피에 도착했다. 진눈깨비 날리던 살레르노와는 달리 여기는 날씨가 따뜻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작은 어촌 마을 거리 곳곳의 풍경은 형언하기 어렵도록 정겹다. 아말피 저자 거리에는 현지인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모두 서로 아는 듯 만나는 사람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하룻밤, 아니 며칠 밤이라도 묵으며 이들이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말피 해변과 도심 산책을 마치니 마침 소렌토행 SITA 버스가 출발한다. 거리는 35km, 요금은 7.5유로다.

▲포로 로마노 전경. 다양한 유적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풍광명미한 소렌토 해안

한 구비 돌고 나면 이번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궁금하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나폴리 해안길을 그저 버스에 앉아서 감상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살레르노-아말피 구간은 마을과 집들이 아름다웠다면 아말피-소렌토 구간은 자연 풍광이 아름답다. 새벽 일찍 길을 나서서 피곤했지만 잠시도 눈 붙일 겨를이 없다. 여름에는 아말피, 소렌토 어느 항구에서든 카프리섬으로 배가 다니지만 겨울에는 나폴리에서만 배가 있다. 시골버스지만 버스는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움직인다. 해안 절벽 조망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아말피 왕국의 요새가 박혀 있다. 아말피 왕국은 한때 제노바, 베네치아와 함께 이름을 떨친 해양 도시국가였다.

드디어 소렌토 베수비오 순환전철 역전에 도착했다. 각기 다른 종류의 피자 세 조각을 시켜 맥주와 함께 먹는다. 소렌토 항구와 멀리 건너 편 카프리섬을 바라보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이태리 남부 여느 지방 소도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소렌토가 정겹다. 역에서 베수비오 전철을 타고 나폴리로 나간다. 낡은 전차지만 신나게 달려 한 시간 10분 만에 나폴리에 도착했다. 이번 여정에 들르지는 못했으나 폼페이 유적지가 소렌토에서 나폴리 가는 도중에 있다. AD 79년의 비극이 생각난다.

나폴리가 과연 미항인가?

‘나폴리를 보기 전에는 죽지 말라’는 이태리 격언의 뜻을 절반쯤 새기며 나폴리 도보 관광에 나섰다. 세계 미디어들이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라지만 거리는 지저분하고 바닷바람에 휴지 조각들이 날린다. 우선 나폴리 항구를 찾아갔다. 신항구에서는 소렌토, 시칠리아, 심지어는 북아프리카 튀니지까지 배가 다니고 구항구에서는 도서 지역 작은 섬들로 배들이 드나든다. 또한 사르데냐, 그리고 아드리아해를 건너 크로아티아까지 가는 배도 있다.

▲로마 누오보 광장에 있는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넘치는 아프리카 이민자들

나폴리 작은 항만 너머로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눈을 덮고 서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말이 허명은 아닌 것 같다. 어디선가 산타루치아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다. 나폴리항 바로 뒤에는 누오보 성채가 버티고 서있다. 나폴리 거리를 걸어 중앙역까지 간다. 역 광장 가까이 갈수록 도시가 음험해지면서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많아진다. 여기서 지중해만 건너면 북아프리카 아닌가? 그들은 대개 거리에 좌판을 벌여 놓고 허드레 물건을 판다. 역 근처 가리발디 광장에는 쓰레기가 뒹군다.

명랑한 시칠리아 가족

로마행 열차에 오른다. 배정받은 객실에는 마침 시칠리아에서 로마로 여행하는 가족이 탑승하고 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낙천적이고 유쾌한 남부 이태리 사람들과의 만남은 즐거웠다. 이렇듯 이태리 남부는 여행자를 마음 편하게 해 준다. 함께 먹자고 나에게 커다란 바게트를 하나 건넨다. 평소 식사량이 적지 않은 나도 다 먹지 못할 정도로 크다.

▲카라칼라 목욕탕은 서기 217년 건축됐는데, 한꺼번에 1600명을 수용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13일차 (로마)

아피아 가도를 걸으며

오늘은 아주 많이 걸어야 한다. 아침 8시 30분 호텔을 나와 테르미니역으로 향한다. 역 부근은 근교 통근열차를 타고 도착해 메트로나 버스로 환승하는 출근 인파로 붐빈다. 아침 공기가 매우 차갑다. 테르미니에서 메트로 A라인으로 산 존바니 역에 내려 물어물어 218번 버스 승차 지점을 겨우 찾았다. 218번 버스는 얼마 안가 아피아 가도 시작 지점인 산세바스티안 문을 지난다. 그 다음 정류장인 쿠오바디스 교회에서 내렸다. 기독교 초기 교황들의 무덤이었던 산칼리스토 카타콤베 등 여러 카타콤베로 이어진 아피아 가도는 먼 길이기도 하거니와 인도가 매우 좁아 걷기 불편하고 위험해 적당히만 걷는다.

아피아 가도는 고대 로마에서 아드리아해 연안 브린디시까지 정동향(正東向)으로 난 길이다. 아침 태양이 가도를 비춘다. 나는 그 첫 구간의 아주 일부를 걷는 것이다. 도미네 쿠오바디스교회는 베드로가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아피아 가도를 도망가다가 예수님을 만난 장소에 세워진 작은 교회다.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발자국이 남아 있고 예수와 베드로 그림이 양쪽으로 있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콜로세움.


거대한 규모가 인상적인 카라칼라 목욕탕

아피아 가도를 벗어나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카라칼라 목욕탕으로 갔다. 거대한 규모가 압도한다. 서기 217년에 건축된 목욕탕은 한꺼번에 1600명을 수용했다고 하니 로마제국의 장대한 스케일을 실감한다. 목욕탕은 537년 고트 족이 로마를 점령한 후 급수로를 차단하는 바람에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목욕탕뿐만 아니라 오락실, 운동장, 휴양실, 집회시설까지 갖춘 복합시설이었다. 탈의실 자리에 지금도 남아 있는 모자이크가 정교하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

콜로세움은 목욕탕에서 걸어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인파로 북적인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으로 AD80년에 완성한 대형 원형투기장이자 극장이다. 영화 ‘쿠오바디스’에서 봤던 검투사들의 격투 장면, 그리고 그렇게 제물로 바쳐진 수많은 기독교도와 노예가 생각난다. 지금도 콜로세움에는 교황이 방문해 순교자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콜로세움 바로 앞에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서있다. 로마시대 개선문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패권 쟁탈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파리의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이 개선문을 탐내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독립문, 인도 델리의 인디아게이트 등이 파리 개선문을 모방했으므로 이 모든 것들의 원조는 바로 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인 셈이다.

▲오드리 헵번 주연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했던 원형 석판.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

이어서 인근의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를 찾아간다.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답게 포로 로마노에는 다양한 유적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의 일곱 개 언덕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키 큰 소나무 사이로 고대 로마 황제가 살았던 저택 자리가 있다. 시간이 많고 날씨가 조금만 더 따뜻하다면 오늘 이 언덕 양지바른 곳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만큼 분위기가 좋다. 언덕 끝에서는 대전차 경주장 터가 성곽너머 아래로 보인다. 지금은 조그만 탑 하나만이 남아 이곳에 25만 명을 수용했던 거대 경기장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팔라티노를 나와 경기장 트랙을 걸었다. 말발굽 소리와 전차 바퀴 소리, 그리고 관중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아름다운 광장의 도시

가까운 곳에는 ‘진실의 입’ 광장이 있다. 광장 한 켠 성당 입구 벽면에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 주연,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3년 작품 ‘로마의 휴일’로 잘 알려진 원형 석판이 있다. 마침 버스가 있어 베네치아 광장으로 이동했다. 로마에 있는 수많은 광장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 광장에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이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서 있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네오클래식 양식이다. 또한 이 광장은 2차 대전 당시 무솔리니가 연설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힘들게 길을 찾아 나보나 광장으로 이동했다. 거리예술사 집합소 쯤 되는 곳이라서 눈과 귀가 즐겁다. 광장은 타원형으로 중앙에는 이집트에서 반출해 온 오벨리스크가 높이 솟아 있다.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진 명소 스폐인 광장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세계인의 명소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 또한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소다. 스파냐 메트로역에서 내려 안내 표지를 따라 가다보니 눈에 익은 광장과 계단이 반긴다. 계단 위 ‘삼위일체교회’의 종탑과 오벨리스크가 아름답다. 스페인 계단에는 오늘도 세계 각국 사람들이 앉아 사랑을 속삭이거나 생각에 잠겨 있다.

광장에는 스페인 대사관이 있다. 원래 스페인 영사관이 있던 자리여서 스페인 광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로 가는 좁은 골목길 양편으로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상점이 즐비하다. 스페인 광장에서 10분쯤 좁은 골목을 이리 저리 걷다 보니 트레비 분수가 불쑥 나타난다. 여기 또한 동전을 던지고 사진을 찍는 세계 각국 관광객들로 붐빈다. 300년 이상 됐다는 분수 위 대리석 조각은 바로크 양식의 걸작이다. 분수 하나까지도 예사롭지 않으니 이탈리아 사람들의 감각과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테르미니역으로 돌아오니 저녁 7시다. 로마 도착 첫 날 성베드로 광장과 대성당, 테베레강, 포폴로 광장 등 도시 일부를 답사한 덕에 거대 도시 로마의 곳곳을 거의 빼놓지 않고 누볐다. 발은 부르텄지만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곱씹는다.

노인천하, 그리고 장로제(Gerontocracy)

이탈리아 거리에는 유독 노인도 많다고 느꼈다(이 느낌은 여행 후반부 스페인에서 더욱 강하게 받았다). 70세 넘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성 스캔들 뉴스가 연일 미디어에 등장했던 이 나라에서 정작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거나 있더라도 허드레 일밖에 없어서 안타깝다. 연금으로 생활이 안정된 노인들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일본도 비슷하다. 활력을 잃은 노후한 경제가 이 나라 발전에 큰 걸림돌이다. 한국도 빠른 속도로 이 길을 따라가고 있으니 걱정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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