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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면의 세계 뮤지엄 ④ 지로나 영화박물관]동화같은 옛도시의 재미난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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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0호 이상면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연구교수⁄ 2015.07.23 08:51:15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이상면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연구교수) 스페인 남부 바르셀로나 옆의 소도시 지로나(Girona, 카탈로니아어 발음. 스페인어 표기와 발음은 Gerona, 헤로나)에는 아주 주목할 만한 영화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파리 시네마테크나 프랑크푸르트-토리노 영화박물관처럼 잘 알려진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덜 알려졌다. 그렇지만, 내부 전시물과 전시 구성은 독특한 특징이 있고, 귀중한 전시물들을 갖고 있는 스페인의 보물 같은 박물관이고, 와 보면 놀랄 지경이다.

지로나는 바르셀로나에서 급행 기차로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다. 8세기 이후 카탈로니아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고도(古都)로서,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강의 양쪽으로 옛도시(동)와 신도시(서)가 대비돼 흥미롭다. 강폭은 20m 내외이고 다리가 많아 사람들은 언제든지 도보로 왔다 갔다 한다.

영화박물관(Museu del Cinema/Museum of Cinema)은 도시의 중심부이자 강의 서쪽편 다리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지로나 중앙역에서 내려 시내 중심을 향해 동쪽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며 보행자 거리/쇼핑센터의 몇몇 광장들을 지나 강 가까이 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주소, C/ Sèquia 1).

▲18~19세기 영상의 역사를 보여주는 4층 공간. 사진 = J. M. Oliveras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영화박물관이 왜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 있지 않고, 이런 호젓한 소도시에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박물관은 인근 지역 출신으로 지로나에서 활동한 독립영화 감독이자 영화 관련 수집가였던 토마스 마욜(Tomàs Mallol, 1923년~)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1만 2000점을 전시하며 1998년 개관했기 때문이다.

대도시 옆 소도시에 웬 영화박물관?  

건물은 낮은 지붕을 얹은 평범하고 소박한 4층 건물이다. 전면의 모든 창문들에는 영상 관련 그림들이 붙여져 있고, 정문 위에는 필름 조형물이 게시돼 영화박물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밤에는 외벽 창에만 불빛이 들어와 창에 붙여진 선명하고 동화적인 이미지들에 따뜻한 정감을 더한다.

▲지로나 영화박물관의 야경. 창문에 영화 관련 이미지들에 불을 밝혀 놓아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진 = 위키피디아

전시는 1500제곱미터 면적의 4층에 걸쳐 이뤄진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며 관람한다. 맨 위층에서 영상의 시초가 시작돼 아래로 내려가면서 영상의 역사가 현대로 다가온다. 2층이 20세기 영화사가 되고 1층은 기념품점과 기획전시실로 되어 있다.

4층은 최초로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한 그림자극부터 시작된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에서 성행하다가 터키, 그리스, 프랑스로 전파된 그림자극의 여러 인형들이 전시돼 있다. 이어서 유럽에서 17세기 이후 근대 과학과 함께 발전한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 기구와 그림상자, 마술환등 등을 비롯해 17~19세기 전반에 발전된 기구들과 이미지가 전시돼 있다. 특히 약간 큰 카메라 옵스쿠라를 창문에 설치해 바깥 풍경 이미지가 벽에 비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람 중인 아이들은 박물관 근처 건물과 야자수가 거꾸로 맺히는 역상을 보고 신기해한다. 다음에는 특정한 시각에서만 제대로 이미지가 나타나는 기형화(anamorphosis)가 큰 조형물로 설치돼 있어 이를 여러 각도에서 보는 아이들을 즐겁게 한다.

▲지로나를 가로지르는 지로나 강. 강 양쪽으로 구도시와 신도시가 나눠진 풍경을 연출한다. 사진 = 이상면

이어 18~19세기 유럽에서 성행하며 벽에 영상을 비추어 보는 기구였던 마술환등(magic lantern)에 관한 여러 자료와 기구, 슬라이드 이미지, 당시 풍속화 등이 나타난다. 한 쪽 구석에는 마술환등 기구를 통해 보는 영상을 관람하는 좌석 10여 개가 놓여 있다.

다음에는 근대 민중의 시각적 오락 기구였던 그림상자(peep-box)의 여러 형태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단순히 정지된 그림을 보다가 점차 기술이 발달하여 밝고 어둡게 변화되는 그림이 되고, 평화로운 마을에 지진-화재가 나며 스펙터클 장면이 되는 이미지들이 벽면에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19세기 중반 성행했던 원형 관람 기구였던 카이저 파노라마가 축소-제작돼 있어 각자 둘러앉아 작은 렌즈 구멍을 통해 옛날 도시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20세기 초반의 아동용 영상 기구들을 전시한 공간. 사진 = 이상면

이제 3층으로 내려가면, 19세기 중반부터 19세기 말의 상황이 재현된다. 사진술의 시초였던 다게르타입 사진기부터 시작해 초기의 목제 카메라들과 당시 사진들이 보인다. 이 층의 주제는 동영상의 발달 과정이다.

1820년대 이후 출현해 동영상을 보여주었던 기구들이 전시된다. 당시 자연스러운 동작의 연속 이미지는 어떻게 가능하고, 1초에 몇 장을 보여줘야 하는지 등이 여러 과학자에 의해 연구되며 여러 기구들이 나타나고 개선됐는데, 이런 기구들이 여기 모여 있다.

1830년대 패러데이의 바퀴, 움직임 이미지(movement image)를 회전 원판에서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페나키스토스코프(phenakistoscope), 연속적인 움직임 이미지를 회전 원통을 통해 구현하는 조이트로프(zoetrope) 등이다.

▲필름 영화의 시작을 알린 ‘뤼미에르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사진 = J. M. Oliveras

이들을 거쳐 19세기 후반에 오면, 연속 사진술을 발전시킨 에드워드 머이브릿지와 에틴 줄-마레이를 거쳐 에밀 레노의 움직이는 그림들 상연기구(프락시노스코프)가 나타난다. 이어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와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라프에 이르러 필름 영화는 시작된다.

문화·교육적 가치 높아 아이들 즐겨 찾아

2층은 20세기 영화다. 1900년대에 짤막한 영화를 찍던 무비카메라들, 어린이들을 위한 가정용 영사기구들이 전시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1920~30년대 빠르게 영화의 황금시대가 펼쳐졌고, 이어 1950년대 텔레비전의 보급과 더불어 영화의 위기도 나타났다.

▲단체관람을 마친 아동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이상면

여기를 거쳐 가면 동영상의 원리를 보여주는 기구들이 제법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어 아이들이 실제로 돌려보며 ‘움직임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있게 해 놨다. 옆에는 영상 연구자들을 위한 도서실과 자료실이 있다.

전시를 찬찬히 둘러보면, 영상이 어떻게 시작-발전되었고, 그 마술적인 영상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지로나 영화박물관은 영상의 원리와 발전을 즐겁게 구경하며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교육적이며 오락적이다. 지로나 영화박물관은 아동과 성인 모두에게 즐거운 볼거리와 교육을 선사한다.

▲원판이 회전하면서 동영상을 보여주는 장치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어린이. 사진 = 위키피디아

유명하지 않은 도시 지로나를 유명하게 만들 수 있는 문화공간이며, 역사문화의 고도 지로나를 빛나게 할 수 있는 공공 문화시설이다. 실제로, 지로나 영화박물관은 교육과 문화적인 공로의 측면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올해의 유럽박물관 상’, 2003년에는 스페인 예술과학학술원의 상, 그리고 2010년에는 교사연합이 주는 ‘교육상’ 등을 수상했다.

사실, 옆에 있는 대도시 바르셀로나도 이런 박물관을 탐내고 있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하고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바르셀로나 대학에서는 영상의 역사에 관한 전시와 특강 등이 열리면서 지로나 영화박물관 못지않은 독자적인 영화박물관을 건립하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19세기의 마술환등 기구들. 사진 = J. M. Oliveras

지로나 영화박물관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박물관의 역할, 교육적 기능을 잘 실현하며,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문화공간이다. 이런 박물관이 세워지기까지 선구적인 안목의 수집가(collector)가 있었고, 그의 수집품을 받아들여 멋진 공간을 만든 시 정부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웹 주소는 www.museudelcinema.cat.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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