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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디자인]창신동 쪽방촌에 이런 ‘법고창신’기지 있을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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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3호 안창현 기자⁄ 2015.08.13 09:09:07

▲창신기지가 위치한 골목길. 사진 제공 = Z_Lab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엄마와 함께 살던 집,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가 친구에게 열변을 토하던 골목길. 모두 서울 종로구 창신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창신동은 아직까지 1970~80년대 서민 동네의 흔적과 분위기를 간직한, 서울에서 보기 드문 장소다. 쪽방촌으로 다 쓰러져가는 한옥들부터 신축 고층 빌딩이 나란히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공존하는 곳이다.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품은 재밌는 새 공간이 들어섰다.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집’이란 뜻의 ‘창신기지(創新基地)’ 크리에이티브 하우스. 지은 지 80년이 넘은 한옥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탄생시켰다. 입소문을 타고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방문객들을 위한 렌탈 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휴가철 도심에서 한옥과 첨단을 동시에 만끽하며, 창조적 영감과 감성을 북돋을 힐링캠프이기도 하다.

‘창신기지’는 서울에서 최초로 뉴타운 재개발 계획이 해제된 창신·숭인 뉴타운지구에 있다. 주민 스스로 재개발 지구를 해제시킨 첫 사례다. 뉴타운 재개발 계획이 사라지면서 기존 동네 특성과 커뮤니티를 살리는 새로운 방안들이 자연스럽게 모색됐다. 그 중 창신기지 크리에이티브 하우스(Creative House)는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창신기지 마당에 있는 편백나무 노천탕과 바비큐 시설들. 마당 중앙의 늙은 나무를 그대로 살렸다. 사진 제공 = Z_Lab

예전 골목과 한옥 경관이 그대로 살아 있는 이곳에는 원래 1937년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 있었다. 80여 년 세월로 이미 노후한 상태였지만, 인근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빈집으로 방치돼 한옥은 더욱 폐가처럼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건축주는 이곳의 추억을 되살릴 생각을 했고, 그렇게 창신기지 크리에이티브 하우스는 탄생할 수 있었다.

창신기지는 크리에이터 그룹 지랩(Z_Lab)의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지랩은 “오랜 시간 빈집으로 방치돼 훼손 정도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건축주는 옛 기억이 담긴 한옥에 고민을 갖고 우리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창신기지 크리에이티브 하우스의 실내. 휴식과 힐링 공간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제공 = Z_Lab

창신동은 오랫동안 개발이 제한돼 낙후된 곳이다. 그 안의 폐가 한옥은 땅값만 높고, 임대 수입은 적어 세금만 내야 하는 애물단지일 수밖에 없었다. 쪽방촌의 산실로 불리며 열악한 주거 환경이 계속되던 이곳에, 지랩은 가장 작은 단위의 공간 재생 프로젝트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지랩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 짓는 것보다 기존 유산을 잘 활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가치 있는 일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한옥의 좁은 공간을 활용한 오픈형 공간이 눈길을 끈다. 사진 제공 = Z_Lab

기존 건물을 모두 부수고 새 건물을 지어 올리는 식의 대규모 재개발, 재건축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한국에서, 이러한 옛것 되살리가는 앞으로 더욱 가치가 높아질 전망이다.

지붕이 무너지고 기둥은 공중에 붕 떠 있는 기이한 모습의 폐가 한옥을, 지랩 팀은 서까래와 구조 등 원형의 골격을 최대한 살리되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작은 집이 가진 매력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건축 방향을 세웠다.

‘창신기지(創新基地)’란 이름은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끝 두 자를 끌어와, 옛 한옥을 재생한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지랩은 창신기지에 대해 “궁극적으로 공간 재생, 지역 재생의 관점에서 창신기지 같은 거점이 하나 둘 연결돼 창신동 자체가 새로운 영감과 감성을 부여하는 동네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소개했다.

오랜 한옥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독채형 렌탈 하우스로 재탄생한 창신기지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체험할 수 있도록 섬세한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창신기지는 창의적인 감성을 지닌 크리에이터가 머물던 공간을 일반에 빌려준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주중 숙박 문의가 늘면서 렌탈 하우스로 주로 활용된다. 사진 제공 = Z_Lab

내부와 외부의 경계 없는 공간을 위해 폴딩 도어를 사용했고, 또 마당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마당 데크재와 한옥 내부 재료를 통일했다. 실내와 실외의 구분 없는 활동은 창신기지의 매력 중 하나다.

마당의 노천탕과 캠핑 소품은 젊은 세대가 한옥을 친숙하게 대할 수 있도록 배려한 장치다. 내부의 가구 디자인 역시 한옥 구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기능적으로 수납 및 집기 사용의 효율을 높였다.

번잡한 도심에서 단 5분만에
‘고적한 한옥으로’ 들어가는 힐링체험

한옥 목구조의 공간적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주문제작한 수제 원목 가구를 사용했고, 엄선한 패브릭과 조명 등의 소품으로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집 자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살리면서 새 역할을 부여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특히 햇살이 고스란히 떨어지는 마당과, 이 집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봤을 가죽나무 그늘은 창신기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과 같았다.
창신기지는 현재 렌탈 하우스로 운영된다. 물론 일반적인 게스트하우스, 셰어하우스와는 조금 다르다. 창신기지는 창의적 감성을 지닌 크리에이터가 머물던 공간을 일반에 공개하고 빌려준다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고자 했다. ‘새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집’이란 이름 그대로다.

창신기지는 당초 주중에는 크리에이터 그룹 지랩의 작업공간으로 쓰였고, 주말에는 일반인에게 대여됐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의 주중 숙박 문의가 늘어나면서 크리에이터 작업공간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북적이는 동대문 상권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지만 창신기지는 도시의 이런 북적거림을 단숨에 벗어난다. 도심의 옆, 아늑한 골목 안에서 숙박과 파티, 캠핑 등 소모임을 위한 아지트로 활용되면서 추억을 만들기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특별한 추억을 담는 집이 된 셈이다.

도심에서 새로운 공간 경험과 추억을 선사하는 창신기지는 도심 재생, 공간 재생의 작지만 의미 있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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