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멕시코]고압적 총독궁이 대통령궁으로 쓰이니
피식민 전통을 버리지도 살리지도 못하고 쇠락만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3일차 (멕시코시티)
국립역사박물관 차풀테펙 궁성에 들어서다
멕시코시티 날씨는 습도가 낮아 참 쾌적하다. 오늘 아침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지하철로 차풀테펙 가는 길은 아직 출근 인파가 남아 있어 붐빈다. 차플테펙은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시내 한 복판에 쾌적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레포르마 거리가 공원 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르며 시원하게 뻗어 있다.
우선 찾아간 곳은 국립역사박물관이자 차플테펙 궁성(Palacio de Chapultepec)이다. 긴 언덕을 한참 올라간 곳에 자리 잡은 네오클래식 양식의 화려한 궁성은 왕궁과 대통령 거주지였던 곳이다. 아스텍의 요새이기도 했던 곳이어서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마침 국가 탄생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국가 설립 당시 사용했던 지도는 현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뉴멕시코 주가 확연히 멕시코 영토였던 것을 보여준다.
멕시코 근현대사를 바라보다
멕시코 독립전쟁(1811년)을 묘사한 대형 벽화를 시작으로 프랑스혁명이 멕시코 독립운동에 끼친 영향, 멕시코 독립운동이 중남미와 전 세계에 미친 영향, 미국의 팽창주의에 따른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과 그로 인한 멕시코의 영토 할양, 멕시코 민주혁명 등 우리에겐 낯선 멕시코 근현대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또한 의적(義賊), 혁명가, 농민 운동가 등 다양한 타이틀로 알려져 있는 판초 비야(Francisco Pancho Villa)와 사파타(Emiliano Zapata)의 기록이 전시돼 있다.
▲소칼로 광장과 그 뒤로 보이는 대통령궁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러시아 모스크바에 이어 두번째로 크다는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 사진 = 김현주
멕시코 독립운동
멕시코 독립은 유럽 대륙의 정치 변화를 민첩하게 틈타서 이뤄졌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절대 군주가 붕괴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졌고, 이후 등장한 나폴레옹이 1808년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해 스페인의 카롤로스 왕을 감금하고 스페인을 직할지로 삼는 수모를 안긴다. 이에 힘입어 기운이 쇠잔해가는 노제국 스페인을 상대로 멕시코 독립혁명 운동이 촉발된다.
멕시코 독립은 곧바로 라틴아메리가 전역에 영향을 미쳐 이후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에 불을 지폈다. 30만 명의 본국인을 보내 전 지구 육지 면적의 15%에 해당하는 거대한 대륙을 통치했던 스페인은 카리브해 지역 몇 개 섬나라를 제외하고는 허망하게 식민지를 거의 대부분 잃고 말았다.
▲차풀테펙 궁성 전경. 현재 역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 = 김현주
역사박물관을 나올 무렵 한 무리의 단체 관람 학생들이 나에게 미소를 보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모두 인디오(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이다. 곧이어 다른 한 무리의 단체 관람 학생들과 맞닥뜨린다. 모두 백인들이다. 짧은 순간에 겪는 이 묘한 인종 대비가 멕시코에 대해서 많은 것을 얘기해 주는 것 같다.
고고학 유물들을 간직한 국립인류학박물관 현장
이어서 차풀테펙 공원 서쪽 레포르마 거리 건너편에 있는 국립 인류학박물관을 찾는다. 박물관 마당에 우뚝 선 길이 84m의 초대형 차양(canopy)은 단 하나의 기둥 위에 얹혔는데, 단일 콘크리트 구조물로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1964년에 지어진 거대 규모의 박물관에는 고고학 유물들과 멕시코 원주민들에 관한 민속학 자료가 각 지역별로 충실하게 전시돼 있다. 스페인 침략 과정과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따라 들어온 기독교가 토착민들에게 포교되는 과정도 상세히 묘사돼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소칼로 광장
인류학박물관 바로 앞거리에 나오니 소칼로행 버스가 온다. 1520년 코르테스가 건설한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시티의 중앙 광장으로, 정식 명칭은 헌법 광장이다. ‘소칼로’는 기반석이란 뜻으로, 광장 주변의 파괴된 아스텍 건물에서 가져온 돌로 포장을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메트로폴리타나 성당과 대통령궁 이외에도 각종 공공건물, 레스토랑, 가게로 둘러싸인 광장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곳이다. 넓은 광장은 각종 반정부, 반전 시민단체들의 깃발과 구호로 가득하다.
▲소칼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입구. 웅장한 크기를 자랑한다. 사진 = 김현주
지략이 뛰어난 코르테스와 몬테수마 왕의 저주
코르테스는 지략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예전에 아스텍에서 추방된 하얀 피부를 가진 신이 바다의 세계에서 들어온다’는 아스텍 전설에 등장하는 바로 그 신으로 둔갑해 인구 2000만의 아스텍 제국을 멸망시켰다. 아스텍은 젊은이들을 잡아다가 생피를 바치는 풍습 때문에 주변 부족들의 반감을 사던 차, 코르테스는 그와 같은 정서에 힘입어 주변 부족들을 규합해 아스텍왕 몬테수마를 처형함으로써 제국을 멸망시킨다.
▲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멕시코 혁명 영웅 이달고의 죽음’. 국립역사박물관 소장. 사진 = 김현주
호수 위 인공 섬에 건설된 아스텍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철저히 파괴됐고, 호수를 메운 바로 그 자리에 멕시코시티를 건설한 것이다. 멕시코시티는 수질이 극히 나빠 외국인들은 심한 설사를 겪게 되는데, 이곳 사람들은 몬테수마 왕의 저주라고 한다.
엄격한 검색 거쳐 도달한 대통령궁
대성당은 어떤 연유인지 기울어져 있다. 300년 넘은 역사가 묻어나는 성당 내부는 대리석 바닥과 성화, 예수와 제자들의 동상으로 가득하다. 마침 미사가 진행 중이고 성가대의 찬송이 울려 퍼진다. 성가대가 성당 중앙에 자리 잡아 사방으로 소리가 전달되는 것이 특이하다.
이어서 인접한 대통령궁으로 들어간다. 입구의 검색이 매우 엄격하다. 역대 스페인 총독의 거주지였고 이후 대통령 관저로 쓰이는 곳이다. 곳곳에 독수리가 뱀을 물고 있는 멕시코 국기의 문양이 자주 눈에 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거대 벽화는 멕시코 국가 탄생의 과정을 장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류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고대 톨텍(Toltec)인. 한국인 모습을 많이 닮았다. 국립인류학박물관 소장. 사진 = 김현주
또한 ‘아직도 건설 중인 나라’라는 제목의 독립 20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국립역사박물관 전시 내용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식민지 시대에서 독립, 전쟁, 혁명으로 이어지는 멕시코 역사가 기록돼 있다. 멕시코 역사는 19∼20세기 격동의 세계 근현대사와 직결돼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대통령궁의 마지막 전시실은 건국 조상들의 유골을 모신 모솔레움(영묘, Mosoleum)이다. 건국 조상들 중에는 멕시코 어디를 가도 거리 이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달고(Hidalgo), 후아레스(Juarez) 등의 이름들이 많다. 모두 크리올로(criolo), 즉 멕시코에서 태어난 유럽 백인의 후손들이다.
테노치티틀란에서 서글픈 역사를 느끼다
바로 그 옆 템플로 마요르는 아스텍 사원으로서, 테노치티틀란 중앙에 위치한다. 거의 땅속에 영원히 묻혀버릴 뻔 했으나 1978년 우연히 조각물이 발견된 뒤 여러 차례 발굴 과정을 거쳐 옛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1519년 멕시코 동해안(대서양안) 베라크루스에 상륙한 코르테스가 1520년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해 우유부단한 몬테수마 왕을 살해하고 문명을 말살한 흔적을 접하는 기분이 서글프다.
▲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멕시코 혁명 영웅 이달고의 죽음. 국립역사박물관 소장. 사진 = 김현주
무관심 속 쇠락해 가는 역사 지구
역사 지구의 건물들은 유럽 여느 도시에 있었다면 뽐내기에 충분한 것들이지만 여기는 관리 부실과 관심 소홀 속에 쇠락해 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필리핀 곳곳에 흩어진 스페인 식민지 시대 역사 유적들이 버려져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굳이 내세우고 싶지 않은, 차라리 애써서 잊고 싶은 그런 무관심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