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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질문1: A회사 대표가 폐업을 하고 사실상 똑같은 일을 하는 B회사를 설립했습니다. A회사에 대한 채권을 B회사에 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까요?
질문2: A회사는 부도가 났습니다. 그런데 A회사의 대표는 B회사의 실질적인 소유자입니다. B회사에게 A회사가 진 채무를 갚으라고 할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사람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법인(法人)과 자연인(自然人)입니다. 그리고 법인과 자연인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법인에 대한 채권이 있어도 자연인인 대표이사나 대주주에게 대신 갚으라고 하거나 A법인의 채권자가 B법인에 대해 돈을 갚으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채권자들은 억울하기 마련입니다.
A법인의 채무를 B법인에게 이행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직접적인 근거 조문은 없지만 ‘법인격부인론(法人格否認論)’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법인격부인론이란 법인 제도의 취지를 어긋나게 이용하는 경우 그 법인에게 귀속될 채무 등의 법률관계를 그 법인의 배후에 있는 개인이나 다른 법인에게 귀속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배후(背後)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법인격부인론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주장되어 오면서 그 인정 필요성에 대한 학설의 논의가 계속되어 왔으나, 소유와 책임의 분리라는 회사법의 대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판례는 이에 대하여 비교적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법인격부인론을 인정해 청구를 인용한 판결이 등장하면서 현재 10여건 이상의 인용 예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법인격부인론은 이를 직접적으로 규정한 명문의 규정 없이 민법 제2조 제2항의 권리남용 금지 원칙 또는 상법 제171조를 근거로 해 학설과 판례상 인정되는 것입니다. 소송 실무에 있어서는 법조문보다 현재 판례의 경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판례가 설시하는 요건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는 특색이 있습니다. 판례가 설시한 구체적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존 회사가 채무를 면탈하기 위하여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 회사를 설립하였다면, 신설 회사의 설립은 기존 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회사 제도를 남용한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우에 기존 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위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으므로, 기존 회사의 채권자는 위 두 회사 어느 쪽에 대하여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할 것인바(대법원 2004. 11. 12. 선고 2002다66892 판결 참조)
여기에서 기존 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신설 회사를 설립한 것인지 여부는 기존 회사의 폐업 당시 경영 상태나 자산 상황, 신설 회사의 설립 시점, 기존 회사에서 신설 회사로 유용된 자산의 유무와 그 정도, 기존 회사에서 신설 회사로 이전된 자산이 있는 경우, 그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8. 21. 선고 2006다24438판결).”
실제로 소송에서 승소하기는 어려워
판례의 요건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 소송에서는 가능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야겠지만 “상호, 상징, 주소, 해외제휴 업체 등이 동일하거나 비슷하고, 주요 경영진이 같으며 동일한 회사인 것처럼 홍보했다는 점, 외부에서도 같은 회사로 인식되는 점 등”이 실제 판례에서는 법인격을 부인하고 신설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필자는 이 법인격부인론과 관련된 상담을 하게 되면, 원고 쪽의 경우에는 소송을 말리는 편입니다. 워낙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이론인데다 실제로 판례가 말하는 요건을 갖추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1, 2심에서 종결되지 않고 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지고 소송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의 법체계에서는 일단 채무면탈을 위한 신설 회사가 설립되면 이를 원상으로 돌리기 위한 시간과 경제적 노력이 막대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회사와의 분쟁이 발생한 경우 소송에 이기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압류, 가처분 등 미리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