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람들 ⑲ 금천서 이순종 경위]층간소음 보복피해 할머니에 새집장만
“경찰생활 25년 중 가장 큰 보람” 자랑
▲금천경찰서의 피해자 보호 담당관 이순종 경위. 사진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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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서울경찰청은 창경 70주년을 맞아 올해를 ‘피해자 보호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지난 2월 21일 ‘피해자 보호 전담경찰관’ 발대식을 가졌다. 경찰청은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것에서 나아가 피해자 보호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피해자 보호 담당관을 각 경찰서에 배치했다. 이번 조치는 최근 보복범죄가 증가하면서 피해자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에 적극 대처하는 한편, 경찰이 시민 곁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발대 초기부터 피해자 보호 담당관으로 근무한 금천경찰서 청문감사실의 이순종 경위(50) 역시 피해자에게 주거 지원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층간 소음을 둘러싼 갈등은 당사자들이 서로 이웃에 살다 보니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갈등과 충돌이 심해져 경찰이 출동하기도 한다.
금천경찰서 관내에서 지난해 층간 소음문제로 옆집 현관문을 걷어차고 협박하던 40대 남성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이 남성은 같은 아파트 옆집 주민의 평소 말소리가 소란스러워 참을 수 없다면서 옆집 현관문을 수차례 걷어차고 갖은 욕설을 해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가해 남성은 그러나 처벌받은 데 앙심을 품고 피해자를 가만두지 않겠다며 벼르다 올해 초 다시 옆집에 찾아가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피해자 집에 막무가내로 들어가 멱살을 붙잡아 넘어뜨리고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심각한 피해를 가한 것이다. 전형적인 보복범죄였다.
이순종 경위는 이 사건을 접하고 병원에 입원한 피해자를 찾아갔다. 피해자는 연세도 많고 거동도 불편한 할머니로, 늑골 3개가 골절되는 등 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이 경위는 “할머니는 불안 증세를 보이면서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계셨다. 가해자가 바로 옆집에 거주하는 이웃이라 언제든지 서로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또다시 보복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 경위는 피해자 할머니의 주거지를 옮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례가 없었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피해자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LH공사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LH 기준에 범죄 피해자의 주거지를 옮겨줄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주거지 이전을 위해 금천구청 실무자들과 이야기하는 이 경위. 사진 = 서울금천경찰서
이 경위는 관련 기관들의 도움과 협조를 얻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았다. 우선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을 찾아 할머니의 병원 치료비를 지원받고, 서울스마일센터의 도움으로 심리상담 서비스와 임시거처를 지원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할머니 주거지 이전을 위해 금천구청과 LH공사의 관련 부서를 찾아다니며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이 경위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해당 기관들도 난감해했다. 선의로 무조건 주거지 이전 결정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관련 기관들 나름의 기준과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수월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관계 기관들의 이해와 도움을 얻어 잘 해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길을 닦아 놓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이후 보다 나은 제도와 시스템으로 정착하기 위해 미비한 부분들을 조금씩 보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보였다.
올해 처음으로 피해자 보호 담당 경찰관이 배치된 것은, 이 경위의 이번 경우처럼 가해자 처벌뿐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과 지원에도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경위는 “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은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기에 경찰이 직접 찾아가 서비스한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그들이 범죄 피해에서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잘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양한 지원 서비스 알리는 노력도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활동이 과거에도 경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경찰 업무의 특성상 가해자 처벌에 중점을 두고 범죄 예방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보복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또 경찰 스스로가 시민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맺은 결실이 피해자 보호 담당관 제도다.
이 경위는 “범죄 피해자 개개인에 맞는 지원과 대처가 이전보다 더 잘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제 활동을 시작한 지 2개월이 조금 넘어 시민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보호 담당관을 알리는 일에도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 담당관은 상담신청을 하는 피해자에게 관계기관들의 협조를 얻어 법률지원 및 의료지원, 심리치료 등을 도와준다. 직접적인 도움 요청이 없더라도 피해자가 도움을 필요로 할 것 같으면 보다 적극적으로 담당 경찰관이 현장에서 피해자 지원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주거지 이전이 결정된 피해자 할머니가 나를 친아들처럼 대해주신다”고 웃는 이 경위는 “경찰생활 25년 중 요즘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능력이 되는 최대한 피해자들을 직접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