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몰타 경관에 홀리고 중국 외교에 놀라고
“지구상에 이런 곳이!” 감탄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6일차 (베네치아 → 몰타)
정신 번쩍 드는 유럽 물가
베네치아 로마 광장에서 트레비소 공항행 버스는 아침 8시 30분 출발이다(5유로). 버스표 매표소와 버스 승차 지점을 찾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한 시간 걸려 도착한 트레비소 공항은 저가항공 전용 변두리 공항이다. 그래도 카페테리아에서는 커피 한 잔 8유로(1만2000원), 크로아쌍 8유로라는 놀라운 가격을 받는다. 샌드위치 한 조각, 피자 한 조각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없는 유럽 물가는 앞으로 EU공동체의 장래에 크나 큰 장애물이라는 것을 경제 상식이 부족한 나도 금방 느낄 수 있다.
국적 가리기 어려운 유럽인들의 용모
각 국가마다 특징적인 용모를 가진 경우도 많지만 언어 이외에는 유럽인들의 국적을 가리기 어렵다. 거대한 단일 제국을 형성했던 적도 있고 현대에는 이동성이 높아 유럽 단일공동체는 더 쉽게 이뤄졌다. 반면 인종과 언어, 종교, 문화와 역사가 훨씬 다양한 아시아 지역에서 EU 같은 시스템의 출범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시아 각 국가 간 경제력 격차도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작디작은 섬나라 몰타에 모인 다양한 인종
시칠리아 남쪽 끝을 스친 라이언에어 항공기는 곧 몰타 상공에 도달한다. 서울시의 절반, 제주도의 1/6에 불과한 작디작은 섬나라가 항공기의 작은 창 너머로 모두 들어온다. 항공기는 섬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발레타 공항 활주로로 접어든다. 쉥겐조약 가입국인 몰타 또한 공항 입국심사가 없다. 날씨는 더없이 좋고 공기는 한없이 맑다. 공항 터미널 앞에 마침 시내로 들어가는 8번 시내버스가 대기한다(0.5유로).
몰타는 시칠리아 남쪽 93km, 튀니지 북쪽 270km,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서쪽 1500km 지점에 있다. 인구는 40만 명이지만 인종 전시장 같다. 흑인, 흑인에 가까운 얼굴, 아랍 얼굴, 인종 파악이 어려운 혼혈 그리고 순혈 백인까지 다양하다. 오로지 자기들끼리 사용하는 고유 언어 몰타어만이 외지인과 자국인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푸른 지중해를 따라 펼쳐져 있는 몰타 산텔모 요새. 어딜 가도 멋진 풍경이 눈에 보인다.
전략적 위치의 중심이었던 몰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5000년 역사를 지닌 몰타는 나폴레옹 점령, 영국 통치 그리고 1964년 독립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영국 입장에서 몰타는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틀어막고 수에즈를 거쳐 인도와 동아프리카 식민지로 향하는 항로를 지켜 주는 매우 중요한 전략 지역이다. 몰타 수도 발레타에는 영국 지중해 함대가 상주하다가 1979년 철수했다.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은 특이한 경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접근을 물리치기 위해 쌓은 성채가 해안과 산악 곳곳에 남아 있고 그런 풍광 때문에 영화 ‘트로이’, ‘글래디에이터’, ‘다빈치코드’ 등의 촬영 장소가 됐을 만큼 섬 전체가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이 특이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 ‘멜리데’라고 기록된 몰타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시리아에서 로마군에 붙잡혀 로마로 압송되다가 배가 난파해 지하 감옥에 3개월 머문 곳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몰타는 기독교의 보고이기도 해서 발레타에만 360개의 성당이 있다. ‘지중해의 숨겨 놓은 진주’라고 할 만큼 숨 막히는 풍광이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 이런 곳도 있었단 말인가?
사도 바울의 흔적
일단 시내버스를 타고 먼 곳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라바트까지 1.6유로로 거리가 제법 되는데 요금은 저렴하기 짝이 없다. 엠디나 성곽 도시는 옛 수도가 있던 곳이다. 깔끔한 성곽 도시를 배회하다가 성곽 전망대에 서니 몰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히치콕 감독 영화 ‘몰타의 매’에서 봤던 장면이다.
이어서 성바오로 성당과 성당 내 사도 바울이 감금됐던 동굴을 찾았다. 근처에는 카타콤브도 있다. 몰타 사람들이 몰래 기독교를 섬겼던 지하 교회의 미로 구조는 베트남 호치민 외곽 베트콩들의 은신처였던 구찌터널만큼이나 복잡하다. 사도 바울이 난파해 몰타에 정박한 2월 10일이면 해마다 이곳에서는 ‘성바울 난파 축제’가 열릴 만큼 그에 대한 존경은 절대적이다.
▲몰타 공항 시내버스에서 여행짐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지중해 여행의 한복판 몰타에서 만끽한 풍경
성곽도시 엠디나를 빠져 나오니 광장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논다. 65번 버스를 타고 실레마 항구(해변)로 향하다. 노인들이 어슬렁거리는 변두리 작은 광장, 이발소, 구두 수선점, 동네 카페, 곳곳에 널브러진 화강암 덩어리들, 선인장, 돌담…. 이런 것들이 종합해 몰타의 모습을 완성한다. 매력적인 풍경이다.
실레마 해변에서 버스를 내려 지중해 바닷가를 무작정 걷는다. 바닷가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까만 현무암이 널려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 봐도 푸른 지중해…. 몰타는 지중해 여행의 절정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멀리 바다 건너 돌출한 작은 반도에는 카지노가 있다. 관광 산업을 키우고 싶은 몰타의 의지가 드러난다. 언덕 위 구 시가지와는 달리 해안선을 따라 아주 멋진 현대적인 거리가 펼쳐진다.
영악한 중국 외교
발레타에 돌아오니 고성(古城)들이 밤바다에 떠 있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것 같다. 리퍼블릭 거리를 걸어 호텔에 돌아오니 저녁 8시다. 거리에는 중국 공연단의 춘절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다. 이 나라에 몇 안 되는 외국 공관 중에 중국 대사관이 있는 것을 보면 몰타는 중국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몰타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고즈넉한 발레타 시가지 오래된 건물 사이로 난 골목들은 아무리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마침 근처 성당에서는 금요일 저녁 미사를 주관하는 신부의 설교 메시지가 몰타어로 들린다. 참 아름다운 밤이다.
▲몰타 카타콤브 현장. 미로 구조가 눈길을 끈다.
17일차 (몰타 → 스페인 세비야)
발레타 시내에서 만난 성요한 성당
아쉽지만 오늘은 몰타를 떠나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가는 날이다. 호텔 조식 후 발레타 시내 박물관과 명소 몇 곳을 더 들른다. 수도 발레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모든 것이 볼거리다. 우선 리퍼블릭 거리에 있는 성요한 성당을 찾았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성요한의 참수’가 있는 곳이다. 성당은 바닥 타일과 직물 수공예가 일품이다. 10x10m가 훨씬 넘는 직물화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이 성당은 16세기 중반 성요한 기사단(몰타 기사단)이 함께 기도드리기 위해 모였던 곳이라니 의미가 새롭다.
반가웠던 아시아 음식 가게
호텔 앞 거리에는 중국문화센터가 있고 구정을 맞아 축제와 각종 연주회 등 문화예술 행사가 열린다는 안내 포스터가 곳곳에 있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아시아 음식 재료 가게도 있어서 들어가 가게 주인과 몇 마디 나눴다. 일본 원양어업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그의 가게는 개업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일본, 한국, 말레이, 필리핀, 인도 등의 음식을 판다. 라면, 냉면, 미역 같은 한국산 식품을 몰타에서 만나니 반갑기 짝이 없다.
고고학 박물관에는 7000년 전 선사시대부터 몰타에 살았던 선대인(先代人)들의 구석기 유물을 포함, 고대 유적 발굴품이 많다. 석회암 지역이라서 유달리 많은 선사시대 유물들은 정교하다. 일본 관광객들이 열심히 공부하면서 내 옆을 지나간다. 성당 옆에는 법원, 국립도서관, 대통령궁 등 공공기관이 있는데 대통령궁 외벽에는 2차 대전 중(1943년) 몰타 국민의 용맹성과 저항정신에 감사하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감사의 글이 새겨져 있다.
떠나기 아쉬운 몰타
푸르게 펼쳐진 지중해를 따라 산텔모 요새까지 걸었다. 바다색과 하늘색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사방이 바다인 몰타는 어디에서 찍어도 멋진 사진이 만들어진다. 하루 종일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을 이 멋진 풍경을 두고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 바다와 하늘, 황토색 요새가 어우러진 풍경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발레타 중심가에는 주말을 맞아 시장이 열렸다. 공항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커다란 피자 두 조각을 점심으로 먹었다. 불과 2유로다. 공항행 버스는 한국 같으면 40년쯤 전에 퇴역했을 낡은 버스지만 운전기사 솜씨가 부드럽다. 낡은 디젤엔진 소리와 매연 냄새도 몰타의 추억에 보태진다.
이베리아 반도에 닿다
몰타를 들고 나는 길에 이용한 라이언에어 저가항공은 두 번 모두 정시 출발-도착에 듬성듬성 빈자리도 있어서 편하게 이용했다. 몰타 공항을 정시에 이륙한 항공기는 거의 세 시간을 날아 오후 4시 30분 스페인 세비야에 도착한다. 안달루시아 대평원이 드넓게 펼쳐진다. 안달루시아는 반달족의 땅이라는 뜻이다. 스페인은 남한 면적의 5.5배, 넓은 나라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이베리아 반도에 드디어 발을 딛는 감격적인 순간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몰타의 아름다운 모습. 세 개의 섬이 보인다.
공항을 나오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공항버스(2.4유로)를 타고 종점인 프라도에 도착해 별로 어렵지 않게 호텔을 찾았다. 호텔은 에스파냐 광장 바로 건너편 편리한 위치에 있다. 4성급 호텔로 요르단 아카바에서 묵었던 호텔만큼 좋아서 그동안의 여독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대학 시절 취미로 배운 스페인어가 약간은 도움을 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프라도에 한국인 단체 관광객 한 무리가 지나간다.
스페인 건축물의 특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건축물보다 규모가 크지만 단순한 편이다. 그러나 섬세해야 할 곳은 충분히 섬세하다는 점이 차이인 것 같다. 세비야 건축물은 아랍의 영향 때문인지 첨탑과 사라센 돔(항아리 돔) 등 특색이 금방 느껴진다. 스페인은 BC 2세기부터 AD 5세기까지 로마제국 영토였다가 서고트족의 지배를 받은 후 711~1492년 약 800년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인구는 4000만이고 혼혈이 매우 많아 다양한 용모가 발견된다. 심지어는 거의 아시아 사람에 가까운 얼굴도 가끔 있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