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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라이프 ①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사드는 한반도 위험에 빠뜨릴 ‘괴물’…결정은 군인 아닌 지도자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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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3호 심원섭 기자⁄ 2015.03.26 09:09:10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사진 = CNB포토뱅크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심원섭 정치전문大記者) 거리에는 한해를 마감하는 징글벨 소리와 함께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끊이질 않던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었던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서울 영등포역 대회의실에서 전국의 지지자 300여 명과 송년 모임을 가진 뒤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CNB뉴스와 단독인터뷰를 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정 전 장관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길을 가는 데 있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밀알과 밑거름이 되겠다”며 탈당 후 진보진영이 추진 중인 제3당 신당 창당에 합류 가능성을 시사해 정치권에 큰 충격 던져주었다.

특히 각계 진보인사 105명이 구성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약칭 국민모임)이 신당을 추진하고 정 전 장관이 여기에 적극 참여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2월8일로 예정돼 있던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와 맞물려 자칫 정 고문의 탈당 여부가 야권 정계개편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었다.

실제로 정 전 장관은 올 1월5일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국민모임’ 합류를 결심하는 바람에 정치권이 새해 벽두부터 출렁였다. 당시 정 전 장관의 명분은 “현재 정치는 겉돌고 약자들은 기댈 곳이 없다”며 “따라서 약자가 기댈 곳이란 대안정당을 말하고, ‘국민모임’은 그 대안정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니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2015년을 ‘새정치’를 기획하는 것으로 시작해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장관은 3월 17일 CNB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안보와 정치적으로 최대 현안인 미국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제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정 전 장관으로부터 최근 정세에 대한 그의 생각과 함께 ‘인간 정동영’의 면모를 그의 다른 일화와 함께 알아본다. 

“박대통령이 6자회담 재개시켜야…관악을 출마 생각 없다”

그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는 국익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들기보다는 갈등과 긴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트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드는 군사문제가 아니다. 정치문제다. 사드는 군인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지도자가 판단해서 결정할 문제다. 중국을 보면 시진핑 주석이 나서서 제시하고, 국방장관을 한국에 보내고, 그리고 차관보가 어제 와서 ‘중국의 우려를 중시해 달라’ 이렇게 노골적으로 입장을 전달했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미국 역시 세계전략 차원에서, 그리고 동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20여 년 전부터 한발 한발 추진해온 문제다. 그래서 이것 역시 미국 국방부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그렇다면 한국 역시 결국 지도자의 문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동북아 안보와 평화에 대한 정책결정을 하게 될지 하는 문제다. 물론 박 대통령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서 정부는 ‘아무런 요청도 없었다. 아무런 협의도 없었다. 아무런 결정도 없다’는 등 3무(無)를 정부입장으로 내놓고 있고, 이건 평가할 수 있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논점을 피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사드문제에 대해서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뭔가,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국익이다. 그런데 국익의 관점에서 봤을 때 사드는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들기보다는 대한민국을 갈등과 긴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트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라고 단언했다.

정 전 장관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 3가지 반대의 이유로 ‘정치적인 측면에서 북핵문제를 악화시키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다는 점’, ‘군사적인 측면에서 실효성. 효용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 ‘외교적인 측면에서 한중 관계 파탄 가능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 전 장관은 “미사일방어체제(MD)와 북핵은 1994년 20년 전부터 동반성장해 온 괴물 같은 것”이라며 “북한 핵이 커지면 우리는 MD의 늪에 끌려들어갔고, 또 MD가 진행되면 될수록 북핵문제는 더욱 더 커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사드 문제의 해법과 대안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서 미국을 설득하고,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을 끌어들여 6자회담 테이블을 재개시키는 게 정답”이라고 제시했다.

정 전 장관은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여당과 청와대 문제, 여야문제, 혹은 보수, 진보의 문제, 이렇게 접근해서는 절대 안 되는 문제”라며 “답은 과거 경험을 잘 살펴보면 나와 있다. MD, 방어미사일의 뿌리는 북한 핵이다. 그런데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해결에 모범이 있다. 딱 10년 전인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에 3가지 사항이 나와 있다. 첫째가 북한은 핵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고, 둘째가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과 함께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자는 이런 핵심적인 합의들을 다 이룬 것이다. 이걸 실천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이 만들기까지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2005년 9월 19일 당시 제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이자 통일부 장관이었다. 반기문 현 유엔사무총장이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다. 저는 평양을 설득했고, 반 장관은 워싱턴을 설득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뛰었고, NSC를 중심으로 이걸 조율하고, 그리고 국민의 여론을 뒷받침 받아서 9.19 합의를 이끌어 냈었다”고 밝혔다.

한편, 정 전 정관은 “국민모임에서 4.29 재보선에 관악을에서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한 반응들이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던데, 출마하실 생각이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려 왔다”고 잘라 말했다.


‘개나리 아저씨’ 정동영의 아내 ‘무한사랑’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6.25 전쟁 휴전협정일인 1953년 7월 27일 전북 순창군 구림면에서 태어난 정 전 장관은 ‘귀공자’ 이미지와는 달리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열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군 제대 후 서울대 문리대 복학 시절에는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며 ‘눈물 젖은 밥’을 먹었다. 이에 정 전 장관은 “어머니의 재봉틀이 저를 키운 힘이었다. 결혼한 뒤에는 아내와 두 아들, 어머니와 동생 셋 모두 8명의 식구가 한 집에 살면서 가난했지만 가족의 힘으로 좌절하지 않고 버텨냈다”고 말했다.

떠꺼머리 청년 정동영을 버티게 한 힘은 뜨거운 연애를 했던 아내 민혜경이었다. 친구인 시인 황지우의 소개로 숙명여대 음대에 다니던 민 씨를 처음 만난 그는 금방 푹 빠졌다. ‘시골 촌놈’이라 ‘피아노 치는 여자’가 좋았다고 말했다.

아내가 다니던 숙명여대 기숙사 앞을 발이 닳도록 다녔다. 물론 사랑 쟁취 작전은 수위 아저씨를 공략하는 것. 정 전 장관은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사가지고 가서 수위 아저씨를 구워삶았다. 아저씨는 아내가 몇 시에 나가고 들어오는지 정보를 줬고, 연애 전략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사랑의 메신저였던 수위 아저씨를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도도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음악은 먼 나라 얘기 같았던 정 전 장관은 음대생 그녀를 만나려고 명곡 대사전에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했으며, 매일 숙명여대 앞 기숙사를 서성이면서 뜨거운 마음을 더는 감출 수 없어 막걸리에 취한 어느 날,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날, 길가 개나리꽃을 꺾어 그녀에게 고백했다. 그래서 생겨난 별명이 ‘개나리 아저씨’ 그러나 애끓는 두 사람의 사랑도 부모의 반대를 넘기는 힘들었다.

“기자에게 딸 못줘” 반대에 결국 납치작전 동원

아내의 부모는 “기자에게는 딸을 못 준다”면서 두 사람의 만남을 강하게 반대했다. 특히 대학 졸업식 날 친구와 함께 꽃다발을 들고 찾아갔지만 아내는 그의 선물을 뿌리쳤다. 그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등을 돌려야만 했다. 정 전장관은 “교육자 집안의 딸이었으니 얌전한 아내의 졸업식에 남학생이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황당했겠나. 나 역시 친구 앞이라 창피했다. 그 뒤로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2년 만에 재회했으나 부모의 반대는 여전했다. 이 시점에서 정 전 장관은 “아내의 집을 찾아가서 딸을 달라고 애원했다. 통행금지 시간이 넘어서 갈 데도 없고 담벼락 밑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웃음 지었다. 다시 사랑을 잃을 수 없던 그는 무모한 결단을 내렸다. 다니던 방송사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아내를 설악산으로 납치했다.

정 전 장관은 “당시 경찰 출입기자였는데 연애냐 직장이냐의 기로에 섰다. 방법이 없으니까 사표를 내고 아내를 찾아갔다. 아내 부모님도 어쩔 수 없어서 허락했다. 뭐 어쩔 건가. 시집보내긴 틀렸지 뭐. 지금은 나를 큰 아들처럼 생각한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정 전 장관은 아내와의 연애 이야기를 풀어놓자 추억에 젖어드는 듯했다. 책장 한편에 꽂혀있는 빛바랜 명곡 대사전을 펼쳐보면서 “싫다는 사람 데리고 와서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미안하다.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며 활짝 웃었다.


정동영의 ‘안산유기동물보호소’ 방문 스토리

정동영 전 장관은 인터뷰 도중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제종길 안산시장 당선자와 함께 초여름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던 그해 6월18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부곡동에 위치한 유기동물 보호소를 찾았던 얘기를 들려줬다.
“보호소는 대형 컨테이너 창고처럼 되어 있었다. 다른 보호소에 비해 비교적 시설이 깨끗한 편이나 내부운영과 관리는 전혀 딴판이었다. 나는 안산보호소 문제점에 대해 영화감독인 임순례 카라 대표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보호소 내부를 돌아보며 철제 케이지에 갇혀 있는 유기견들과 인사했다. 하루 종일 갇혀 있는 유기견들은 사람이 손길이 그리웠는지 손을 내미는 내게 꼬리치며 반갑게 달려들었다.”

안산시 유기동물보호소는 안산시를 비롯해 광명, 화성, 시흥 등 6개 지자체의 유기동물을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가 위탁받아 관리하는 곳이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임순례 대표와 자리를 함께해 보호소장과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보호소의 문제점 지적에 대한 답변과 현황,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함께 논의했다고 한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2013년부터 안산시 유기동물보호소의 길고양이 TNR(Trap Neuter Return: 안전하게 포획하여 중성화 수술한 후 제자리에 방사하는 시스템. 질병예방과 개체 수 조절에 필요)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제보를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고 한다.

국내에서 두 번째 크기의 안산보호소에 대해 카라는 그동안 자체 조사를 진행하였고,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의원실과 함께 안산보호소에 유기동물을 위탁 관리하는 지자체의 유기동물 관리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였다.

입양 잘 안되는 대형견을 유독 잘 입양해가는 곳 알고보니 식용 판매

안산보호소에는 작은 유기견과 큰 유기견들이 함께 있다. 일반적으로 덩치가 큰 유기견은 작은 유기견에 비해 입양이 잘 안 되는 편이다. 집안에서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덩치가 큰 유기견이 거의 똑같은 사람한테 100% 입양되었고 이는 이들을 식용으로 판매한 정황을 카라가 추적 파악하였다.

정 전 장관은 이러한 보고를 끝까지 경청하고 난 후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곳에서 식용으로 판매한다면 이는 범죄행위다. 환경과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동물보호소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며 “그리고 동물보호소가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동물단체와 지자체의 공동협력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동영과 이외수와의 만남
“그대가 세상을 통째로 끌어안아라”


정동영 전 장관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 문학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강원도 화천에 칩거 중인 소설가 이외수씨와의 만남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2007년 4월9일 ‘탈 여의도 평화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철책선을 따라 155마일 도보 행진 중이었던 정 전 장관은 강원도 화천을 지나면서 평소 인터넷 대화를 자주하면서 한번 들러달라는 이 씨의 제안을 정 전 장관이 흔쾌히 수락해 도보 행진 중 4월10일 이 씨의 집(강원 화천 감성마을)을 평화대장정단원들과 함께 찾아간 것이다.

평화대장정을 시작한 정 전 장관은 이동하는 틈틈이 플톡이라는 미니블로그에 다이어리 형식으로 소감 등을 적었고, 9일 저녁에 이 씨는 정 전 장관의 블로그에 “평화대장정 중 화천을 지나실 일 있으면 차 한 잔 대접하고 싶다”고 적어놓았다. 이 글을 확인한 정 전 장관은 10일 화천군 평화의 댐을 방문한 뒤 이 씨 집을 찾았다.

정 전 장관은 “개인적으로 이외수 선생을 알지 못했지만 이제까지 여러 매체와 보도를 통해 이 선생의 이미지는 느낄 수 있었다”며 “블로그가 선생과의 인연의 다리가 되어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이번 대장정을 더욱 뜻 깊게 만들어 줄 것 같다”고 소감을 얘기했다.

이에 이 씨도 “(직접 만나 뵈니) 건강하고 젊으시고 (플톡에) 글 올리시는 것을 보니 감각이 정치인답지 않고 감각적이다”며 “특히 격의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에 호의를 느낀다”고 화답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 씨는 “여기 감성마을에서는 인간이 친구, 자연이 주인”이라며 “앞으로 이곳에 전쟁을 좋아하고 문화를 이해 못하는 사람은 영구 출입금지 시킬 예정이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정 전 장관은 “평화대장정 동안 이 선생의 책이 큰 벗이 되고 있어”고 했으며, 이 씨도 “머리 좋은 사람이 많은 세상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많은 세상 만들어 달라”고 덕담을 건넸다고 한다.

특히 이 씨는 정 전 장관에게 “세상이 아직도 그대 하나를 끌어안지 못한다면, 그대가 세상을 통째로 끌어안아 버려라”고 의미심장한 조언을 한 것으로 전해져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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