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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의 세계 뮤지엄 ① 스위스 바젤]바젤이 아트페어의 대명사 된 계기는?

피카소 작품 팔려나갈 처지 되자 시민들 “안 돼” 뜻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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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1호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2015.03.12 09:06:39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여행과 미술관 방문, 현대인이 가장 즐기고 싶어하는 두 가지 여가활동이라고 한다. 두 개를 합한 아트투어는 어떨까? 당장은 아니라고 해도, 언젠가 세계 여행을 떠나서 유수한 미술관과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는 꿈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간직할 만하다. 세계의 주요 뮤지엄을 지역별로 점검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로 스위스 바젤을 찾아가본다.

국제적인 아트페어로 유명한 ‘아트바젤 홍콩’이 3월에 열리므로, 새봄이 되면 바젤의 아름다운 풍광과 유서 깊은 미술관들이 뇌리에 떠오른다.

스위스는 세계적 관광지일 뿐 아니라, 다보스 포럼, 시계박람회 등으로 세계의 지도자, 비즈니스맨들이 자주 찾는 산업관광의 핵심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 미술관도 많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3월 중순에 바젤 시계박람회가 열리니 한국의 여러 관계자들이 또 바젤을 찾아갈 것이다.

한편 3월 중순에 홍콩을 가면 ‘바젤’이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 오늘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국제아트페어가 1970년대 바젤에서 시작됐고 ‘바젤 아트페어’ 팀이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를 인수해 ‘아트바젤 홍콩’이라는 브랜드로 키워냈기 때문이다. ‘바젤’을 스위스의 소도시 이름에서, 아트페어의 대명사로 키워낸 셈이다.

피카소 소장품을 팔아치울 뻔했던 도시가
‘두 번째로 피카소 많은 도시’ 된 스토리


왜 바젤이 미술의 도시가 됐을까? 원래 뼛속깊이 예술적인 도시이지만, 특히 1967년은 이 도시에 국제 예술 애호가의 시선이 쏠리는 계기가 됐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행기 사고로 엄청난 보상금을 마련해야 할 처지에 빠진 한 항공사 대주주는 돈 마련을 위해 자신이 바젤시립미술관에 무상으로 대여해줬던 피카소 작품을 되돌려 달라고 요청한다.

▲렌조 피아노가 세운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의 아름다운 모습.


바젤시립미술관에 걸려 있던 피카소의 유화 2점을 비롯한 명작들이 팔려나갈 것이란 소식이 알려지자 해외 컬렉터들이 속속들이 구매자로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바젤 시민들은 “그건 아니다”고 반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젤 시청 입장에서 피카소 작품 구입대금 100억 원 상당(840만 스위스 프랑)을 당장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100억 원이라면 지금도 큰돈인데, 1967년 당시의 이 액수가 어느 정도였을지 한번 상상해 보시라.

시에서 마련한 최대치는 70억 원 상당에 불과했다. 그러자 피카소를 다른 나라에 뺏기지 않겠다는 시민들은 후원금 모금에 나섰고, 학생들, 축구선수들까지 후원금 모집에 나섰다. 물론 시민 중에는 “왜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데 시 예산을 쓰느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마침 1967년은 시장 선거가 열리던 해여서 피카소 작품을 시청이 사들이느냐 마느냐는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하지만 결국 피카소 구입을 지지한 시장이 당선됐고, 시민들은 30%의 부족금을 모았다. 따뜻한 얘기에 감동을 더한 것은 피카소였다. 바젤 시민의 예술 사랑에 감동한 피카소는 바젤의 시장을 초청해 자신의 작품을 추가로 기증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바젤 시민들의 마음을 또 한 번 움직였고, 피카소 작품을 소장하던 또 다른 바젤 시민이 소장 작품을 기꺼이 기증해 바젤 시립미술관은 피카소미술관 다음으로 피카소 명작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이 됐다. 선행이 선행을, 기적이 기적을 낳은 스토리다.

이러니 바젤에 가면 우선 이 아름다운 스토리의 현장인 바젤 시립미술관(Kunstmuseum Basel)부터 들려봐야 한다. 피카소뿐 아니라 독일인으로서 바젤에서 더 많이 활동한 한스 홀바인의 명작을 비롯해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만년의 피카소(왼쪽)을 바젤의 갑부이자 미술품 콜렉터인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1969년 만나고 있다. 사진 =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마당에는 로댕의 유명한 ‘칼레의 시민’ 조각이 설치돼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마친 칼레 시민들의 이야기는 미술을 사랑한 바젤 시민들의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스위스는 원래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용사들의 나라 아니었던가. 교황청을 지키는 수호 용사들은 오직 스위스 용병만을 뽑는다는 사실은 알고 계실 것이고….


그림 같은 미술관 안에서 세계 명작들을 보는 즐거움

바젤 아트페어를 만든 선구자 중 한 명이자, 유명한 갤러리스트였던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남긴 미술관(Foundation Beyeler)도 꼭 들러볼 만하다. 그는 “내가 미술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것은 바젤이라는 도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수많은 미술품을 기증해 재단과 미술관을 만들고 세상을 떠났다.

금전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을 터. 우리는 그 덕분에 자연 속의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자코메티를 비롯한 스위스 대표작가의 작품을 편안히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고갱 전시가 한창이라니 올 상반기에 바젤을 방문할 분이라면 꼭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방문을 권해드린다.

이밖에도 바젤 시내 곳곳의 공공조각품과 야외 분수대로 그 존재를 과시하는 스위스의 대표작가 쟝 탱글리의 미술관도 가까이에 있고, 소장품 중심이 아니라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샤우라거 미술관, 다양한 디자인 제품을 소개하는 비트라 미술관 등도 바젤에 있다.

비트라 미술관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유명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준 건축물이다. 바젤 소방서는 게리의 후예라 할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로 유명하다. 샤우라거 미술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해 더욱 유명해진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건축물로 유명하니, 도시 전체가 미술작품과 명품 건축물로 빛난다 할 수 있다.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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