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 ‘기업가정신과 창조경제의 미래’ 보고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9일 두산그룹이 주도하는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학생, 기술명장 등과 기계 산업의 발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이진우 기자) 창조경제는 산업 간 경계의 담을 허물고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의 창의적 융·복합을 이끌어 냄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가는 새로운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핵심에는 도전을 통해 창의와 혁신을 견인하는 기업가정신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업 분야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꼽을 수 있다. 여러 지역의 창조센터 출범식에 대통령이 참석해 왔는데, 지난 3월 16일 부산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는 “창조경제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며 감격했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해외순방 과정에서 3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지난달에는 남미의 브라질 등에까지 한국산 창조경제 모델을 수출하기로 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 탓에 애초 박 대통령의 대표적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는 공허하게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창조경제를 앞세워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는 모양새다. 특히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한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문제가 결코 창업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은 창업의 천국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사례를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정부-기업 차원의 각종 지원 이외에 기업가정신이 첨가돼야 창조경제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4월 15일 내놓은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의 평가와 창조경제의 미래’ 보고서를 토대로 창조경제의 현재와 과제를 진단해본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의 ‘혁신적’ 회의실. 벽면이 온통 화이트보드다. 사진 = 이성호 기자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창조경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그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지적이 빗발쳤다. 오죽했으면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정치, 김정은의 속마음’이 한반도의 3대 미스터리에 뽑혀 인구에 회자됐을까 싶다. 더욱이 ‘창조경제가 뭔지는 창시자인 박 대통령도, 주무장관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전혀 모른다’는 비아냥도 들렸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이제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가시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뚜렷한 구체적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또한 대기업을 억지로 동원한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사업성을 판단할 수 있으며 돈도 가진 대기업이 창업 지원을 한다는 발상은 꽤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일종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이다. 전국 17개 광역시와 도에 센터를 설치해 이곳에 입주하는 예비 창업자와 중소·벤처기업들의 사업화를 지원한다. 여기에 대기업들이 가세해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중소·벤처기업들을 연계하면서 지역 내 창조경제 생태계를 조성한다. 대기업들의 우수한 노하우가 보태져서 지역 인재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창업준비금 지원 및 아이디어의 제품화에 필요한 기술과 판로까지 컨설팅한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대구를 시작으로, 대전, 전북, 경북에 이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는 광주, 충북, 부산, 경기, 경남 등 전국 9개 지역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잇따라 문을 열면서 속도를 내고 있다.
▲김선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사진 = 이성호 기자
정부는 올 상반기 내로 전국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모두 개소한다는 계획이다. 그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여러 말이 나오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유권자 표심을 의식해 너무 앞선 얘기를 하고 다니다가 기업들과 다소의 불협화음을 겪는 일도 발생했다. 또한 대기업들도 지나친 성과주의에 매몰되고, 지자체의 보여주기식 사업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미래가 있다?
창조경제는 이제야 첫 단추를 꿴 것에 불과하다. 그동안 과거 정권들이 반복해왔던 보여주기식 경제정책의 한계를 뛰어넘고, 소위 ‘저성장-저소득-저수익률’ 현상으로 대변되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진정한 해법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한국경제연구원(이하 연구원)은 “창조경제는 산업 간의 경계를 허물어 기술과 지식의 창의적 융·복합을 이끌어 냄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가는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이라고 제시하면서 “이러한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핵심에는 창의와 혁신을 견인하는 기업가정신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연구원은 창조경제TF를 구성해 산업 간 융·복합을 통한 시장의 확대 및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기업가정신의 발현이 가장 중요한 성공요소이며, 혁신적인 경제발전 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기업가정신은 성공적인 창조경제의 구현을 이뤄내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기업가정신의 발현에서 미흡한 측면에 관한 정책적 보완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더욱 함양된 기업가정신이 창조경제를 구현해 나가는 미래에는, 보다 더 긍정적인 모습을 드리우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구원은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의 평가와 창조경제의 미래’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이 지난 2년간 예년에 비해 큰 발전을 이뤄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모험 자본, 공정 혁신, 제품 혁신 등의 측면에서 기업가정신이 강화돼 온 긍정적인 모습들이 관찰됐다는 것이다.
▲유기호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사진 = 허주열 기자
다만 연구원은 “다른 주요국들과 비교해 볼 때 기회 인식, 문화적 인식, 기회적 신사업, 경쟁, 국제화 등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점들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기업가정신이 창조경제 달성이라는 목표를 추진하는 데에 있어 충분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생산적 기업가정신의 측정을 위해 사용하는 GEDI(Global Entrepreneurship & Development Index)상에서 나타난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의 수준과 지난 2년간의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창조경제를 위해 첫 걸음을 내딛던 2013년, 우리나라의 기업가정신은 창조경제를 원활히 추구해 나가기에는 미흡한 수준이었다. 창조경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기 전인 2012년에 비해서도 오히려 후퇴했다.
기업가정신 취약 항목…정책으로 극복해야
우리나라는 GEDI 전체 순위에서도 지난 2012년 26위에서 2013년에는 37위로 추락했으며, 대다수 세부 항목에서도 미국, 이스라엘 등 기업가정신 선진국과의 격차가 증폭됐다. 이는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제력에 비해 낙후한 수준이며, 타 국제지수에서 나타나는 국가 경쟁력에 비해서도 뒤쳐지는 수준이다.
2013년에 생산적 기업가정신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던 미국은 2014년에도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영국, 독일, 이스라엘 등의 국가들도 계속해서 1분위 혹은 2분위에 위치하고 있다. 생산적 기업가정신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국가들은 대체로 시장의 원칙에 충실하고 자유로운 시장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부의 투명성 또한 높은 수준이다. 대다수가 미주 및 서·북유럽 국가들이며 일부 남미 및 중동 국가들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2014년 현재 중상위권(8분위 중 3분위)에 속해 있으며, 이는 스페인, 일본, 사우디와 같은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분류됐다. 또한 우리나라는 주요국들과 비교해 GEDI 거의 전 세부항목에서 뒤쳐지고 있으며, 특히 기회 인식, 문화적 인식, 기회적 신사업, 경쟁, 그리고 국제화 항목 등에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들 각 항목들의 시사점은 무엇이며,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로 개관한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사진 = 허주열 기자
기회 인식(Opportunity Perception)은 잠재적 기업가가 거주 지역 내에서 인식할 수 있는 창업 기회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 항목이 취약하다는 것은 창업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시장의 규모가 작거나 지역별 도시화가 부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종 진입장벽으로 막혀있는 시장규모의 확대 가능성을 확충하고 지역별로 특화된 산업 중심지(hub)를 육성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적 인식(Cultural Support)은 기업가에 대한 국민의 인식 및 친근감 정도와 국가의 부정부패 수준을 측정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정책목표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를 통한 기회부여가 상대적으로 크며 기업가에 대한 불신 정도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가가 공정한 시장경쟁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들에 대한 부정적 사회인식을 타파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부정부패를 근절할 수 있는 규제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과감한 민영화를 통해 공공기관을 통한 부당한 이익 기회를 소멸시킬 필요가 있다.
기회적 신사업(Opportunity Startup)은 생계형 목적이 아닌 기술력과 비교우위에 근거한 창업과 규제의 효율성을 고려한 경제적 자유도를 측정한다. 창업 등 각종 경제활동을 막고 있는 규제가 여전히 만연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창업이 시장 확대를 꾀하는 혁신적 창업이 아닌 최소생계비를 위한 생계형 창업이라는 의미다. 또 지역별로 발생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규제, 즉 공무원의 재량권으로 행사되는 규제에 대한 심도 있는 개혁방안의 도입 및 추진이 필요하다. 특히 생계형 창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창업시장을 기술, 제품, 서비스의 특화를 통해 시장의 확대를 꾀하는 혁신적 창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경쟁(Competition)은 기존 기업들의 시장지배력 및 제품의 차별화를 통한 시장 구축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시장의 고착화 현상으로 인해 기존 제품과 서비스가 영위하는 시장지배력이 높아졌으며, 제품이나 서비스의 혁신을 통한 시장지배력은 낮아졌다는 의미다. 기존 제품과 서비스가 영위하는 시장지배력은 대다수 시장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규제로 가능해지며, 허가산업을 포함한 전 산업에 걸쳐 시장자유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제품과 서비스의 혁신을 통한 시장지배력과 규제를 통한 시장지배력을 구분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공정거래법을 선별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기업가정신으로 정부주도 과오 개선을”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는 기업들의 내수시장 의존도 및 수출능력과 내수시장의 세계화 정도를 측정하는 항목이다. 세계화와 시장개방이 법제화에서는 이루어졌으나,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시장장벽이 존재해 외국기업과의 공정한 시장경쟁을 통한 산업경쟁력 제고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출시장 등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산업에 대해 과감히 시장개방을 추진하고 외국인 투자에 친화적인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윤상호 연구위원은 “기업가정신은 자율적·생산적·혁신적 활동을 증진시키고 시장기능을 활성화시켜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며 “창조경제가 자칫하면 시장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배제된 채 정부 주도형·정부 개입형 정책들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과오를 개선해 나가는 데에 기업가정신이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바른 방향으로 기업가정신이 표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장 중심형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의 정비와 개혁이 필요하다”며 “정부 지원정책에 대한 의존은 산업의 고른 발전을 저해하고 한계산업·부실기업의 과밀화 등 기형적 성장 풍토를 조성해 갈수록 민간의 경제활동 동기를 퇴색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경제 원칙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만이 기업가정신을 자율적이고 생산적이며 혁신적인 경제활동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함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진우 기자 voreo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