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CNB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인숙 의원. 사진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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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최정숙 기자) “아직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지역민들이 의원들을 욕하면 저도 맞장구치면서 문제의식을 느끼니까요. 초선 의원이라 한계는 있어요. 그래도 지역민들이 지적해주시는 것을 들으면서 많이 고치려 하고 있지요.”
소아심장 전문의 출신인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서울 송파갑). 국회의원이 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는 수 십 년 동안 소아심장을 연구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바쁘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국회에 입성한 이후 바쁜 수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악수를 하고 그들의 얘기를 듣는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 당직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
빈틈없어 보이지만 솔직하고 털털한 ‘워킹 맘’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유전체연구센터장,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 국내 최초 선출직 여성 의대학장…. 몇 건의 이력만 봐도 그는 빈틈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박 의원은 1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대화 내내 솔직하고 털털한 ‘워킹 맘(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제가 화를 좀 잘 내요. 불의를 보면 못 참거든요. 어릴 때 남과 다투면 상대방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씩씩대기만 했죠. 밤에 잠들기 전에 생각하다가 적당한 대꾸가 그제야 생각나면, 그때 곧바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속상해 하고는 했어요. 비상식, 부정, 부패와 불쌍한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을 알게 되면 울분을 참지 못했죠.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야 마음이 편해졌어요. 푸는 방법은 주로 글쓰기죠.”
박 의원은 그동안 참 많은 기고를 했다. 이를 모아서 책도 출간했다. 국회에 들어와서는 제 목소리를 내며 불의에 대항하고 있다. 물론 초선의원으로서의 어려움도 많다.
▲2013년 7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풍납토성 피해주민 증언대회’를 주최한 박인숙 의원(앞줄 오른쪽 다섯 번째). 사진제공 = 의원실
“저는 지금까지 외부에서 일하다가 국회에 들어온 경우죠. 저와 나이는 비슷하지만 의정활동을 일찍 해서 선수가 높은 사람도 있고요. 다 장단점이 있어요. 국회의원을 오래 하면 실제 국민들의 생활을 모를 수 있거든요. 저도 제 분야만 하다보면 다른 쪽을 모를 때가 있고요. 강(江)의 한쪽만 보고 있으면 다른 쪽이 보이지 않지요. 초선 의원들은 다선 의원들에게 밀려 제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초선들은 때가 덜 묻었을 수도 있어요(웃음).”
박 의원이 생각한 방법은 국회의원을 두 번 하고 일 년 동안의 재충전이다. 민심을 더 가까이 청취하는 ‘안식년’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국회의원을 두 번하고 일 년 쉬는 겁니다. 그 동안 생활 속에서 민심을 직접 청취하는 거죠. 관공서와 직접 부딪혀도 보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면서 아이디어를 얻고 국민들의 애환을 느껴 보는 거죠. 안식년의 개념이 국회에도 있으면 좋겠어요. 재충전 기간에 정책 개발도 하고 민심도 들을 수 있도록 말이죠. 저처럼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분야에 대한 법안 발의를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제도로는 끊임없이 지역에 가야 하고 의정활동도 해야 하니 굉장히 바쁘죠. 현실적으로 한 번 쉬면 다시 들어가기 힘들잖아요. 몸이 하나인 것이 안타깝습니다.”
국회의원들은 4년차가 되면 어느 때보다 바쁜 것이 사실이다. 지역민들로부터 재평가를 받는 총선 준비로 하루 종일 지역에 살다시피 하는 의원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다보니 본연의 업무인 입법 활동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박 의원은 평소 이런 것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저 같은 경우는 대정부질문을 하면 끝까지 앉아 있어요. 어떤 사람은 시작할 때 오거나 출석 체크할 때만 오는 경우도 있어요. 대정부질문도 의정활동의 하나입니다. 어떤 얘기가 나오고 민심이 어떤지, 문제점은 뭔지 현장에서 듣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습니다. 몇 시간씩 앉아 있다가 표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토론도 한 번 안 하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남의 법안에 서명하고 이런 것들은 지양해야 합니다.”
그는 새누리당 쇄신파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초선으로서 어려움이 있다지만 제 목소리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해야 할 때는 한다.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특검 도입과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자진 사퇴 촉구, 김무성 대표 등 지도부가 나선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공무원 설득을 요구한 것 등이 그렇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오른쪽 두 번째)와 대화하는 박인숙 의원. 사진제공 = 의원실
“아침소리에서 한 얘기를 당 지도부에서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지적을 하면 반영될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소리도 그렇고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도 개혁적인 제 목소리를 많이 냅니다. 건전한 방법과 언어로 소통하고 비판하는 거지요.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봉숭아학당과는 다릅니다.”
전공 살린 법안 발의 다수…의정활동 우수의원 선정되기도
박인숙 의원은 자신의 전공을 살린 관련 법안도 많이 발의했다. 국회의원이 된 지 얼마 안 돼 발의한 법안은 희귀난치성질환 관리 법안이다.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을 맡은 바 있는 그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지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이를 시작으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서울대병원 설치법 개정안, 진료 중인 의료인 및 환자의 폭행을 방지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도 내놓았다.
최근에는 박 의원이 발의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통과돼 주목 받았다. 해당 법안은 CCTV 설치를 의무화 하는 내용을 담았다.
“어린이집 안에서 아동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어요.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 원생과 보호자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인천 어린이집 같은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아동폭행·학대 사건이 이를 계기로 근절됐으면 좋겠어요.”
▲창덕여고 급식용 하수관을 점검하고 있는 박인숙 의원(왼쪽 두 번째). 사진제공 = 의원실
사실 어린이집도 문제지만 가정 내 폭행이 더 큰 사회적 위험요인이다. 하지만 가정 폭력은 신고도 쉽지 않고 처벌은 더욱 어렵다.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초 새누리당은 아동학대근절특별위원회(위원장 안홍준)를 구성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20년 전 일인데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한 아이의 심장병을 고쳐줬어요. 그런데 나중에 추락사고가 나서 사망했죠. 당시 아이의 태도가 이상했어요. 온 몸에 상처가 있어서 신고했죠. 하지만 별 일 없다며 그냥 넘어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미국은 가정폭력이 있을 때 담당 의사나 옆집 사람이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습니다. 우리나라도 가정폭력을 막기 위해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의 성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박 의원은 한국여성의사회장도 역임했다. 당시 보고 받은 수많은 성폭력은 그가 관련 법안을 만들게 했다.
“제가 정신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로 너무 끔찍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정 성폭력은 굉장히 많습니다. 아는 사람은 물론, 친아버지와 친오빠로부터 당하는 성폭력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도시보다 시골에서 더 많이 발생합니다. 문제는 당하는 아이들이 그걸 모른다는 거지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처럼 모릅니다. 나중에 학교를 들어가고 나서야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아빠를 고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19대 때 관련 법안을 발의했어요. ‘성폭력 범죄자의 외과적 치료법(물리적 거세)’ 제정안을 제출했다가 말도 안 된다며 난리가 났죠. 제 이름 치면 관련 검색어로 함께 떠요. 비록 철회 됐지만 성범죄자들의 인권이 힘없는 아이들의 인권보다 중요한지 아쉬움이 남습니다.(박 의원이 제안한 물리적 거세 대신 국회는 화학적 거세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박 의원은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다. 3년 연속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올해는 대한민국 유권자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12월2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박인숙 의원이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새누리당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가리키는 단어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힘든 단어이기도 하다. 박인숙 의원은 의사 시절부터 이를 강조했다. 모든 의사가 자선단체 한두 곳의 후원자가 돼 매달 단돈 1만 원씩이라도 후원하기 등을 제안해 왔다.
“기부문화 달라져야” 1인가구 모여사는 멀티하우징 해법을 제시
“누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당신이 이 만큼 고생하고 노력한 걸 보니 장사했으면 재벌이 됐을 것’이라고요. 저는 의사든, 국회의원이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후상박(下厚上薄), 고위직은 덜 받고 하위직은 더 받는 것이 강화됐으면 합니다. 사실 부자들은 자식들도 다 밥벌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연금도 따로 들고, 저축도 있고 부동산도 있고. 연금이 없다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생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연금을 들죠.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과 연락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연금은 물론 어디 가서 뭘 할 수도 없습니다.”
박 의원은 현재의 기부문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기부문화를 바꿔야 해요. 우리나라는 기부하는 사람이 너무 힘들어요. 지역구에 할머니 한 분이 혼자 사십니다. 한 교회에 집을 기부하기로 했어요. 살아 계실 동안에는 그 집에 거주하시는 거죠. 그런데 기부한다고 하니 자녀들은 할머니를 찾지 않고, 살고 계시니 세금은 계속 내야 하고…. 이런 선의의 기부자를 위해 법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쉽지 않네요.”
기부 문화에 대한 색안경도 문제다. 선의로 한 행동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악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멀티하우징’이다.
“뭐든지 나쁘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주식을 기부하면 돈을 감추려 한다고 의심하고. 때문에 ‘멀티하우징’이 필요합니다.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등은 전기 값도 못 낼 때가 많습니다. 시범사업으로 그런 사람들을 수용하는 거죠. 가령 원룸 형식으로 200명이 살 수 있는 건물을 짓는 겁니다. 여성이 지하방에서 문 열어놓고 자면 성폭력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원룸 형식으로 살 건물을 지으면 안전하고 생활비도 적게 들어갑니다. 제가 돈이 있으면 그렇게 할 텐데요. 재벌들이 그런 거 지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는 기부 문화가 달라져야 합니다.”
박인숙 의원과의 인터뷰 내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동네 아주머니와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솔직한 표현은 그대로 쓸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마나한 소리를 왜 하나요.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이 제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제 식구 감싸기는 그만, 자신에게 메스를 대라.’ 송파의 주치의, 박 의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의료계에서 메스를 잡던 박 의원은 이제 한국 사회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바보의사 박인숙의 끝나지 않은 성장통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후년에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잊지 못할 아이들… “아픈 이들 위해 제도 개선”
박인숙 의원이 의사 시절, 수술 받은 아이들 중 일부는 국회의원이 된 지금도 연락을 한다. 의원실 한 쪽에는 심장 수술을 받은 아이가 선물한 그림이 놓여 있다.
“제 전공이 신생아와 영유아의 복잡 심장기형이다 보니 불행히도 수술 전후 사망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됐어요. 그때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죠. 기억에 남는 아이와 가족들이 많아요. 한 번은 아이가 사망했는데 그 부모가 찾아왔어요.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더군요. 정말 훌륭한 부모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어요. 함께 눈물을 흘렸죠.
▲송파 지역 초등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박인숙 의원. 사진제공 = 의원실
이런 일도 있었어요. 토요일 저녁이었는데 누군가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더군요. 심장병 가진 아기를 낳았다고 시집에서 쫓겨났다는 엄마였습니다. 또 외래에서 마지막 순서로 들어와 한없이 울던 엄마, 부부 모두 중증 장애인으로 산모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어렵게 출산했는데 생후 1년 만에 심장병으로 사망한 아이도 있었지요.
태아 초음파검사에서 심장병이 발견된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도 치료해 잘 길러보겠다고 했는데 막상 태어나자 손가락이 기형인 것을 알고는 입양시켜 달라고 조르다 끝내 아이를 병원에 버리고 간 젊은 부부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불임시술로 어렵게 얻은 세쌍둥이 중 한 명만 온전하고 다른 두 명은 뇌성마비와 복잡심장병이었는데도 세 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우고 있는 젊은 부부와 조부모님들도 있었습니다. 쌍둥이 모두 염색체이상과 심장병을 가져 수술 등 재활치료를 해가면서 힘겹지만 열심히 사는 장한 부모도 있었죠.
뇌성마비로 꼬인 다리를 펴주려면 보톡스 주사를 계속 맞아야 합니다.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치료를 포기하는 부모도 있었고요. 어릴 때는 아무 증상이 없거나 가난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심장병을 그대로 방치했다가 성인이 된 지금 수술 시기를 놓쳐 시한부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성인 환자들도 기억납니다.
다운증후군과 동반된 심장병을 갖고 출생한 아이를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 둘째 아이를 갖지 않는 목사의 부인이었죠. 치료 가능한 심장기형임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거부하고 만류하는 의료진을 뿌리치며 퇴원했다가 아이가 계속 살아 있으니 다시 병원에 데리고 와 결국 수술 받고 완쾌된 아이도 있었고요. 산전초음파 검사로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안 상태에서 엄마 자궁 안에서 곱게 키워 출생 즉시 수술 받고 지금은 건강하게 살아가는 아이들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많은 아이와 부모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문득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궁금해지고요. 이런 아이들과 부모들의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목격하며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를 실감했었죠. 국회의원으로 있는 지금, 최선을 다해 이들을 위한 법안을 계속 만들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최정숙 기자 most_silen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