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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돈키호테 달리던 코르도바 골목, 내 놀던 모래내 골목과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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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3.19 08:57:10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지난 호에 이어 스페인 세비야에서 보낸 17일차 이정을 이어서 소개한다.

여유를 즐기는 낙천적인 백성

호텔에 짐을 풀고 어두워지기 전에 세비야 대성당을 방문하려고 나섰다. 프라도에서는 마침 민속 퍼레이드가 출발하고 있다. 독특한 고유 의상이 화려하다. 퍼레이드를 뒤로 하고 대성당 방향으로 계속 걷는다. 거리 양쪽 카페와 바는 토요일 저녁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더러는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부른다. 라틴 문화 중심에 왔음을 실감한다. 나라 경제는 어둡고 50%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률 때문에 젊은이들은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낙천적인 백성들은 여유를 즐긴다.

유럽 3대 성당 중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을 마주하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 성당이자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대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올린 성당이다. 마침 성당 건축 5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성당은 보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웅장함을 드러낸다. ‘히랄다’라고 불리는 탑은 중동에서 많이 봤던 전형적인 이슬람 건축물에 뾰족한 종탑을 얹은 모습이다.

내친 김에 과달키비르강까지 갔다. 이 강을 따라 남쪽에 세비야 항이 있다. 과거 스페인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매우 중요한 항구였음은 두말 할 필요 없다. 강가에는 노부부, 연인, 가족 등 시민들이 건강한 휴식을 즐기고 있다. 강변에 서 있는 황금탑의 노란 벽돌이 석양을 받아 빛난다. 돔을 덮었던 황금 타일이 태양을 반사해 ‘황금탑’이라고 불렸는데, 강을 따라 올라오는 침입자들을 감시하는 망루였다고 한다.

▲코르도바 로마교의 모습. 로마교 근처에는 메스티카 사원이 위치하고 있다. 사진 = 김현주


또 다른 광장이 이어지는 산타크루즈 골목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해 호텔로 돌아오는 길을 재촉한다. 대성당을 지나 산타크루즈 지구로 일부러 우회한다. 베네치아와는 또 다른 느낌의 미로로 이어진 예쁜 골목에는 음식점들이 점점이 나타난다. 작은 광장 하나 돌면 다음 골목에 다시 또 다른 광장이 나오는 예쁜 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길을 잃어도 상관없다. 덕분에 색다른 분위기를 맛볼 수 있으니까….

마침 어느 작은 광장에서는 영화 촬영이 한창이다. 산타크루즈의 해질 녘 풍경을 만끽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일부러 헤매다가 대성당 부근 큰 길을 찾아 나가다 보니 알카사르를 만난다. 절묘한 건축 양식과 아름다운 안뜰은 여기가 안달루시아 중심임을 말해 준다. 무어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합된 중세 이슬람 궁전의 아름다움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 필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불편한 시민생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스페인식 볶음밥인 파에야와 맥주, 그리고 커피로 저녁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차분히 앉아서 즐기는 식사다. 호텔 들어가기 전 슈퍼마켓에 들러 내일 아침 먹을 것과 과일, 맥주를 샀다.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은 가게까지 한참 걸어가야 한다. 한국이 얼마나 살기에 편리한 곳인지(아니면 유럽이 얼마나 살기에 불편한 곳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이곳 사람들이야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겠지만 한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참 불편한 곳이다.

▲활력이 넘치는 코르도바 거리를 구경하는 소녀. 사진 = 김현주


한류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다

호텔에 오니 밤 8시가 넘었다. 세 시간 넘게 세비야의 저녁 풍경을 만끽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 관문인 세비야의 밤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자정이 넘도록 분주한 거대 도시 서울과는 달리 유럽의 도시(로마도 그랬다)는 밤이 되면 처량하도록 살풍경해진다. 그러다 보면 TV 같은 여가 매체가 위력을 발휘한다. 지상파 TV에서는 아직도 ‘돌아온 래시’ 같은 1960년대 미국 TV 시리즈물을 방송하지만 시청자들은 불평이 없나 보다. 여기에 한류 콘텐츠를 보내면 호응이 있을 것 같다.


18일차 (세비야 → 코르도바)

규모가 큰 스페인 건축물

오늘은 오후 1시 30분 코르도바행 버스를 탈 때까지 시간 여유가 많다. 어제 남겨둔 에스파냐 광장과 마에스트란사 투우장까지 가는 것으로 오전 일정을 잡았다. 스페인 광장의 아침 공기가 매우 차가운데 벌써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와 있다. 광장 주위의 멋진 건물들은 정부와 공공기관 청사들이다. 일단 규모가 크다. 과거 영화롭던 스페인 대제국 시절에 걸맞게 지었을 것이다. 규모도 크지만 연못과 다리 주변, 건물 벽면 타일 장식이 예술이다. 세비야 대성당처럼 종탑은 첨탑에 풍향계를 얹은 형식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 성당인 ‘세비야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 사진 = 김현주


사람들 얼굴이 곧 그 나라 역사

걸어서 마에스트란사 투우장에 갔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투우장으로 1만4000개의 관중석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진정한 투우사가 아니라고 말할 정도다. 투우는 5∼8월 사이에 열리기 때문에 오늘은 관광객 몇 명이 전부다.

안내자에게 몇 마디 질문을 했다. 죽은 소는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줬으나 지금은 도축장에 판다고 한다. 투우사는 아직도 인기 직업이어서 투우사 양성 학교도 있다고 한다. 투우장에서 말레이시아 여성 두 명을 만났다. 한국인이라니 매우 반가워한다. 서울과 제주에 와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모스크바 의과대학 유학 중이란다.

도시를 탐험할수록 별의별 스페인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순혈 백인, 아랍계, 흑인, 그리고 혼혈 메스티조까지 스페인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아무리 유럽이지만 나라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 생김새가 바뀌는 것이 신기하다. 사람들 얼굴은 곧 그 나라 역사인 것이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아르마스 광장 버스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는 시간 여유가 많아 스테이크로 점심을 먹는다. 오랜만에 고깃덩어리를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버스는 낮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초원길을 달린다. 예약해 둔 호텔은 코르도바 버스터미널에서 걸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작지만 앙증맞게 잘 꾸며진 것이 일본 비즈니스호텔을 닮았다.

유럽 솔로여행의 애로 사항

유럽 개인 여행은 비용이 많이 든다. 우선 입장료가 비싸다. 유럽에서 물가가 가장 싼 편인 몰타에서도 박물관 입장료는 5유로였고,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는 8.5유로, 나중에 방문한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은 12유로, 마드리드 밀랍인형관은 무려 16유로(2만 5000원)였다. 식사도 문제다.

종업원의 서빙을 받는 식당에 우아하게 앉아 먹으면 맥주 한잔 포함해 보통 15유로를 넘는다. 이동도 문제다. 대도시는 대중교통에 의존할 수 있지만 피렌체나 나폴리, 세비야 같은 중소도시에서는 걷는 것 말고는 더 나은 방법은 없어 보인다. 다행히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는 대개 구도심을 중심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호텔 위치만 잘 잡는다면 걸어서 돌아다니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나는 아직 그 정도는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규모가 큰 스페인 건축물들은 연못과 다리 주변, 건물 벽면의 예술적인 타일 장식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황홀하게 아름다운 메스키타 사원

호텔에 짐을 던지고 곧장 메스키타 회교사원(성당)으로 향한다. 코르도바는 2000년 넘은 고도(古都)의 모습이 역력하다. 메스키타 사원은 매우 아름답다. 내일 방문을 앞두고 있는 알함브라 궁전에 못지않을 것 같다. 8세기 스페인 이슬람교의 중심지였던 모스크는 이후 고딕, 비잔틴, 페르시아적 풍미가 혼합돼 묘한 느낌을 준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뒤 16세기에 모스크 한 복판에 가톨릭 성당을 지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모습을 이스탄불 성소피아 사원에서 보고 오랜만에 다시 보는 셈이다.

사원(성당) 내부 수백 개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 모습은 황홀하게 아름답다. 천장을 자세히 보니 나무로 깎은 대칭 무늬가 섬세함을 더한다. 이번 여행 중 연이어 나타나는 수많은 교회, 사원, 성당의 모습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성곽 주위에는 작은 호텔들이 줄지어 있는데 그중에는 ‘승리’(El Triunfo), ‘정복자’(La Conquistador) 같은 이름의 호텔이 있어 이 도시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말해 준다.

포트로 광장과 유태인 지구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포트로 광장으로 갔다. 수백 년 됐을 호텔(여관)들, 미로로 얽힌 동네 골목이 어제 돌아봤던 세비야 산타크루즈 지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산타크루즈 골목이 우아하고 풍요롭다면 여기는 소박하지만 정겹고 아기자기하다. 일요일 저녁 광장은 수많은 시민들로 붐빈다. 골목에는 시장이 열려 시민들의 발길과 눈길을 붙들고 광대 행렬이 요란을 피우며 지나간다. 수백 년 같은 모습일 듯한 유대인 지구 라 후데리아에서 유대인이 떠난 지는 수백 년이 됐다. 골목은 어릴 적 내가 놀던 서울 모래내 골목을 생각나게 해 우수에 젖는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사원. 혹자들은 알함브라 궁전보다 더 아름답다고 평한다. 사진 = 김현주


생기가 넘치는 골목 안 눈요기

생기가 넘치는 골목은 정말 볼 것이 많다. 골목 하나 돌 때마다 다음 골목은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기대하게 한다. 풍물 시장에 이르니 중세 저자거리가 재연되고 있다. 나도 그 거리에서 치즈와 양고기를 곁들인 크렙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이 거리를 마침 일요일 저녁 지나게 된 것은 행운이다. 광대 행렬이 지나가자 골목 안 흥겨움을 절정에 달한다.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 밀려 나온 골목 밖 작은 광장에 1세기에 건축한 멋진 로마 신전이 코린트식 기둥을 뽐내고 서 있어서 깜짝 놀랐다. 기둥 몇 개와 주춧돌만 남아 있지만 이 도시의 긴 역사를 깨닫게 한다. 광장 중심 목이 좋은 곳에 중국인이 경영하는 잡화점이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가게인 것 같다. 중국인의 침투력이 놀랍다. 호텔로 돌아오다 보니 큰 광장이 나오고 광장 한 켠 공공건물 벽면에는 ‘코르도바를 유럽 문화의 중심으로’라는 구호가 걸려 있다.

오늘도 많이 걸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코르도바를 즐겼다. 숨겨진 매력이 많은 도시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도시쯤으로 생각했던 것은 완전히 착오였다. 유쾌한 도시 탐험을 마치고 호텔에 오니 저녁 8시가 넘었다. 호텔 근처 가게에서 맥주와 나쵸를 사다 한 잔 하니 여행의 피로가 가신다. 호텔방 TV에서 흘러나오는 스페인 전통 음악이 분위기를 더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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