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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최정숙 기자) 지난해 11월 코레일(한국철도공사·KORAIL) 상임감사로 선임된 임영호 전 의원. 오랜 행정 경험과 정치 경력을 토대로 4개월째 감사직을 맡고 있다.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행정고시 합격, 18대 국회의원 역임 등 그의 이력은 남부럽지 않다. 하지만 그의 삶이 계속 평탄했던 건 아니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이를 악물고 노력한 끝에 현재 자리까지 올라왔다. 남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자수성가형 인물인 셈이다. 이런 그의 숨겨진 인생역정이 궁금했다.
# 과거: 불우했지만 놓지 않았던 공부의 끈
임영호 감사를 만난 곳은 6일 서울역 인근이었다. 기차와의 인연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는 대전역에서 금산 방향으로 1km 정도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어렸을 적, 멀리서 기적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기차 연기를 볼 때마다 기차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동네 아이들과 기차를 구경하러 대전역에 갔었죠. 당시 제가 본 기차는 ‘미카 증기기관차’였어요. 기차를 보고 마냥 좋아서 해 지는 줄도 모르고 구경했어요. 그러다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차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안겨줬습니다. 이때부터 기차와의 사랑이 시작됐어요.”
그는 1955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환경 탓에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돈을 벌어야 했고, 9급 공무원이 됐다.
“젊은 시절 고독하고 곤궁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는 오히려 저를 든든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독은 깊은 사색을 하게 했고, 삶을 관조하는 능력을 키워줬습니다. 곤궁 또한 어떤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됐습니다.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동생은 유복자였고 위로 형이 세 명 있었는데 맏형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가난 속에 살았습니다. 형제들 모두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죠. 그 와중에 저는 신문배달, 벽돌 일 등을 하면서 12km나 떨어진 학교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대학 진학은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저라도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다녀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성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은 끝내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형님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들었는데 저만 대학을 간다는 것은 하나의 사치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고, 대전지방보훈청에서 9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2014년12월31일 코레일 대전충남본부에서 야간현장안전소통활동 중인 임영호 감사. 사진제공 = 코레일 감사실
힘든 가정환경이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열망은 버리지 못했다. 그는 야간대학을 다녔고, 행정고시에도 합격했다.
“대학을 가진 못했어도 공부에 대한 제 열망은 컸습니다. 당시 2년제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면서 학교생활과 공직생활을 병행했습니다. 버스에 타고 방송통신대 학생증을 내밀었더니 버스 차장이 의아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대학 진학을 인정해주질 않아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설명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임 감사의 공부에 대한 열망은 9급 공무원에 머무르지 않았다. 주변 사람에게 자극받아 더 큰 목표를 세웠다.
“저와 함께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사람 중 7급까지 합격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나도 할 수 있다’,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에 공무원, 수험생, 학생이라는 1인 3역을 시작했습니다. 주경야독 끝에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요. 시내에 나가 공무원시험 합격자 명단이 실린 신문을 사서 제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집으로 오는데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군대에 가서도 쉬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쉴 때 틈틈이 행정학 관련 서적 20권을 정독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큰 자신감을 줬고 행정고시 준비에도 큰 보탬이 됐습니다. 그때 저를 유심히 관찰한 당시 중대장이 후임 중대장에게 인수인계하는 자리에서 저를 칭찬했고, 후임 중대장은 저를 따뜻하게 배려해줬습니다. 제대 후 방통대 2년을 졸업하고 대학 편입학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그리고 야간대학에 편입했습니다. 그때 대학생이 됐다는 기쁨에 빠져 밤늦도록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임 감사는 행정고시 합격 뒤 구청장을 지냈다. 그의 나이 만39세 때로 상당히 젊었다. 남들보다 앞선 아이디어와 열정, 성실함은 지역 주민과 직원들로부터 마음을 얻는 계기가 됐다.
“처음부터 정치를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행정고시 합격 후 부처를 선택할 때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했습니다. 1982년 충남도청으로 발령받아 6년간 근무했습니다. 이후 대전시청에서 주요 국장과 민선 전 마지막 관선 구청장을 지냈습니다. 그러다 주위의 강력한 권고로 직업공무원에 마침표를 찍고 2대 민선 구청장에 도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용기가 어디서 생겼는지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는 구청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3대 때도 역시 큰 표 차이로 당선됐다. “지역민의 기대와 제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소속된 자민련이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김종필 총재께서 교섭단체 구성요건인 20석을 만들기 위해 지지도가 높은 제게 국회의원 출마를 적극 권유하셨습니다.”
▲2015년1월28일 코레일 전남본부 직원들을 만난 임영호 감사. 사진제공 = 코레일 감사실
마음의 준비 없이 17대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결과는 낙선. 선거 한 달 전 예상치 못하게 불어 닥친 대통령 탄핵 역풍을 고스란히 맞았다. 그는 대학 강의를 하며 지냈다. 그러다 18대 국회의원에 다시 도전했다. 결과는 당선. 자유선진당 국회의원을 지내는 4년 동안 이회창 총재의 비서실장, 대변인, 정책위의장을 지내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의원 시절 새벽 4시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아침형 인간’에 앞선 ‘새벽형 인간’으로 살았다. 당직자들 사이에서 그의 부지런함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 현재: “노조는 한 식구다” 화합의 달인
현재 코레일 본사는 임영호 감사가 구청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대전 동구에 있다. 코레일 청사를 자주 봐온 임 감사의 애정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어릴 적부터 기차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던 그는 코레일 조직 내에서 화합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코레일 건물을 지날 때마다 철도가 지역경제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공직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제게 또 다른 인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코레일을 통해 철도산업과 지역경제 발전을 융합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코레일 노조는 강성이다. 2013년 말 철도 민영화 의혹을 제기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던 사건은 이런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에게 노조는 끌어안아야 하는 한 식구였다.
“코레일은 단순한 기업이 아닙니다. 많은 분야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톱니바퀴와 같이 맞물려 돌아가는 종합시스템 기업입니다.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적인 하모니가 깨지는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지난해 취임 이후 두 달 동안 12개 지역본부와 전국 구석구석의 역과 사업소를 방문했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직접 정비업무 등도 체험했습니다. 철도인들은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차와 선로를 정비합니다.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코레일의 구성원 절반 이상이 이렇게 묵묵히 ‘밤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직접 와서 보니 철도 가족들은 그간 흘린 땀과 노력, 열정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 받고 있었습니다. 오랜 경영 적자와 크고 작은 사고, 연례적으로 치러지는 파업 등 겉으로 보이는 부정적인 요소들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도하면 강성노조를 떠올리고 국민의 발을 볼모로 파업이나 하는 이기적 조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철도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지, 다른 공기업에 비해 복지수준은 또 얼마나 낮은지 등이 고려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고생한 것에 비해 외부 평가가 너무 낮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코레일에 부임하고 몇 달 동안 이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철도인들을 위해, 철도 발전을 위해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하는지 말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 종주 중인 임영호 감사.
상임감사는 감사실을 관리하며 본사 및 소속기관 전반에 대한 일반감사 및 중요 사항에 대한 특정감사 등을 시행하기에 사장 못지않은 권한을 가지는 요직이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고 조직 내 화합,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사회 적폐 바로잡기’ 등을 실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취임한 지 석 달간 감사 업무 추진의 뼈대를 완성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사라는 직책은 경영 감시와 견제가 주 기능입니다. 이에 더해 코레일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려 애썼습니다. 두 달 동안의 현장 활동을 마무리한 후 취임 전 생각했던 방향과 현장 활동을 통해 느꼈던 부분들을 고민했습니다. 또 코레일의 적폐를 도려내면서 임직원 스스로 청렴 문화를 향상시키는 자율점검 강화와 현안 사항을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애로사항을 함께 해결하는 ‘경영 컨설팅’, ‘경영활동 지원’이라는 코레일 감사 방향을 정립한 뒤 전직원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이를 공표했습니다.”
그의 ‘정치’ 이력은 감사 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한 행위입니다. 정치인이 이런 목표와 사명감을 갖고 정치를 한다면 어느 정치인이 말한 허업(虛業)은 아닐 것입니다. 감사의 역할은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견제하고 문제를 확인해 시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런 기능은 회사를 위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국회의원은 국정을 견제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합니다. 애국심과 애민정신이 없으면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기 쉽습니다. 범위의 차이일 뿐, 국회의원 때나 상임감사 때나 같은 기능을 한다고 봐야 합니다. 정치인 출신의 장점은 민심을 잘 청취하고 중재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 미래: 그리고 청춘에게
‘기인’으로 불리는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말했다. 또 인생은 잠시 다니러온 ‘소풍’이라고 표현했다. 유한한 인생, 한번 사는 인생을 열심히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영호 감사는 ‘희망, 열정, 인간’ 이 세 가지를 중시한다며 천 시인의 말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시했습니다. 첫째는 희망입니다. 어릴 적 가난과 독학, 낙선을 하면서 겪은 아픔은 제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그 속에서 늘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지금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희망의 씨앗이라고 봤습니다. 대전 동구청장이나 국회의원을 하면서 늘 지역민에게 희망을 파는 지도자이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열정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한 번 목표를 정해 놓으면 거기에 몰입해 자기의 열정을 쏟는 것입니다. 자신의 길을 가는 데 열정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저를 ‘노력파’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인간입니다.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삶이 때로는 힘들고, 더러는 아프고, 간혹 괴롭더라도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작더라도 저로 인해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살기에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희망과 열정으로 살기 좋은 인간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임 감사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보다 할 일이 더 많은 ‘청춘’들에게 그는 치유의 말을 남겼다.
“사실 우리 세대는 성장시대를 살아서 일자리가 많았습니다. 삼성, 현대, LG 같은 기업들이 발전을 시작할 때였으니까요. 지금 젊은 세대들을 생각하면 기성세대들이 미안합니다. 제가 힘든 환경에서 살았지만 지금과는 여건이 달랐습니다. 다만 힘들어도 지금 잘 안 된다고 절망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갖고 길게 보면 맞는 일자리가 있습니다. 꾸준히 노력하면 어디엔가 좋은 자리가 있을 겁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입니다. 자신만의 기능(재능)을 가진 사람이 점점 인정받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남들과 배경이 다르다고 실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계속 찾아보면 자신에게 맞는 인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 세대의 일자리 창출, 즉 자신의 인생을 찾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손기정 세계제패기념 전국마라톤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임영호 감사.
그가 달리는 이유
“정치는 운칠기삼, 마라톤은 운무기십”
운무기십(運無技十).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다. 정치를 흔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부르는 데 착안한 단어다.
임 감사는 매년 두 번씩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경기 출전을 목표로 했다. “그 나이에? 그 몸매에?” 하면서 말리는 친구들도 많았다고 한다.
“목표를 정하고 평소에 노력한다면 그 만큼 결과로 나타나는 운동이 마라톤입니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는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운도 따라야 하는 다른 운동과는 달리 마라톤은 꾸준히 노력하면 완주할 수 있는 정직한 운동입니다. 마라톤은 우리 인생과 비슷합니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남을 무작정 따라가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나 완주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정치가 운칠기삼이라면, 마라톤은 운 ‘0’이고, 기는 ‘10’입니다.”
요즘은 마라톤에 이어 자전거를 즐긴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4대강 자전거길을 따라 전국 종주도 했다. 지난해 기자도 남양주와 양평을 지나는 남한강 자전거길을 가본 적이 있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조금 놀란 기억이 난다.
“자전거를 한 번 타면 120km 정도 갑니다. 120km는 서울에서 대전을 못 미치는 거리입니다. 전국 종주도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4대강길을 지나면 자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우리나라 자연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자연을 벗 삼아 운동 하니 더욱 건강해지는 기분도 들고요.”
“대제국 이룬 로마의 포용력을 영화 ‘벤허’에서 배웁니다”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는 감명 깊게 본 영화로 ‘벤허’를 꼽았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벤허는 1959년에 제작됐다.
영화 속 주인공인 유대의 귀족 유다 벤허(찰톤 헤스톤 분)는 어릴 적 로마인 친구 멧살라(스티븐 보이드 분)에게 모함당하고 집안이 몰락한다. 하지만 나중에 사랑으로 모든 걸 용서한다. 전차 경기 장면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벤허는 고등학교 때 처음 봤어요. 예수님(예수 그리스도)이 탄생한 지 얼마 안 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죠. 친하게 지낸 친구가 거짓말로 자신의 가족들을 몰락시켜 복수심에 불탔지만 결국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내용입니다. 로마의 역사와 인간의 참모습을 보여줬죠.”
벤허는 당시 노예 제도를 포함한 로마의 역사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유대 민족은 로마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노예로 팔려간 벤허는 새 로마 사령관 퀸투스 아리우스를 구해주고 그의 양아들(양자)이 된다.
로마의 공화정에서는 귀족 대표인 집정관과 원로원, 평민을 대변하는 호민관과 평민회가 공존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시초로도 불린다. 대제국인 로마에는 식민지인 속주가 많았다. 속주마다 통치 방식은 달랐다.
“로마는 다른 지역을 점령하면서 현지 주민을 무조건 노예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유대 지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민권도 주고, 양아들 제도도 이용했습니다. 유대의 부호인 벤허는 친구의 모함을 받아 노예로 전락했지만, 사령관을 구해주고 양아들로 들어가 재산을 상속 받았습니다. 대제국인 로마의 내부가 평화로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점령국에 따라 지방자치를 인정해주거나 능력 있는 사람들을 양자로 삼았던 제도 덕분입니다.”
로마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을 양자로 삼아 황제 자리까지도 물려주는 제도 덕에 영토 확장을 하면서 문화를 발전시켰다. 임 감사는 벤허 속에서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부분을 찾았다.
“로마 시민이 되는 데는 의지가 중요했습니다. 내가 로마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면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벤허에서 볼 수 있듯이 로마는 민주주의를 펼쳤고 능력 있는 자들의 신분 상승이 가능했습니다. 패자를 포용하고 원수를 용서하는 모습까지 ‘벤허’는 우리 사회와 정치가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영화입니다.”
최정숙 기자 most_silen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