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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부다페스트]왼쪽엔 왕 살던 부다, 오른쪽엔 부르주아의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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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7.16 09:08:15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9일차 (부다페스트)

대중교통이 편리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네플리겟 버스터미널과 메트로는 매우 가까웠다. 걸어서 6~7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어젯밤 택시 바가지요금이 생각나 씁쓸하다. 1일 교통패스를 구입하니(1550HUF = 약 1만원) 대중교통이 편리한 부다페스트에서 하루 종일 걱정 없다. 아침 공기가 매우 선선하더니 곧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터미널에서 메트로 3호선을 타고 칼빈(Kalvin) 광장에 내리니 중앙시장이 코앞이다. 페스트 지역 강변, 자유의 다리와 인접한 재래시장은 건축물이 예술이다. 분주하게 시장이 돌아가고 그 안에서는 서민들의 삶이 북적인다.

부다와 페스트

‘다뉴브강(여기서는 두나강이라고 부른다)의 진주’,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부다페스트는 인구 180만 도시다. 두나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페스트(Pest), 서쪽은 부다(Buda)라고 불린다. 헝가리 인구 1100만 명, 면적은 남한과 비슷하다. 페스트 지역이 중세 이래 상업과 예술 지역이라면 부다 지역은 헝가리 왕들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역사적 유물이 많다. 부다가 헝가리 수도가 된 것은 1241~1242년 몽골 침입 이후다.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야경. 아름다운 경관이 눈길을 끈다. 겔레르트 언덕 위엔 높이 14m 자유의 여신상이 북쪽을 향해 서 있는데, 소련군의 헝가리 해방을 기념해 세웠다. 사진 = 김현주

겔레르트 언덕의 풍경

자유의 다리(Szabadsag Hid)를 건너 부다 지역으로 들어간다. 고깔모자를 쓴 것 같은 성채들이 반긴다. 포르투갈 리스본 외곽 신트라에서 봤던 왕궁은 여기 스타일을 흉내 낸 게 틀림없다. 겔레르트 언덕이 먼저 나타난다. 12세기 헝가리에 가톨릭을 전파하다 순교한 성 겔레르트의 순교 장소인 만큼 커다란 십자가상이 반긴다. 땀 흘려 꼭대기에 오르니 비 오는 두나강과 강 건너 시내 중심가 풍경이 압권이다.

야경이 빼어난 곳이라고 하니 오늘 밤 다시 찾기로 다짐한다. 언덕 위에는 높이 14m 자유의 여신상이 북쪽을 향해 서 있다. 소련군의 헝가리 해방을 기념해 세웠다. 소련은 붕괴했지만 기념탑을 그대로 둔 것은 후세에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기 위해서란다. 겔레르트 언덕은 왠지 조금 음산하다. 편견일 수는 있으나 20세기 초만 해도 술집, 매음굴, 도박장이 가득 찼던 곳이라고 한다. 

▲헝가리 여행 중 겔레르트 언덕 초입에서 뉴질랜드 청년 제이슨을 만났다. 미국 전역을 히치하이킹으로 돌아다녔다는 그에게 한국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진 = 김현주

뉴질랜드 청년 제이슨

겔레르트 언덕 초입에서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이 고향인 배낭 여행자를 만났다. 벌써 6개월째 여행 중이란다. 큰 키에 용모가 수려하고 성품이 좋아 보인다. 여행도 그냥 여행이 아니라 무전여행이다. 미국 전역을 히치하이킹으로 다녔다니 보통 솜씨가 아니다. 아시아 지역에는 중국과 일본을 가봤으나 한국은 아직 못 왔다며 미안해한다. 한국을 방문해야 할 몇 가지 이유를 알려줬다. 제이슨과 여기서 겔레르트 언덕을 지나 왕궁까지 동행한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는데도 큰 배낭을 메고 불평 없이 잘 따라온다.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은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1896년 열린 엑스포 상징 조형물 중 하나다. 광장 중앙엔 높은 탑과 함께 헝가리 선조인 부족장 7인의 기마상이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왕궁과 어부 요새

비 오는 월요일이지만 왕궁엔 관광객이 많다. 누가 내국인이고 누가 외국인인지 분간이 안 간다. 왕궁은 오늘 월요일 휴관이라서 아쉽다. 왕궁 터에는 무엇인가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왕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부의 요새(Haloszbastya)가 있다. 헝가리가 국난에 처할 때마다 두나강 어부들이 자발적으로 외적을 경계하고 방어했던 곳으로, 헝가리 애국정신의 상징이다. 성벽을 따라 세워진 7개의 하얀 고깔 탑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정교하게 아름다운 마차시 성당

왕궁과 인근 지역에서 압권은 마차시 성당이다. 15세기에 완성된 고딕 양식 건물의 아름다움은 여러 가지 원색 타일로 지붕 곳곳에 새긴 독특한 헝가리 문양과 섬세하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돌 조각물에서 절정을 이룬다. 수백 년 전 오로지 인간의 손으로만 만들었다고 믿기에는 너무도 정교하다. 우리나라 경주 불국사 다보탑은 비할 바 아니다. 성당은 헝가리의 가장 위대한 마차시 왕의 대관식이 열린 곳이다. 터키 점령 시 모스크로 잠시 사용됐다가 교회로 되돌아온 성당은 기본적으로 첨탑을 자랑하는 고딕 양식이지만 왠지 아라베스크 분위기도 풍긴다. 장엄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 성당을 벗어나기 아쉽다.

▲두나강의 다리 가운데 최초의 다리이자 가장 아름답다는 란치드 다리. 다리 입구 양쪽에 사자 동상이 있어 사자다리라고도 불린다. 사진 = 김현주

어부의 요새를 떠나 관광객들이 다니지 않는 동네 길을 걸어 내려가니 광장(Battany Ter)이 나온다. 선착장, 메트로, 외곽전철(HEV), 트램 등 모든 교통수단이 집결하는 곳이다. 제이슨과 함께 비가 부슬거리는 강가에서 맥주 한 잔을 곁들여 점심을 해치우니 분위기가 산다.

건너편 강변에 서 있는 거대한 국회의사당이 부다 쪽에서 바라보는 페스트의 풍경을 독차지한다. 거대하지만 이것 또한 섬세하다. 아마도 유럽 역사를 통해 여러 나라들은 저마다의 솜씨를 최대한 뽐내며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물 짓기 경쟁이라도 한 듯싶다. 화려한 건축물을 짓느라고 국민과 장인들은 동원령에 시달렸겠지만 훗날 그것을 감상하는 여행자들은 눈이 즐거우니 아이러니다.

두나강의 다리 가운데 최초의 다리이자 가장 아름답다는 란치드 다리를 건너 다시 페스트 지역으로 나온다. 다리 입구 양쪽에 사자 동상이 놓여 있어 ‘사자다리’라고도 불린다. 제이슨은 오늘 부다페스트를 떠나 유럽 어디론가로 향하는 열차를 타러 중앙역으로 간다며 작별 인사를 건넨다. 열차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한다. 참으로 자유로운 방랑자다.

▲바치 거리에서는 성스테판 성당이 가장 눈길을 끈다. 검은색 돔이 특징인 바로크 성당 안엔 헝가리에 가톨릭을 퍼뜨린 성스테판의 오른쪽 손목뼈가 전시돼 있다. 사진 = 김현주

본국 뉴질랜드가 문명권에서 멀어 다소 불편하겠지만 먹고 살 걱정 안 해도 되는 나라, 게다가 영어가 모국어이고, 백인으로 태어난 것에 무한히 감사해야 한다고 전했다. 세계 여행을 다니다가 돈이 떨어지면 때로는 막노동으로, 때로는 영어 강사로 돈을 모은 뒤 다시 길에 오르는 여행 방식은 헌칠한 앵글로 백인만이 누리는 특권이라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아까 점심과 맥주 사 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뉴질랜드에 오면 꼭 찾아달라는 인사를 여러 번 했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바치 거리

란치드 다리 동쪽은 페스트에서 가장 화려한 바치 거리(Vaci Utca)다. 부다페스트의 명동에 해당하는 이 거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축물은 성스테판 성당이다. 검은색 돔이 특징인 바로크 성당 안에는 헝가리에 가톨릭을 퍼뜨린 성스테판의 오른쪽 손목뼈가 전시돼 있다.

성당 쿠폴라에도 올라가 본다. 무척 높은 계단을 한참 오르니 야외 전망대다. 강 건너 겔레르트 언덕부터 왕궁, 어부요새, 란치드 다리까지 오늘 비 맞으며 걸었던 길들이 모두 보인다. 부다페스트 전경은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에서 본 도시 전경에 못지않다. 피렌체처럼 화려한 색깔은 없지만 강이 있음으로써 강과 언덕, 성벽과 건물이 어우러진 모습은 부다페스트만의 특이한 아름다움이다.

▲15세기에 완성된 마차시 성당. 여러 원색 타일로 지붕 곳곳에 새긴 독특한 헝가리 문양과 섬세하고 정교한 돌 조각물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데악 페렌스 광장은 오가는 젊은이들로 적절히 붐빈다. 서울 명동의 1/20쯤 되는 것 같지만 명동보다 훨씬 잘 가꿔져 있다. 그 거리 작은 벤치에 앉아 테이크아웃 카페라떼와 함께 즐기는 휴식이 달콤하다. 이어서 메트로 2호선 아스토리아 역 근처 유대교당을 찾아 간다. 큰 길에서 살짝 한적한 골목 안에 있어서 기대하지 않았으나 당도해 보니 규모가 거대해서 카메라 앵글을 벗어난다. 유럽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유대교당이라는 말에 수긍한다.

단체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여러 대 한꺼번에 몰려 들어온다. 양파 모양을 하고 여러 가지 색과 무늬로 멋을 낸 돔에 얹힌 탑의 높이가 43m라니 전체적 규모를 알만하다. 교당 뒤쪽에 있는 야외 조형물은 2차 대전 중 학살된 헝가리계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은으로 만든 버드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교당 안팎, 심지어는 바깥 울타리 철제 장식물까지도 유대 문양을 곳곳에 적용했다.

멋진 영웅광장

이 도시의 마지막 방문지 영웅광장(Hosok Tere)으로 향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 유럽에서는 첫 번째로 건설됐다는 지하철을 타고 간다. 오래됐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유지 보존이 잘 된 쾌적한 지하철이다. 영웅광장은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1896년 열린 엑스포 상징 조형물 중 하나다.

광장 중앙에 높은 탑과 함께 헝가리 선조인 부족장 7인의 기마상이 서 있고, 탑 주위 반원형 기단에는 시대별로 헝가리 영웅들의 동상을 세워 놓았지만 누가 누군지 모르니 보는 의미가 반감된다. 다만 헝가리 건국 부족장 7인의 얼굴 모습이 흥미롭다. 물론 상상 속에서 생각해낸 얼굴 모습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아시아인 모습이 많이 섞여 있다. 흉노족 장수 앗틸라(Attila)와 관련된 인물 아닐까 짐작해 본다.

▲란치드 다리를 건너면 동쪽 페스트에서 가장 화려한 바치 거리가 나온다. 이른바 부다페스트의 명동에 해당하는 거리로, 성스테판 성당, 데악 페렌스 광장 등이 있다. 사진 = 김현주

부다페스트 명동 시내 중심 바치 거리에는 앗틸라 거리가 있다. 헝가리인은 건국의 의미와 자신들의 조상이 누구인지 관심이 많겠지만 1100년 전 이곳으로 이주해 지내는 동안 조상 마자르(Magyar)족의 얼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리에서 흔히 눈에 띄는 헝가리인 얼굴은 간혹 짙은 머리색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뿐, 나머지는 유럽 여느 도시와 전혀 차이가 없다.

부다페스트의 샹젤리제 ‘안드라시 거리’

영웅광장에서 남쪽으로 뻗은 넓은 길은 안드라시 거리(Andrasi Utca)다. 부다페스트의 샹젤리제라고 불리는 멋진 길이다. 길 양쪽 건축물들의 예술적 가치가 높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보존거리로 지정했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키셀레프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사관 거리이기도 하다.

건물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은 거리를 걸어서 내려간다. 싱가포르 오차드(Orchard) 거리가 이런 종류의 유럽 거리를 본뜬 것 같기는 하지만 상쾌함에 있어서 비교가 안 된다. ‘우리나라에도 도심에 이런 멋진 거리 하나쯤 있어도 좋으련만’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해본다.

부다페스트 야경

일단 호텔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다가 해질 무렵에 맞추어 겔레르트 언덕으로 다시 향한다. 메트로-트램-도보로 이어지는 가깝지 않은 길이지만 지난 봄 단체여행으로 부다페스트를 다녀온 아내의 강력 추천 사항을 실천하기 위해 땀 흘린다.

밤 9시 언덕 정상에 도착하니 마침 도시가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시간을 잘 맞췄다. 강과 강변 고딕 양식 건물들, 멀고 가까이 불을 밝힌 교회 돔 혹은 첨탑, 강을 따라 양쪽으로 난 도로 위 자동차 불빛이 종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야경이 볼만하다. 강이 없었다면 이 도시는 없었거나 있더라도 지극히 평범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부다페스트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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