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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사람들 ㉗ 용산서 민원봉사실 서선화 경위]한·미 갈린 38년 이산 자매의 상봉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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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3호 안창현 기자⁄ 2015.08.13 09:07:02

▲용산서 민원봉사실장 서선화 경위. 사진 = 안창현 기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경찰서 민원봉사실은 다양한 민원인들로 북적이기 마련이다. 고소장이나 진정서를 접수하려는 사람부터 민원서류 발급, 운전면허 갱신, 범칙금 교부까지 시민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다. 여기서 작성할 수 있는 민원서류 종류만 30가지나 된다. 찾는 사람이 많은 만큼 사연도 많다. 얼마 전 용산경찰서에서 30여 년간 생사도 모르고 지냈던 자매가 재회해 화제가 됐다. 용산서 민원봉사실장으로 근무 중인 서선화 경위(52)는 자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고 이들이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헤어진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민원봉사실이 돕고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극적인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는 서 경위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느 때처럼 민원 처리하고 서류 발급하느라 바쁜 하루였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다 되어 민원실을 찾은 한 아주머니가 불쑥 오래된 호적등본을 내밀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동생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민원봉사실장 서선화 경위는 이금순(가명·66) 씨의 사연을 이렇게 알았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이 씨는 연락이 끊긴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 아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서 경위는 “이 씨의 사연을 들었을 때 안타까운 마음에 꼭 도와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1977년 4월 국제결혼을 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전에는 가족들과 경기도 고양시에서 살았다. 이 씨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이 씨는 2남 4녀의 가족을 홀로 책임지는 어머니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일찍 국제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됐다.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이 씨는 동생들과 자주 연락을 하면서 향수를 달랬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씨와 한국의 가족들이 모두 집을 옮겼고, 연락처를 알 수 없게 되면서 연락이 끊겼다고 서 경위는 사정을 전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이사하면서 바뀐 전화번호를 서로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이 씨와 그의 가족들은 생사조차 모른 채 지금까지 떨어져 살았다.

그러던 중 2011년 타국에서 곁을 지켜준 남편과 사별하게 되면서 이 씨는 한국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 특히 외로워하는 이 씨의 모습을 본 아들은 “한국에 가서 가족을 찾아보자”고 권했다. LA 총영사관으로부터 한국 경찰서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서 경위는 “6월 23일 입국해 바로 다음날 이태원 지구대를 찾아갔던 모양이다. 그곳에서 용산경찰서 민원실로 가보라고 해 이 씨가 아들과 함께 여기로 찾아 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가 들고 온 국제결혼 신고접수 증명원과 호적등본을 바탕으로 서 경위는 주민자체센터와 협조해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30여 년간 연락이 끊긴 자매가, 6월 29일 용산경찰서 민원봉사실의 도움으로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사진 = 용산경찰서

시간이 촉박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씨가 방문한 날이 금요일이었는데,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이 씨 모자가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가족을 찾는 일이 민감한 사안이라, 보통 경우는 경찰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자인지 먼저 검토하는 단계를 거친다. 이 씨의 경우는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일을 빨리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가족 찾기를 도와줄 수 있는 경우는 미아, 해외입양,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 등 몇몇 조건이 있다. 신고가 접수되면 거쳐야 하는 행정 절차도 있어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씨 경우엔 경찰서 차원에서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씨가 출국하는 월요일 오전, 소식이 끊겼던 여동생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미국에서 언니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는 소식을 동생에게 전하는데, 내가 다 가슴이 떨렸다. 여동생 분도 놀라셨고, ‘시간이 없다’는 말에 경찰서 민원실로 한 걸음에 달려오셨다.”

“여경의 섬세함 필요한 민원봉사실에서
섬기는 마음으로 최선 다할 것”

결국 30년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안부조차 알지 못했던 이 씨와 여동생은 출국을 몇 시간 남기고 재회할 수 있었다. “자매는 서로 보자마자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나도,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서 경위는 전했다.

출국 시간이 다가와 직접 만나기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 씨는 여동생을 통해 다른 가족들과도 전화로 안부를 묻고는 다음을 기약했다.

서 경위는 “이제 이 씨는 가족들과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어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다”며 “내년에 한국을 다시 방문해 가족 모두와 다시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에 오면 고마운 마음에 경찰서를 다시 들르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경찰관이 됐다는 서 경위는 28년째 경찰 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이번 일로 특히 큰 보람을 느꼈다. “민원실에 근무하다 보면 많은 일들을 보고 겪게 된다. 민원실의 특성상 사건, 사고로 감정이 격해져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다가도 이 씨의 일을 생각하면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된다.”

용산서 민원봉사실은 얼마 전 카페처럼 리모델링했다. 낙후된 시설로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지만 이번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서 경위는 “민원실이 좋아진 만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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